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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손마님 Aug 08. 2022

결혼하지 않고 함께 삽니다

같이 사니까 너무 좋아

"비밀번호 3회 오류입니다"

00페이 앱에서 징, 진동과 함께 알림을 보냈다. 바구니 한가득이었던 라면과 과자와 야채 봉지들은 이미 바코드 스캐너에 찍혀 결제만 남은 상황이다. 마트 직원이 쓰레기 봉지 한 장을 꺼내 슥슥 비벼 내려놓으며 손으로 카드기를 가리킨다.

"카드는 여기 직접 넣어주세요"

"잠시만요, 에러가 떠서요. 다음분 먼저 해주세요"

나는 미간을 올려 눈썹을 산 모양으로 만들어 미안함을 표시하며, 한 걸음 물러났다. 마침 오늘이 동거인 휴가날이다. 다행히 게임 중은 아닌지, 그가 전화를 한 번에 받았다.


"자기야, 내 카드가 먹통이 돼서 그런데, 우리 생활비 카드 들고 00마트로 좀 와주라. 미안한데, 좀 뛰어서 와줘"

직원에게 멋쩍게 다가가서 봉투에 물건을 집어넣으며, "곧 친구가 올 거예요" 했다. 다행히 업무 초보인 젊은 여성 직원은, 귀찮은 표정이나 잔소리를 덧붙이지 않고 '그럴 수 있지' 하는 웃음을 지어주었다.


계산대에서 약간 벗어나 곡식 코너에서 쌀, 조조, 보리, 국내산, 인도산... 을 읽으며 시간을 보내고 있으니, 잠옷 바지에 후드티를 걸쳐 입은 그가 도착한다.


생활비 카드로 이만 원 남짓을 계산하고, 팔짱을 끼고 집으로 돌아간다.


"와, 자기가 있어서 진짜 다행이야. 와줘서 고마워. 같이 사니까 좋네"

"자기가 부르면 바로 가야지"


그는 부지런한 성격이고,

나는 손이 많이 가는 타입이다.


우리가 함께 사는 집.

함께 들어가는 그이는 내 남자 친구이자 동거인, 그리고 다세대주택 꼭대기층 1호의 실소유주다.

내가 등본을 떼면 그의 이름 밑에 내 이름이 있다는 게 좀 신기하다. 세대주와의 관계는 '동거인', 우리는 4년째 함께 살고 있다. 둘 다 비혼주의로, 애인, 동거인, 생활동반자의 역할을 충실히 수행한다. 아내, 남편, 며느리, 사위의 역할을 빼면 우리는 주위에 사는 딩크부부와 차이가 거의 없다.


우리의 생활은 몹개인적인 동시에 풍요롭다.

결혼하지 않았지만, 함께 산다. 전혀 외롭지도, 불안하지 않게, 공간과 시간을 공유하면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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