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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손마님 Jan 25. 2023

코파카바나의 하하하달

코파카바나 해변의 모래바닥에서 린디합(재즈스윙)을 춘 날 저녁.

이렇게 신날 일인가, 콜롬비아 캐리비안해변 이후로, 8개월 만이다. 오랜만에 땀과 모래가 범벅이 되어 춤을 췄다. 땀이 날 정도로 췄다기보다, 가만히 있어도 땀이 줄줄 흐르는 날씨에 춤을 춘 것이다. 서울에서는 옷에 땀이 배이면 바로 갈아입는 것이 '매너'라고 배우지만, 여기 브라질에서 그런 매너를 갖출 수 있는 건 아마 도마뱀뿐일 것이다. 턴을 돌면 땀이 머리카락을 휘감고 방울이 되어 날아갔다. 우리는 그렇게 땀을 튀기고 맞으며 춤을 췄다. 내 축축한 등에 리더의 손이 착착 감겼고, 내 손이 리더의 팔뚝에서 미끄러졌다.


린디합은 1:1로 한 곡을 추는 게 원칙이지만, 축하할 일이 있을 땐 잼서클 jam circle을 한다. 축하받을 사람을 가운데 두고 원을 만들어, 나머지 사람들이 그와 돌아가면서 춤을 추는 것이다. 모임진행자인 페드로가 눈치를 보더니 순식간에 사람들과 함께 원을 만들었다. 멀리서 온 손님이라고 나를 가운데 두고 환영식을 해줬다. 이런 거라면 평생 딱 질색인 데다 서울에선 주목받을 일이 없었는데, 여기선 아는 사람도 없고 에라 모르겠다 하는 마음이 든다. 정말 마구 축하받으니 속이 다 시원했다. 가끔 리더역할을 할 줄 모르는 여성이 원 안으로 들어오면 솔로를 추며 놀았다. 나의 솔로무브는 구리지만, 팔다리가 타투로 가득하고 리듬이 몸에 밴 이 멋진 여성이 나를 위해 춤춰주고 있는 게 꿈만 같았다.


즐거워 보였는지, 신기했는지, 지나가던 사람들이 멈춰 서서 구경을 하기도 하고, 사진이나 영상도 많이들 찍어갔다. 우리의 땀과 스텝은 어디선가 데이터로 남아있거나 지금쯤 영영 사라져 있을 테다. 정작 엄청 신이 났었고 엄청 땀이 많이 난 우리에겐 후진 휴대폰에 찍힌 흔들린 사진 몇 장이 전부지만, 어쩐지 상관없다고 생각한다. 안 봐도 물미역이겠지.


나는 춤만 춘 것이 아니라 다음 일정도 정했다. 그날 친구의 친구로 구경을 왔던 펠리페라는 친구의 제안이었다. 다음 날 일정이 비었다면, 같이 음악회에 가자고 했다. 그에게 초청권이 있는데, 브라질에 온 김에 보면 좋을 것 같단다. '전통공연'이라기에, 나는 어쩐지 초록색 잎을 두르고 화려한 모자를 쓴 브라질 인디언을 떠올리며 좋다고 했다.


다음 날 저녁, 우리는 금으로 내부를 한껏 치장한 리우데자이네로 시립극장에서 클래식 공연을 기다리고 있었다. 극장은 한때 오랜 기간 브라질을 식민통치했던 포르투갈인들이 문화를 향유하던 곳이었다. 심플한 원피스에 풍성한 웨이브머리를 한 여성이 깔끔한 정장차림의 남성을 반기며 팔짱을 끼고 들어갔다. 커플이나 가족들이 서로를 환영하며 입장할 때마다 초라한 느낌이 들었지만, 나도 오늘은 짙은색 원피스에 하얀 캔버스를 신고 나와서 분위기를 확 깨는 복장은 아닌 게 천만다행이었다. 쪼리를 신을까 고민했었는데 나이스 초이스. 캐주얼을 입은 펠리페가 도착해서는, 시립극장이 내부가 예뻐서 소개해 주고 싶었단다. 어릴 적 '미녀와 야수'를 보며 동경했던, 가운데 계단을 지나 양옆으로 벌어지는 메인홀과 샹들리에가 아주 예뻤다. 공연은 오케스트라 심포니였고, 다행히 졸지 않았다. 16세기 초부터 브라질에 자리를 잡았던 포르투갈 귀족의 전통 또한 이들의 전통문화라는 것이 나에게는 새로웠다.


웅장한 공연이 끝나고, 일어나서 우레와 같은 박수를 함께 친 뒤, 공연장을 빠져나온 우리는 한참을 걸었다. 나의 8개월 남미여행이 이틀 남았다고 생각하니 마음이 뒤숭숭해 숙소에 들어가기가 아쉬웠다. 한여름의 저녁이지만 바닷바람이 불어 덥지 않았다. 길을 걷다가 하늘을 본 내가 놀라서 멈췄다. 아니, 저게 뭐야? 조명인가? 달인가? 부산스럽게 방향을 바꿔 바라보아도 여전히 하늘에 가만히 걸려있는 저것은 노란 반달이었다.


"헉. 펠, 달이 왜 저렇게 생겼어?"

그러자 그가 되물었다.

"달이 저렇게 안 생기면 어떻게 생겨야 하는데?"


남반구인 브라질에서 본 반달 활짝 웃는 이모티콘의 입처럼 아래로 반이 차 있었다. 난 저런 웃는 날은 처음 보거든! 펠리페는 달이 웃는다는 표현이 처음이라고 했다.


'브라질 전통이라기에 쌈바를 생각했다'는 내 말에, 펠리페는 지금도 안늦었다며 나를 쌈바거리로 흔쾌히 데리고 갔다. 아직 주말 밤이라기엔 늦은, 굳이 따지자면 월요일 새벽 1시인데, 이곳 쌈바거리는 축제를 시작하는 홍대 앞처럼 붐볐다. 한 골목에 사람들이 집중적으로 모여있었는데,  "소금의 돌 rockofsalt"이라고 불리는 거리였다. 축구선수 같은 몸의 젊은 남성들이 삼바를 추고 있었다. 이야... 저렇게 흔들어대는데 흔들리는 지방이 조금도 없구나. 쌈바는 아프리카 이민자들의 다양한 리듬이 섞이면서 새롭게 발전한 장르다. 쌈바는 모두가 즐길 수 있는 스트릿문화이고, 눈과 귀보다 몸과 흥으로 즐기는 음악임을 실감했다.


한참 쌈바춤을 구경하다 다시 조용한 해변을 지나 숙소로 가는 길. 이미 새벽 3시가 넘었다. 하하하 달도 지고 바다 위로 별이 뜬 이 곳. 코파카바나에선 월요일이 조금 늦게 온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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