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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굿네이버 May 30. 2024

버스표 한 장만 주세요!.

[월요일] 뉴질랜드 병원 응급실 사회복지사의 찐 스토리 #4

토요일 오후 3시, 근무 시간이 끝나기까지 딱 1시간만 남은 터라, 하루를 정리하고 일 때문에 받은 스트레스나 정신적인 감정 소모들을 추스르고 있었다. 그때 미케일라라는 간호사가 사무실 문을 두드렸다. 미케일라는 한국에서 4년을 살았던 적이 있어서, 병원에 와서 금방 친해질 수 있었다. 서로 반갑게 인사를 하고 새로 시작한 한국어 과정은 어떤지 등에 대해 간단한 대화를 나눴다.

“미케일라, 뭘 도와줄까?”


 “마이클이라는 환자가 있는데 니키타 친구야, 아무튼 사회복지사와 이야기하고 싶데, 그런데 뭐 때문인지는 잘 모르겠어”.

순간 사무실에 있던 3명의 사회복지사는 그 말을 듣자마자 웃음을 터트렸다. 방금 전까지 니키타에 대해서 말하고 있었다. 니키타라는 여자는 병원에 심심하면 오는 환자다. 별 이유 없이 병원에 온다. 매 번 올 때마다 사회복지사를 찾는데, 별의별 것을 다 요구한다. 심지어 ‘버스표’를 달라고 하고 때론 택시를 태워 달라고 요구하기도 한다. 그러니 안 봐도 이유가 뭔지 알 것 같았다.


 그래도 환자의 배경을 알아야 하기에 환자 기록을 살펴봤다. 이전에 사회복지사를 만난 기록은 없었다. 혹시나 해서, 정신과 기록을 살펴봤다. 대략 5개 정도의 노트가 있었다. 이 정도면 양호한 수준이다. 어떤 환자의 경우는 무려 1000개가 넘는 정신과 기록이 있기도 하니 말이다. 최근의 정신과 기록을 읽어 내려가는데 마이클에 대한 연민이 느껴졌다. 마이클을 알고 있는 한 지인이 마이클이 페이스북에 남긴 메시지를 보고 걱정이 되어 신고를 했다. 마이클은 페이스북에 다음과 같이 글을 남겼다. ”Sometimes I think of ending my life - I’m invisible- goodbye cruel world”. 번역하면 “때때로 삶을 끝내고 싶은 생각이 든다. 나는 누구에게도 보이지 않는 존재다. 잘 있거라 잔인한 세상”.


 이 세상에 존재하지만, 아무에게도 관심을 받지 못하는  때면 그만큼 잔인한 것은 없다. (마치, 브런치에 글을 열심히 쓰는데, 라이킷수가 좀처럼 늘지 않으면 힘든 것처럼)

 누군가에게 세상은 한없이 자비롭고 아름답지만, 마이클처럼 지적 장애를 갖고, 어렸을 때부터 부모에게 버려지고, 배운 것 가진 것도 없는 사람들에게 세상은 한없이 잔인하다.


 세상에 존재하지만 아무에게도 존재하지 않는 것처럼 취급받는 이들이 얼마나 많은가!

 나 역시도 그런 시간을 겪었고, 나 역시도 누군가에게 그런 취급을 받았었기에 마음이 아팠다.


 환자 정보를 대충 알았으니 이제 드디어 환자를 만나러 갔다. 병실 커튼을 열고 들어가는 순간 50대로 보이는 키가 작은 중년의 남자가 침대에 앉아 있었다. 얼굴에는 수염이 어지럽게 나있었고, 머리는 자른 지 오래되어 흩트러져 있었다. 치아는 거의 다 빠져 있었다.  늘 하던 대로 나를 소개하고 나서 곧바로 물었다. “How can I help you?” 사실 보통은 ”어떻게 해서 응급실에 오게 되었나요? “ 등을 물으며 환자와 친분을 쌓는 것부터 시작을 하는데, 이번에는 단도직입적으로 물었다. 이런 경우는 시간을 오래 끌면 안 되기 때문이다.


 그런데 마이클은 곧바로 자신이 필요한 것을 말하지 않고, 그 순간 자신의 인생사를 늘어놓기 시작했다. 사실 뉴질랜드 특유의 웅얼거림과 치아가 없기에 새어 나오는 발음까지 합쳐 그가 하는 이야기의 대부분을 못 알아 들었다.


 처음에는 자신이 자전거를 타고 다니는데 지나가는 사람들이 자신에게 욕설을 늘어놓는다는 등, 젊은 아이들이 자동차 레이싱을 도로에서 하며 타이어에서 연기가 나오게 하는데 경찰은 아무것도 하지 않는다는 등의 하소연을 늘어놓는다. 그리곤 자신에게 딸이 한 명이 있는데 자기가 지적 장애가 있다는 이유로 딸과 함께 살지 못하고 한 달에 한 번 밖에 볼 수가 없어서 화가 난다는 것이다. 더욱이 3개의 정부 기관  (한국으로 치면 복지부, 국세청, 주택공사)이 자신을 하나의 인간, 인격으로 대하지 않고 숫자로 대하는 것이 화가 난다고 말한다. 환자 기록에서 봤던 말 그대로 마이클이 나에게 말했다. ”I don’t like them treating me as numbers not as human beings, I am just invisible!” “나를 인간이 아닌 숫자로 대하는 것이 너무 싫어! “.


 그러면서 하는 말이 “어제도 버스 정류장에 있는데 정신적으로 너무 힘들어서 정류장에 있는  표지판에 내 머리를 계속해서 박았어! 정말 살기 싫었어! “ 대게 정신적인 문제를 갖고 있고, 심한 차별과 학대를 받은 사람들은 극도한 정신적인 스트레스가 있을 때 자신을 주로 학대하는 자해를 한다. 마이클도 그렇게 상처가 떠오를 때마다 자신을 학대하고 있었다.  


한 참을 듣고 있는데, 아직도 이 친구가 도대체 사회복지사를 왜 만나고 싶어 하시는지 이유를 찾지 못했다. 그래서 다시 물었다. ”그래서 내가 뭘 도와줬으면 좋겠어? “ 그러자 마이클은 ”버스 티켓 하나만 줘! “라고 하는 것이다. 거의 1시간을 이야기 한 끝에 그가 요구한 것은 달랑 버스 티켓 하나였다.


사실 버스 티켓 하나만 주면 내가 할 일은 끝나는 것이다.

하지만 문득 여기서 대화가 끝나면 안 되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그래서 천천히 마이클이 했던 말을 간략하게 요약하며 말했다. ”마이클, 너의 이야기를 들으니 참 안타깝고 마음이 아프다. 사실 네가 이전 데도 자살하고 싶다는 말을 몇 변 했다는 것을 알아. 사람들이 너를 인간으로서가 아니라 숫자로 대하는 것이 너무 화가 나고 속상하지? 분명 존재하고 있는데 마치 이 세상에 존재하지 않는 사람처럼 취급받는 게 너무 힘들지?


 “그런데 그거 아니? 사실 먼저 네가 너 자신을 한 인격체로 대해야 해 “

”네가 너를 사랑하지 않으면 아무도 너를 사랑하지 않아 “

”네가 너를 돌보지 않으면 아무도 너를 돌아보지 않아”.

“아니 심지어 사람들이 너를 사랑하려고 해도 네가 너를 사랑하지 않으면 그 사랑을 느낄 수 없어!’  

”스트레스받을 때 자해를 하는 것은 너를 사랑하는 것도, 너를 인격으로 대하는 것도 아니야 “  


 그 말을 듣는 순간 마이클의 눈이 휘둥그레졌다. 눈에는 눈물이 맺혀 가고 있었다.

”어, 맞아… 듣고 보니 그래… 내가 나를 먼저 사랑해야 한다, 어디다가 적어놔야겠어! “


”그래 맞아, 마이클 네가 먼저 너 자신을 아끼고 사랑해야 해, 꼭 이 말을 기억해! “

 나는 이 말을 마지막으로 하고 버스 티켓을 주며 병실을 나왔다.



 사실 내가 유일하게 그에게 준 것이라고는 버스티켓 하나였지만,

아니 그가 유일하게 내게 원했던 것은 버스 티켓 하나였지만

사실 그의 영혼 깊은 곳에서

그가 정말로 듣고 싶었던 말 한마디는

”너는 존재자체만으로도 의미 있는 존재야! “ 였던 것 같다.

그래서 그 한마디의 말을 듣고 싶어

그토록 아무 이유도 없이,

아니 사소한 버스표 하나 필요하다는 구실로

병원을 찾고 또 찾았는지 모른다.


 오늘도 이 세상 누군가는 지금 그 한마디의 말이 필요해

사소한 구실을 만들어

지금 누군가의 문을 두드리고 있지는 않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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