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정 폭력이 의심이 됩니다"
다급하게 한 간호가가 응급실 사회복지사 사무실에 급하게 들어왔다.
"무슨 상황인데요?" 조심스럽게 물었다.
환자에 대한 비밀 보호 의무로 인해서 환자에 관련한 개인 정보 및 상황은 임의로 각색을 하였습니다.
"임신 34주 차 된 여성입니다. 이름은 레이철이고요, 팔이 부러 저셔 왔습니다"
그 환자를 맡은 간호사가 환자에 대한 기본 정보를 설명하고 있는데, 담당 의사도 사무실 문을 열고 들어온다.
"환자 말로는 집에서 넘어져서 팔이 부러졌다고 하는데, 아무리 봐도 넘어져서 생긴 부상은 아닌 것 같네요. 의학적인 진단과 환자의 진술이 일치하지 않습니다". 담당 의사는 아무리 생각해도 넘어져 생긴 부상은 아니라고 판단한 듯했다. "가정 폭력 기록을 조회해 봅시다"
뉴질랜드에서는 성인 여성 환자가 병원 응급실에 찾으면, 의료진, 특히 간호사가 반드시 해야 하는 한 가지가 있다. 일명 'Routine Enquiry (일상적인 문의)'다. 성인 여성 환자가 매 번 응급실에 오면 늘 일상적으로 가정 폭력에 관한 몇 가지 질문을 한다. 모든 의료진은 이것을 위해 매 년 의무적으로 가정 폭력에 관련한 트레이닝을 받아야 한다.
이 질문은 이렇게 시작한다.
"가정 폭력이 일어나는 것은 매우 흔한 일입니다. 가정 폭력은 여성의 건강이나 아이들의 건강에도 영향을 끼칩니다. 그래서 집에서 일어날 수 있는 폭력에 대해 일상적으로 질문을 합니다"
여기에서 '가정 폭력이 흔하다'라고 말하는 이유는 가정 폭력을 경험하는 여자들에게 일종의 안도감을 주기 위해서이다. "아, 나에게만 일어나는 일이 아니구나"하는 생각을 하게 되면, 조금은 편안한 마음으로 자신의 상황을 나눌 수 있게 된다.
이런 진술을 하고 나면, 구체적인 질문을 한다.
"지난 일 년 사이에, 혹시 누군가가 당신이나 당신이 볼보는 사람(자녀)을 두렵게 만들거나, 협박을 한 적이 있습니까? "누군가가 당신을 통제하거나, 당신에 대해 안 좋은 마음을 들게 한 적이 있습니까?" "혹시 맞거나, 밀침을 당했거나, 빰을 맞거나, 발로 차이거나, 신체적으로 학대를 당한 적이 있으십니까?" "혹시 누군가가 강제적으로 성행위를 강요하거나 원치 않는 섹스를 하게 했습니까?" [만약, 질문에 하나라도 맞다고 하면, "누가 그렇게 했습니까?"라는 질문을 한다.
이런 질문을 하면, 뉴질랜드에서는 많은 여성 환자들이 솔직하게 자신이 가정 폭력을 경험하고 있다고 진술을 한다. 그러면 의료진은 곧바로 응급실 사회복지사에게 보고하여, 사회복지사가 보다 더 자세한 진술을 받을 수 있도록 조치를 취하게 된다. 하지만, 한국에서는 상황이 많이 다른 것 같다.
2022년 여성 가족부에서 조사한 가정 폭력 실태조사에 따르면 2019년보다 대략 7.9%나 가정 폭력이 줄었다는 결과가 나왔다. 정말로 놀라운 소식이다. 함께 박수를 치며 환호할 일이다. 그런데 놀랍게도 폭력 발생 후에 '어디에도 도움을 청한 적 없다'가 92.3%로 2019년보다 6.6%가 더 늘었다. 한마디로, 오히려 폭력을 당해도 적극적으로 도움을 청하지 않는 희생자의 수는 증가해 버렸다.
왜 적극적으로 도움을 청하지 않을까? 가장 큰 이유 중 하나는 '폭력이 심각하지 않다고 생각해서'라고 한다. "어쩌다 그런 거야" "술 먹고 실수한 것이겠지" "싸우다가 화가 나서" "때리지도 않았는데"는 식으로 받아들인 것이다. 그다음으로 높은 이유는 '그 순간만 넘기면 되어서' '부부간에 알아서 해결될 일인 것 같아서'라고 대답했다. 이 역시도 가정 폭력을 그리 심각하게 생각하지 않거나, 혹은 부부간의 문제로 받아들이기 때문이다.
하지만, 가정 폭력은 결코 부부간에 알아서 해결될 일도 아니고, 그 순간만 넘긴다고 해서 나아지는 것이 아니다. 더구나 폭력이 그리 심각하지 않다고 생각하는 것은 매우 위험한 생각이다. 언제, 어느 순간에 그 폭력이 사람의 생명까지도 빼앗아 갈 정도가 될지 아무도 모르기 때문이다.
지난주 그것이 알고 싶다에 방영된 내용을 보고 너무나 가슴이 아팠다. 두 아이를 둔 한 여성이 자신의 남편에게 무참히 살해를 당했다는 내용이다. 남편은 전 국회의원의 아들이고 변호사였다. 여성도 사회적으로 명성이 있는 사람이었다. 하지만 안타깝게도 뜻하지 않게, 더 정확하게는 완전히 무방비 상태에서 남편이 휘두른 '고양이 장난감' (가해자 주장)에 처참하게 맞고, 목이 졸려 사망을 했다.
https://youtu.be/CrFgb92 xqF0? si=brUDe2 YQRVPwZQvx
가해자인 남편은 이 모든 것이 우발적인 것이었다고 주장한다. 그러다 대다수 전문가들은 아주 계획적인 살인이라는 의견을 내놓고 있다. 중요한 것은 우발적이냐, 아니냐가 아니다. 이런 일이 벌어지기까지 이 부부 사이에는 지속적인 가정 폭력이 있어왔을 것이다 (제 개인적인 추측임을 밝힙니다). 이런 일은 절대로 한 번에 일어나지 않는다. 폭력이 쌓이고 쌓이다 보면 어느 순간 끔찍한 참극이 벌어지는 상황까지 가게 된다.
"조회해 보니, 가정 폭력 사건이 꽤 많이 있네요..."
임신 34주 차 된 레이챌의 가정 폭력 사건 기록을 조회를 해 보니 무려 10번 넘게 보고가 되어 있었다.
공식적으로 10번이 보고 가 되었다는 것은 그동안 보고 되지 않은 사건은 더 많다는 것을 의미한다.
"대부분 자신의 남편과 부부싸움을 하던 중에 남편이 폭언을 하고 폭행을 했다는 내용이네요"
사건 기록을 빠르게 살펴보며 담당 의사와 간호사에게 말했다.
"아마도 가정 폭력일 수 있을 것 같습니다. 지금 환자가 누구랑 같이 있죠?"
그러자 담당 의사와 간호가가 난감한 표정을 짓는다.
"남편이요..." 간호사가 말한다.
"큰 일입니다. 적어도 남편이 없는 자리에서 물어봐야 합니다. 어떻게든 둘을 떨어트려 놔야 합니다".
나는 담담 의사와 간호사에게 최대한 남편이 의심하지 않고 환자와 떨어질 방안을 마련해야 한다고 했다.
그때부터 007 작전이 벌어졌다. 먼저 사회복지사라는 정체가 들통이 나지 않아야 해서 급히 의사 가운으로 갈아입었다. "제가 환자를 다른 엑스레이 촬영실로 옮기겠습니다" 담당 의사는 응급실에 있는 엑스레이실이 아니라 다른 병동에 있는 엑스레이실로 환자를 이송하기로 했다.
"레이챌 씨, 저는 사회복지사 굿네이버입니다. 혹시 잠시 이야기를 해도 될까요?"
엑스레이 촬영을 하고 있는 중이었지만, 엑스레이 방호복을 입은 채로 환자 곁에서 대화를 시도했다.
레이챌은 부러진 팔 때문에 너무나 고통스러워서 제대로 말조차 하지 못했다.
"의사가 말하기로는 팔이 부러진 것이 절대로 넘어져서 그렇게 된 것 같지 않다고 해요. 혹시 남편이 그렇게 했습니까?" 몇 차례 물었지만 레이철은 대답하기를 주저했다. "괜찮습니다. 지금 여기는 안전합니다. 제게 말하시면 어떻게든 도와드리겠습니다. 보세요. 잘못하다가는 배 속에 아기도 잘못될 뻔했습니다."
무려 30분 넘게 레이챌을 붙들고 대화를 하며 설득을 해 나갔다.
"제 남편이 발로 찼습니다, 하지만 두렵습니다. 남편이 조폭 출신입니다"
드디어 레이철이 실토를 한다. 하지만 여전히 경찰에게 신고하기를 주저한다.
"바로 이런 것을 가해자들이 원합니다. 당신이 신고하지 않으면,
당신이 스스로를 보호하지 않으면 그 누구도 보호할 수 없어요"
다시 한번 그녀를 설득해 갔다.
"경찰에게 진술하겠습니다"
드디어 래이첼은 생각을 바꾸고 경찰에 진술을 하기로 했다. 그때부터 상황은 더 긴박하게 돌아갔다. 남편이 눈치를 채지 못하게 주변에 병원 경비들을 배치했다. 혹시라도 남편이 상황을 알아채고 도주하거나, 혹은 아내를 강제 퇴원시키지 못하게 하기 위해서였다. 곧바로 111 (한국은 112)에 전화를 걸어, 자초지종을 설명했다. "아주 심각한 가정 폭력입니다. 제가 지금까지 봐 온 것 중에 제일로 심각합니다"
신고를 받은 경찰은 무려 10분 만에 병원 응급실에 도착을 했고, 순식간에 남편을 체포해서 연행을 해 갔다.
의료진 모두 일제히 안도의 한숨을 내쉬는 순간이었다.
가정 폭력을 경험하는 희생자나, 그 가족들이 침묵을 하는 이유는 아주 다양하다. 단지, 폭력이 심각하게 느끼지 않아서, 이번만 참으면 나아질 것이라 생각해서, 부부 사이에서 해결된 일이라 생각이 되어서만은 아니다. 그 보다 더 복잡한 이유들도 있다. 당장 경제적인 이유가 발목을 잡기도 한다. 남편과 헤어지면 막상 먹고살아야 하는 문제에 직면할 수 있다. 아니면 자녀 양육권 문제 때문에 억지로라도 참는 경우도 있다. 특히 우리 어머니 세대는 "에휴, 내가 진짜 자식들 결혼하면 그때 가서 이 인간이랑 헤어지고 만다"하며 자녀 때문에 침묵한다.
하지만 가정 폭력은 드러내야 한다. [글쓰기의 최전선]의 저자 온유 작가는 "상처는 덮어두는 것이 아니라 들어낼 때 치유가 된다"라고 했다. 가정 폭력을 신고하는 것은 단지 처벌만을 위해서 하는 것이 아니다. 그것은 가정 내에 내재되어 있는 상처와 아픔, 허물을 적극적으로 드러내어 고치기 위해서이다. 부부 클리닉을 찾든, 심리 상담가를 만나든, 더 나은 부부, 더 나은 가정이 되기 위한 용기 있는 결단인 것이다.
침묵은 금(金)이 아니다.
오히려 침묵할수록 내 삶에 금이 가고,
내 가정에 금이 가서
결국에는 완전히 무너지고 만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