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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현욱 Sep 29. 2022

찍지 않을 용기

제2부: 세계여행(아르헨티나/브라질)

잊을 수 없는 추억이 되는 순간은 대개 내가 의식하지 않을 때 일어난다. 감탄하고, 감동하고, 감격하고 또는 나도 모르게 슬며시 머릿속에 들어와 자리를 잡는다. 그제야 카메라 셔터를 눌러봐도 이미 내 눈으로 목격한 그 광경과 시간들이 나와 함께 기억 속에 머무른다. 이런 추억들은 잠이 들기 전에나 삶을 살아가다 문득 떠올려지고 그때의 행복했던 감정에 취해 퍽퍽했던 얼굴에 미소를 짓게 만든다.


가끔가다 잊을 수 없는 추억처럼 보이게끔 사진이 멋지게 나올 곳에서 멋진 포즈로 사진을 찍고, 멋진 기억이었다고 주문을 걸기도 한다. 멋지게 나와야 하는 곳에서 생각보다 멋지게 나오지 않을 때는 보정을 하면서까지 사진첩에 저장한다. 하지만 열심히 보정하고 애를 써도 사진첩을 뒤적이지 않으면 웬만하면 떠올려지지 않는 기억이 된다.


이런 실수를 하는 이유는 사진을 ‘추억’을 저장하는 수단으로 생각해서다. 셔터를 누르는 행위는 ‘기억’ 하기 위한 행위이지 ‘추억’ 하기 위한 행위가 아니기 때문이다.


사실 나 역시 사진은 무조건, 그리고 이왕이면 예쁘고 멋지게 찍어야 한다는 주의였다. 그래서 내가 좋았던 곳뿐만 아니라, 남들이 다 멋있다고 말하는 곳에 가면, 나에겐 큰 감흥이 없더라도 엄청난 추억이 될 것 마냥, 셔터를 눌렀다. 사진첩 안에 쌓이는 사진들의 수만큼 추억들이 저장된다고 믿었다.


그래서‘월터의 상상은 현실이 된다’라는 영화를 보면서 너무나 답답했던 기억이 있다. 이 영화는 주인공 월터가 사진작가를 찾아가는 내용이 주된 스토리인 영화인데 눈 덮인 산에서 만난 사진작가는 아프가니스탄의 산속에서 ‘눈 표범’을 찍기 위해 몇 날 며칠을 고생하며 기다리고 있었다. 그리고 드디어 그 순간을 월터와 함께 마주한다.


영화에 몰입한 나는 멋있게 사진을 찍을 줄 알고 기대하고 있었는데 사진작가는 끝내 셔터를 누르지 않는다. 찍지 않는 이유를 설명하는데 그 마저도 이해가 되지 않았다.


‘왜 일까?’ 영화를 다 보고 나서도 한동안 이 장면은 내게 풀리지 않은 수수께끼 였다. 찍지 않으면 어떻게 ‘추억’하고 어떻게 ‘보여 줄 것’인가. 정말 답답한 양반이었다.


당시의 영화를 이해하지 못 한 나는 당연히 열심히 셔터를 누르며 여행을 하는 중이었고, 영화의 내용도 교훈도 잊은 지 오래였다. 그렇게 나는 어느새 세계 3대 폭포라고 불려지는 이과수 폭포에 다 달았다.


18시간을 달려 도착한 이과수 폭포에서 엄청난 낙차 소음과 함께 초당 6~8만 톤의 물이 쏟아지고 있었다. 빨려 들어갈 것 같은 폭포의 모습을 보며 온몸에 전율이 일었다. 그리고 무의식적으로 그때 기억 저편으로 잊고 있던 영화의 수수께끼 같던 사진작가의 대사가 떠올랐다.


“어떤 때는 안 찍어, 아름다운 순간이 오면 카메라로 방해하고 싶지 않아.
그저 그 순간 속에 머물고 싶지”

“그래 바로 저기 그리고 여기”


이과수 폭포를 앞에 두고 나는 저 대사의 의미가 무엇인지 정확히 이해했다. 원래 같았으면 바로 사진부터 찍었을 나였지만 사진을 찍을 생각을 할 수 없었다. 사진을 찍느라 중요한 순간을 놓치고 싶지도 않았고, 평생 기억될 이 순간에 카메라를 들고 열심히 예쁘게 사진 찍으려 노력하는 내 모습을 섞고 싶지도 않았다.


내가 카메라로 열심히 담지 않아도 내 눈으로 소중히 담고 있는 이 풍경은 평생 기억될 것이라 확신했다.


그래서  순간을 온전히 즐기고 나서 찍어도 충분하다고 판단하고 충분히 즐기기로 했다. 쏟아지는 폭포를 가만히 지켜보며 지금 이 순간,  기억 속에 카메라를 들고 열심히 찍어보려 애쓰는 나의 모습 말고, 아름다운 풍경 속에 어우러진 나의 모습  자체로만 기억하고 싶어졌다.


가끔은 이렇게 찍지 않을 용기가 필요하겠구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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