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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김병우 Dec 17. 2015

침묵하는 교육

질문이 없는 학생들

과제를 왜 네 마음대로 해?

 

 대학교 4학년인 내가 강의시간에 교수님께 들었던 말이다. 그리고 이 말 한 마디는 교수님에 대한 반발심이 생기기에는 충분했다. 나는 당연히 교수님의 말이 틀렸다고 생각했고 이내 소신을 굽히지 않았다. 허나 강의가 끝난 뒤 돌아온 것은 학우들의 독려가 아닌 꾸지람이었다.

'그러게 그냥 까라면 까지. 왜 반항을 하냐?쯧쯧 '

 대학은 무엇을 하는 장소일까? 지식을 탐구하는 곳? 취업을 하기 위한 과제? 아니 질문을 바꿔보자. 대학은 무엇을 배우는 곳일까? 난 4년 동안 무엇을 배웠을까? 일단 전공지식과 약간의 기술들을 배웠다. 또? 무엇이 있을까? 나를 포함한 대부분의 학생들은 대학에서 어떤 것들을 배웠을까?


침묵하는 법

 우리는 침묵하는 법을 배웠다. 아니 좀 더 업그레이드 시켰다고 보는 펀이 맞다. 고등학교까지 이어져 오던 주입식 교육은 우리에게 침묵을 가르쳤다. 그저 책에 있는 내용을 있는 그대로 받아들이는 4지 선다형의 문제들. 시험에 나오니까 밑줄 쫙! 이라고 말하는 교사들. 그리고 질문하지 않고 수용하는 학생들. 이는 대한민국 교육을 경험한 사람들은 다 공감하는 내용일 것이다. 그런데 대학이라고 다를까?

<과제 매커니즘>
1. 과제가 주어졌다.
2. 점수를 잘 받으려면 어떻게 해야할까?
3. 교수님의 의도와 평가기준은 무엇일까?
4. A+을 받은 선배들의 과제를 참고하자.

 과제를 받은 시점부터 우리는 '점수'를 생각한다. 과제를 해결하는 과정에 집중하는 것이 아니라 '점수'를 잘 받는 과정에 집중하는 것이다. 결과적으로 제출자의 의도를 파악하고 그에 부합하는 내용물을 만들어내는 것이다. 이 과정에는 가장 큰 문제점이 내포되어 있다.

바로 "호기심의 결여"이며,
의문과 질문의 부재이다.


 학생들은 지식을 수용한다. 있는 그대로 수용한다. 왜냐하면 그것이 높은 점수를 받는 지름길이기 때문이다. 그렇기에 그들은 자신의 점수를 손에 쥐고 있는 교육자의 생각을 전적으로 수용한다. 그들의 교육이 무릇 나쁜 방향을 향하고 있다 하더라도 학생들은 있는 그대로 수용한다. 그들은 침묵한다. 행여 질문을 하거나 반론을 제기하는 학생이 있다면 이단아를 보듯 바라본다. 그리고 나대는 놈이라는 소리도 듣게 된다.

 언제부터 질문이 사라진 것일까? 언제부터 질문은 금기시 되었을까? 하나 확실하게 말할 수 있는 것은 지금의 세상이서 침묵은 정답이라는 것이다. 의문을 갖지 않고 질문을 하지 않는 사람은 소수로부터 사랑받는다.


 허나 침묵의 끝은 침몰이라는 사실을 깨달아야 한다. 슬픈 참사에 대해 "아이들이 철이 없어서 위험을 감지하지 못했다."라는 망언이 나올 정도로 대한민국은 침몰하고 있다. 하지만 아이들은 철이 없었던 것이 아니다. 그저 너무 착해서 침묵하고 있었을 뿐이다. 그리고 "가만히 대기하라."는 말과 함께 배는 침몰했다.


 침묵을 가르치고 강요해선 안 된다. 질문과 호기심을 장려해야 한다. 그리고 이것을 수용하고 이해할 수 있는 교육자를 양성해야 한다. 하지만 안타깝게도 이미 교육시스템은 침묵을 기르고 있고 이 시스템 속에선 침묵을 가르치는 교육자들이 양성되고 있다. 문화는 위에서 아래로 향한다. 침몰하고 있는 교육문화를 바로 세워야 한다. 그것이 침묵을 강요당한 나머지 침몰한 많은 이들을 위로하는 일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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