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당신 자신의 경험으로부터 인용할 때만이 그 말들에 무게가 실린다’
이름을 붙이는 것.
감각하고, 생각을 언어로 표현하는 것.
수련하면서는 선생님의 감각과 큐잉을 따라갔다면 이제는 나의 것을 떠올려 나의 흐름으로 요가를 이끌어가는 것.
그 연습을 계속해서 하고 있기에 책에서 언급하는 것들을 나의 경험과 생각으로 풀어내본다.
번뇌가 가득했던 시기를 거쳐오며 ‘무지, 이기심, 집착, 증오, 육체의 삶에 집착’으로부터 비롯되는 것들을 안다. 그리고 지금은 ‘덕스러운 자질의 지속적인 수행으로 인해서 번뇌들이 임시로 밀쳐져 있는 상태’ 쯤인 것 같다.
현실 세계 속의 나는 끝없는 번뇌로부터
‘참자아는 영원하다. 결코 변화하지 않는 것입니다.’ 를 떠올려야 했다. 투영 혹은 왜곡으로부터 집착과 증오를 겪고, 과거의 시간들에 최상의 시간들만을 기억해 현재를 초라하게 만들었던 무지로부터 내면 안에 있는 불에 성냥을 긋는다. 어떤 것이든 다 타버리면 청정해지고야 말았다. 우리의 마음을 다시, 견고하게 할 기회를 주며 어떤 불순함을 태워 버리기 때문에.
좋은 게 좋은 게 아니고, 나쁜 게 나쁜 게 아니라고 누군가 해주었던 말을 떠올랐다. 그게 그때는 왜토록 위로가 되었는지. 쾌락도 행복도 아닌, 참다운 자아로서 존재함에 위로를, 편안함을 느끼는 것. 그 받아들임이 귀했던 것이다.
요가는 무엇인지, 나는 누구인지에 대한 공부를 계속해서 이어가는 지금 고행(따빠스), 영적 공부, 신에게 헌신의 영역을 살펴본다. 영역화하지 않았을 뿐 나의 요가 여정에 분명 떠올렸던 경험들이다. 다만 수행하는 것, 계속하는 것에 담기는 의미가 크기에 다짐처럼 적어본다.
‘일단 어떤 것이 숙성되면 그것은 다음으로 넘겨져야 합니다’
헌신, 헌신. 주는 것, 주는 것. 사랑하는 것, 사랑하는 것. 찌따 브르띠의 동요로부터 자유로워진다.
마음
’사람은 그의 마음에 따른다.‘
마음 공부로서의 요가는 곧 마음의 초월을 강조한다. 제한된 마음은 무제한의 존재를 이해할 수 없기에 우리는 마음을 어떤 곳에 고정시키고 생각할지, 어떤 경험을 어떤 마음에 담을지 부단히 집중해야 한다.
뿌루샤와 쁘라끄리띠.
보는자와 보이는 그 밖의 모든 것.
둘을 결합하여 동일시할 경우 모든 고통의 원인이 된다. 자연은 여기 당신에게 경험을 주기 위해서 있으며, 궁극적으로 당신이 그것의 속박으로부터 자유롭게 하기 위해서 있다. 그것을 잊어서는 안된다.
물질 혹은 자연은 변화한다.
이어서, 빛.
빛은 순수하고 결코 변화하지 않지만 자연의 매개체이기에 변화하는 것으로 나타난다. 원래의 본질은 같다지만 우리는 다르게 나타나는 것처럼. 우리 모두는 빛나는 존재임에 부풀어지는 마음이 있지만, 나의 빛을 더하는 과정이 없었다면 혹은 쉬웠다면 삶의, 요가의 여정이 어떻게 값질 수 있었을까 생각한다.
’그 습관을 오랜 시간동안 계속하면 그것이 우리의 성격이 됩니다‘
시간의 힘, 꾸준함의 위대함을 깨닫는 요즘 나는 무엇에 진심을 다해 오랫동안 영위하고 싶은지 고민한다. 되고 싶은 나와 그 자체로의 참나 사이에서.
이해의 빛만이 무지의 어둠을 제거할 것입니다
이해는 지금 서 있는 곳 아래에 선다는 의미를 담고 있다. 어느 입장에 서있는가, 어떤 것을 경험하는 느낌임에 이해 아래에 서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