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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김효준 Jul 28. 2022

유대인 부모가 자녀의 독립심을  키우는 이유

자녀에게 내비게이션이 아닌 나침반을 쥐어 주는 유대인

 유대인들은 말한다, “물고기 한 마리를 잡아주면 하루를 살 수 있지만, 물고기를 잡는 법을 가르치면 일생 동안 먹고살 수 있다”고.

 자녀를 잘 키우고자 하는 부모의 마음은 자연의 이치다. 부모라면 인간, 짐승 할 거 없이 자녀를 사랑하며 귀하게 여긴다. 하지만 자녀를 향한 지나친 사랑은 독이 되어 자녀의 주체성, 자립의 싹을 자를 수 있다. 자녀가 부모의 품에서 떠나지 않을 것이라면 상관없겠지만, 언젠가는 부모의 곁을 떠나 홀로 삶을 개척해 나가야 하는 순간이 온다. 이때 자녀가 본인 삶에 책임감을 갖고 옳은 방향으로 가길 바란다면 자녀 손에 답을 쥐어 주어선 안 된다. 대신 자녀가 직접 답을 찾을 수 있는 방법을 알려주어야 한다.


 유대인들이 하나님으로부터 토라를 하사 받을 때 하나님은 보증인을 요구하셨다. 그들은 보증인으로 자녀를 하나님께 드렸고, 그 대가로 토라를 받을 수 있었다. 이를 계기로 유대인들에게 자녀는 본인의 소유가 아니게 되었다. 자녀는 온전히 하나님의 것이며, 그렇기에 자녀에게 이래라저래라 명령해서는 안 된다는 관념이 유대 문화에 깊이 뿌리내렸다. 상호 소통적인 방식을 지향하는 유대인들의 교육 문화가 여기서 파생되었다. 유대인들은 자녀가 흥미를 가지고 이루고자 하는 꿈을 인정하고 전폭적으로 지원하며, 본인의 뜻을 강요하지 않는다.

 그들은 자녀를 본인과 동등한 하나의 객체라고 생각한다.

 하나님이라는 절대자 앞에 모든 인류는 평등하다는 유대 교리로부터 기인한 발상이다. 그들은 자녀가 평탄한 삶을 살길 기대하지 않는다. 크던 작던 본인만이 가진 개성과 능력으로 세상의 발전에 기여하여 세상을 더 나은 곳으로 만들 수 있길 바란다. 노벨상 수상자 중 유대인들의 비율이 높은 이유는 세계를 더 나온 곳으로 만들고자 하는 정신이 수반된 덕이다. 또 자녀가 13세가 되어 성인식을 치르면 유대인으로서 살 것인가, 말 것인가에 대해 묻는다. 물론 양자 일지라도 말이다. 스스로의 삶과 정체성을 본인의 의사대로 결정할 수 있는 선택권을 주는 것이다.

 필자는 학창 시절 비교적 싼값에 교환학생으로 유학을 갈 수 있는 기회가 생겨 미국엘 간 적이 있다. 당시 거주한 곳은 집마다 외양간이 있고, 마당 앞에는 지평선을 따라 펼쳐진 광활한 평야가 보이는 미국 남부의 외딴 시골이었다. 혹자는 갑갑한 일상에서 벗어난 자유로운 유학생활을 떠올릴지 모르겠지만, 실상은  반대였다. 같이 살던 호스트는 가족활동을 중시하는 보수적인 백인 가족이었다.  탓에 혼자 시간을 보내는 것은 상상조차   없는 일이었다.  방에는 책상이 없어 5 배기 꼬마가 뛰노는 부엌에서 공부해야 했다. 가택은 너무 오래되어 금방이라도 무너질 것만 같았고, 이따금씩 쥐가 나오는 열악한 곳이었다.

 어릴  기대했던 유학과 현실 사이에는 괴리가 존재했다. 외딴곳에 고립되어 힘들어도 의존할 사람이 없음에 몰려오는 고독함, 괜히  건가 하는 회의감과 매일같이 분투했다. 더군다나 비교적 늦은 시기에 유학을  것이었기에 대학에 진학하기 위해서는 밤샘 공부를  먹듯이 해야 했다. 심신은 지쳐만 가는데 끝이 보이지 않아 이제 그만 돌아가고 싶다는 생각이 머릿속을 가득 채웠다. 과거였더라면 진즉에 포기했을 것이다. 하지만 여기서 그만두면 미래에도 포기를 일삼는 못난 어른이   같았다. 그러자  순간을 버텨내야만 한다는 위기의식이 들었다. 놀랍게도 생애 처음으로 어린 ‘로부터 성숙해지고자 발버둥 치기 시작했다.

 니체는 말했다. “풍파는 언제나 전진하는 자의 벗”이라고. 홀로 떠난 유학길은 태풍과 같이 필자를 덮쳤다. 그러나 태풍이 지나가고 난 후 필자는 과거와 비교할 수 없을 정도로 강인해졌다. 새로운 문화를 접하며 세상을 바라보는 시야를 넓혔고, 부정적인 감정과 씨름하며 인내심을 키울 수 있었다. 괴롭게만 느껴졌던 혼자만의 시간이 성장의 원동력이 되어주었다. 학력보다 더 값진 것을 보상받은 기분이었다. 정신과 의사 가타다 다다미는 저서 『철부지 사회』에 “자녀가 ‘진짜 어른’으로 성장하길 원하면 스스로 실패를 극복하는 경험을 해보아야 한다”고 말한다. 모든 인간은 삶의 파고를 넘어가며 성장을 이룩한다.

 세상이란 원래 본인 뜻대로 흘러가지 않는다. 본인의 뜻대로 살지언정, 그 과정 속에는 분명 하기 싫은 일을 감내해야 하는 순간이 오기 마련이다. 삶 속에는 무수한 역경과 실패가 도사리고 있다. 슬프지만 삶이 고난의 연속인 것은 만고의 진리다. 본인의 자녀는 조금이라도 덜 힘들게 살았으면 하는 바람에 살신성인하여 자녀를 양육하는 부모의 심정은 이해한다. 하지만 그럴수록 더더욱 자녀가 홀로 설 수 있도록 도와주어야 한다. 병아리가 부화하는 것이 힘겨워 보여 껍질을 대신 깨주면 감염 혹은 과다출혈로 인해 죽을 수 있다. 알을 파각하고 나오는 순간을 스스로 감내해야지만 건강한 병아리로 부화할 수 있는 법이다.


 진심으로 자녀가 잘 되길 바란다면 적당한 때에 자녀를 품에서 떠나보내야 한다.

모든 인간은 날개를 갖고 태어난다. 부모의 역할은 자녀가 날개를 필 수 있도록 도와주는 것뿐이다. 날개를 펴 자유로이 세상을 부유하는 것은 자녀의 몫이다. 혹여 날개가 부러져 추락할까 두려워할 필요도 없다. 잠시 날지 못하여도 괜찮다. 그것을 극복하고 다시 도약하는 것 모두 성장을 위한 인생의 필연적 과정일 뿐이다. 자녀는 이미 답을 알고 있다. 자녀를 믿어야 한다. 아이들은 믿는 만큼 더 높이 비상한다. 고로 자녀의 네비게이션이 되어주는 대신 손에 나침반을 쥐어주자. 훗날 둥지를 떠나 날개를 펴 힘차게 날아올라 스스로 목적지를 향해 나아갈 수 있도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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