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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감자 Jul 23. 2023

"우리 오늘 꿈을 이뤘네"

이제 새로운 꿈을 만들자.

3학년을 마치고 했던 휴학. 동기들 몇몇은 함께 휴학했고, 몇몇은 그대로 4학년의 길을 밟았다. 나는 휴학을 하면서 힘을 길렀다. 그중 하나는 원하지 않는 사람과의 불편한 시간은 갖지 않아도 된다는 마음의 힘이었다. 강박을 갖지 않고 억지로 학교 내의 '비즈니스적 관계'를 가지려 노력하지 않았다. 동기들이 어울리고 하하호호 떠드는 모습들이 SNS에 올라와도 아랑곳하지 않고 나만의 관계를 형성해 나의 '편안함'을 추구하고 지키려 노력했다. 그렇게 지켜낸 동기와 종강 즈음 만나 피크닉을 갔다.


 피크닉이라기엔 학교 내에 있는 잔디밭이었다. 3월이 되면 그곳에서 새내기들과 선배들이 한데 뒤엉켜 자기소개를 하고, 저녁에는 잔잔한 바람을 맞으며 돗자리를 깔고 배달음식을 시켜 먹거나 간단히 음주가무를 즐기는 곳이다. 우리는 그 잔디밭에서 돗자리를 깔고 책을 읽기로 했다.

 험난한 4학년 한 학기를 마치고 온 친구의 얼굴은 밝았다. 본가로 돌아가기 전 학교에서의 만남이었고, 돈도 없는 터라 우리는 '비싼 편의점'은 가지도 못하고 저렴한 개인 마트로 가 고심하며 저녁 끼니를 골랐다. 인당 5천 원도 넘지 않는 식사를 들고 돗자리에 앉았다. 그동안 학과 내에서 있던 일, 휴학하면서 겪었던 일들을 이야기했다. 이야기를 줄줄 늘어놓고 웃기도 하고 짜증내기도 하고. 정말 진심을 다해 '행복했다'라고 말할 수 있는 날이었다.


 그러던 중 우리의 전공에 대해 이야기를 나누게 되었다. 지난 실습에서 몸과 마음이 지쳐 나의 전공 적합성에 대해 고민하게 되었다는 이야기. 친구도 비슷한 고민을 하고 있었다. 대학교 4학년의 나이임에도 끊임없이 미래에 대해, 직업 선택에 대해 고민해야 한다는 것이 안타깝지만 현실적이고 필수적인 일인 것 같다. 생각에 대한 첫 질문은 이러했다.


"너는 어떤 사람이 되고 싶어?"


 친구는 자신이 바라는 바를 이야기했다. 정확히는 기억나지 않지만 기억에 남는 말은-


"나는 눕고 싶을 때 언제든지 누울 수 있는 사람이 되고 싶어. 그래서 오늘 돗자리를 샀어."


 만나자마자 돗자리를 사서 품에 안고 나를 기다리던 친구가 떠올랐다. 거창하게 인생의 가치관이나 멋들어진 말들을 떠올리던 나의 생각이 되려 초라해 보일 만큼 친구의 눈은 빛났고 목소리엔 힘이 있었다.


"그럼 넌 오늘 꿈을 이뤘네!"


 친구는 꿈을 이룬 사람이었다. 이번엔 내 차례였다.


"너는? 어떤 사람이 되고 싶어?"

"나는 아이들이 닮고 싶은 어른이 되고 싶어."


 답을 하다 문득 떠올랐다. 휴학하고 한 프로그램에서 만난 중학생 아이는 그날 내가 잔디밭에 누워 친구와 소풍을 즐길 거라는 말을 듣고-

'선생님처럼 살고 싶어요.'

 이런 류의 말은 이날이 처음이 아니었다. 20살 봄에 처음 만난 고등학생 아이는 나와의 마지막 만남에 편지를 써왔다. 코로나로 인해 다정한 말을 주고받거나 시간을 자주 보내지 못했음에도 편지에는 이렇게 쓰여있었다.


'선생님 같은 어른이 되고 싶어요.'


 이제 막 전공 기초를 배우고 있는 20살 대학생이 무슨 어른일까 싶지만, 나는 처음 만난 아이에게 내가 듣고팠던 말을 들었다. 거창하고 대단한 것이어야 한다고 생각했던 나의 무의식 속 강박이 그런 말들을 가리고 있었다. 멀리 있던 꿈도 목표도 아니었고 이미 이룬 것들이었음에도 나는 보지 못했다. 더 멋들어진 활동을 하고, 큰 기업에서 대외활동을 하고 자격증을 따내는 친구들을 보며 계속해서 작아지고 있었으니까.

 친구는 내 말을 가만히 듣더니 말했다.


"너도 오늘 꿈을 이뤘네!"

"그러네!"

"우리는 오늘 꿈을 이룬 사람이야!"


 다시 생각해도 미소가 지어질 만큼 당당하고 떳떳하고, 당찬 친구의 목소리가 귓가에 맴돈다.



 꿈은 거창하지 않아도 된다. 남들이 말하는 기준에 나를 맞추지 않아도 좋고, 내가 그들의 기준에 맞는지 검열하지 않아도 된다. 세상이 말하는 대기업에 들어가지 않아도 된다. 부자가 되지 않아도 된다. 성공해서 멋진 외제차를 몇십대 끌지 않아도 된다. 부모님 집을 사드리지 않아도 된다.

 꿈은 직업이 아니어도 된다. 꿈은 능동적이어야 한다.

어디선가 들었던 말을 기억하고 나의 목표를 그나마 수정해 '아이들이 닮고 싶은 어른이 되는 것'이라고 생각했는데, 나조차도 그것이 잘 안 되는 것 같다. 그런 어른이라면 아마 무슨무슨상은 받아야 그런 자격이 있다고 생각했던 나의 무의식을 그날에 엿보았다.

 꿈은 능동적이어야 한다. 매일 기쁠 것, 하늘을 보며 웃을 것, 힘들 때 조각 케이크 하나쯤은 먹을 돈이 있을 것, 남 눈치 보지 않고 행복하게 음식을 먹을 것. 세상이 보기에 작아도 내가 보기에 소중한 꿈이면 됐다. 그것을 이루는 기준은 세상이 아니라 내가 되니까 이루는 것도 쉽다. 그렇게 매일을 '꿈을 이루는 사람'으로 살아가는 것만큼 기쁜 것도 없다.

 이날 친구와 나는 새로운 꿈을 정하기로 하고 헤어졌다. 이 글을 읽는 당신도 소중한 꿈을 하나 정해 보면 좋겠다. 하루가 되었든 이틀이 되었든, 일주일, 한 달이 걸리더라도 당신은 그 꿈을 위해 오늘과 내일을 살았으면 좋겠다. 이번주 내로 영화 한 편은 볼 수 있는 내가 되는 새로운 꿈을 꾸며, 오늘 밤도 잠에 든다. 요즘처럼 고물가 시대의 만육천 원 영화를 보는 '나'는 얼마나 멋질지. 그렇게 설레는 마음으로 잠에 든다.


"우리 다음에 꿀 꿈을 새로 정하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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