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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감자 Aug 20. 2023

단 것만 먹을 수는 없잖아요

때로는 쓴 게 들어와도 넘어갈 수 있는 용기도 있어야 하니까.

 고등학교 입학식 날. 시골에서 갓상경한 아이처럼 학교 이곳저곳을 돌아다녔다. 다니던 학교의 약 11배가 족히 넘는 아이들과 나란히 열을 마주하고 서있으니 그것만큼 새롭고 낯설고, 신나는 일도 없었다. 그렇게 나는 그 자리에서 겁도 없이 소위 '잘 나가는 아이'의 번호를 따내기도 했고, 거리낌 없이 웃으며 이야기하기도 했다. 웃프지만 지금의 나는 겁부터 먹고 상상도 못 할 일이었을 텐데.

 같은 반이라며 같은 줄에 지정받은 아이들과 나란히 서서 인사를 나누었다. 갓상경한 느낌을 받은 아이는 나뿐만이 아니었다. 같은 반에 있던 다른 아이들도 시골에서만 살다 이제야 도심으로 나왔다며 나와 같은 기쁨을 느끼고 있었다. 우리는 그렇게 가까워졌다. 그를 포함해 반 아이들 전부와 친해졌다고 해도 과언이 아닐 만큼 나는 사람에 대하여 가리고 재는 게 없었다. 남자든 여자든, 담배를 피우든 술을 먹든, 공부만 하든 놀기만 하든 나와 친해지면 그저 '친구'였다.


 '언제든 편하게 같이 앉아 점심 급식을 먹을 수 있는 사람'이 내가 내린 친구의 정의였다. 낯을 가린다고 생각했던 나의 성격은 알아차리지 못할 만큼 주변 친구들에게 활발한 아이로 자리 잡혀 있었다. 나는 그렇게 친구의 '편안함'과 '가까운 거리감'에 취해있었다. 그중 한 친구는 나를 각별히 생각했던 것 같다. 내가 내리는 친구의 정의와는 조금 달랐다. 그는 나와 '처음 친해진 친구'라는 명목하에 나를 자신과만 대화하고 가까이 지내길 바랐다. 나는 꿈에도 모르고 그 친구를 어르고 달래며 평소처럼 대했다. 그게 그 친구에게는 맞지 않는 '친구로서의 정의'였을 것이다.


 내가 원하는 편안함과 친근감은 결코 단일 상품이 아니었다. 물물교환을 하듯 나의 무언가를 내어주어야 성립되는 거래였다. 내가 그로부터 편안함과 친근감을 얻었다면, 나는 그가 원하는 '유일함'과 '안정감'을 주어야 했다. 우리의 관계는 그렇게 틀어졌고, 멀어졌다.



 누군가와 가까워지고 멀어지는 일. 관계란 그런 것이다. 가까워지다가도 멀어지고, 다시 가까워지는 일. 꼭 파도를 닮아있어 자연히 멀어지고 다가오는 일, 그런 잔잔함이 가장 아름다운 관계이고 파도이다. 어느 날 갑자기 불현듯 덮치는 쓰나미가 행복한 관계라고는 볼 수 없는 것처럼.

 내가 상대의 무언가를 원하고 바랐다면 상대의 단점, 쓴 맛까지도 삼켜낼 수 있어야 한다. 어찌 보면 '포기'라고 볼 수 있지만, 그것은 용기가 되어 우리를 더욱 단단하게 할 것이라 확신한다. 상대 또한 어찌 나의 단맛만 보고 나와 하루들을 보낼 수 있을까. 상대도 나의 쓴맛을 삼켜내고 감내하며 희생하고 있을 수 있다는 것을 잊어서는 안 된다.

 연인이든, 친구이든 서로를 향하는 마음이 강하고 단단하면 그만큼 쉽게 부러지고 내 마음에 상처를 입게 된다. '자기는 왜 그래?', '너는 왜 그래?' 하는 대화는 끝도 없고 영양가도 없고, 사랑으로 시작한 논쟁이 결국은 상처로 막을 내리게 된다.

 잊지 않았으면 좋겠다. 내가 상대의 단 맛을 보고 다가갔다면 그에 따라오는 쓴맛도 감내할 준비가 되어있어야 함을. 상대 또한 그를 감내하고 있음을.

 우리는 그것을 '포기'라고 부르고, '용기'라고 부르고, '성숙'이라고 부른다. 관계에 있어 너무 상처받지 않는 당신이 되기를 바란다. 상처로 시작한 관계는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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