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감자 Mar 28. 2024

내 안에 나보다 남이 있다

열정, 감정기복, 그리고 잿가루가 된 나에 대하여

 난 감정의 폭이 꽤 넓은 편이다. 쉽게 말하면 감정기복이 심한 편이다. 사람을 만나거나, 공부를 하거나, 취업 준비를 하거나, 알바를 할 때 등등. 주변의 것들에 쉽게 영향을 받는다.


 친구와 살짝 다퉜다. 절대 좁혀지지 않을 이야기를 두고 논하느라 각자의 시간과 감정을 쏟아냈다. 설득에 가까운 이야기가 점차 호소에 가까워지며 부정적인 감정이 물을 흐리듯 대화가 탁해졌다. 친구는 일을 하고 있었고, 나는 곧 아르바이트 출근 시간이 다가오고 있었다. 괴로다. 서로가 맞지 않는 타이밍에 감정에 허덕여 눈물이 떨어지는 걸 막기 어려웠다. 이 친구와 연을 계속 이어나가야 할까? 생각했다. 안 보고 있으면 보고 싶고, 궁금하고, 입 꾹 다물고 있으면 숨을 푹 내쉬는 모양새가 무엇인지. 나는 왜 이 관계를 끊을 수 없는 건지 궁금했다. 힘들었다.


  내 우울한 감정을 누군가 받아줄 수 있는 게 아니란 사실이 나를 더 비참하게 만들었다. 인정도 사랑도, 배려도 따뜻한 온정도, 심지어는 내 마음속의 평화까지 다른 사람에게 달려있다는 사실에 내가 더 힘들었던 것일 수 있다. 내가 갖고 있는 우울을 남에게 전가시키지 않으려 발버둥 쳤다.

 고고한 듯 하지만 사실은 발버둥 치며 그 누구보다 치열하게 사는 것을 백조라고 한다면, 나는 지금 겉도 마음도 흩뿌려진 재 같은 새였다. 날지도 못하면서 수영도 못하는 어딘가의... 동물. 우울했다. 내 얼굴빛을 본 친구는 많이 힘드냐며 농담을 던졌다. 웃으라며 너스레를 떨었지만 길을 잃은 나는 웃을 줄도 몰랐다. 어떻게 해야 남이 아닌 나로 인한 마음의 평화를 찾을 수 있을까. 내 마음속에 나보다 더 큰 사람이 들어서있는 것만 같다.


 모든 걸 접어두고 떠나고픈 밤이었다. 모든 걸 접고 사람도 접고, 시작도 않은 일을 접고 숲 속으로 들어서 다 낡아가는 집 한 채를 사서 언제 무너질지 모르는 지붕 아래서 언제 올지 모르는 끝을 기다리고 싶었다. 그래야 내 안에 내가 더 들어찰 것 같아서. 그런 생각이 드는 밤이었다.

 어떻게 해야 내 안에 남보다 내가 더 들어찰 수 있을까. 남이 아닌 내가 나를 안아주고 사랑할 수 있을까. 언제쯤이면 그게 가능할까?

작가의 이전글 음치박치몸치의 보컬 학원기
작품 선택
키워드 선택 0 / 3 0
댓글여부
afliean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