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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감자 Mar 05. 2024

음치박치몸치의 보컬 학원기

미련 맞게 최선을 다하는 사람의 도전기

 무슨 일이든 열심히 최선을 다하는 나다. 

일이든, 과제든, 연애든, 효도든. 내 선에서 '미련하다'는 말을 들을 정도로 열심에 열심을 더했다. 최선을 다하곤 한다. 그 대상이 무엇이든 그 대상과 나의 관계를 떠나 '나'의 삶이니까. 나는 '나'의 삶에 최선을 다하고 싶어 미련하리만치 몸과 마음과 시간과 돈을 쏟아붓는다. 그래서 후회해 본 적이 그렇게 많지 않다. 시험 전날 밤샘보다 잠을 선택한 내가 가끔 후회스러울 뿐이지.




 한 번은 노래가 부르고 싶었다.

 성격이 외향적인 것도, 그렇다고 센스가 좋아 쉽게 사람을 이끌던 아이도 아니었던 나는 속에서 '멋진 나'를 상상만 하곤 했다.

무대에 오른 나를 보고 깜짝 놀라는 친구들.

생각지 못한 자리에서 생각지 못한 내 능력을 보고 놀라는 사람들.

'어떻게 이럴 수 있냐'며 뜻밖의 이미지로 칭찬받고 인정받는 내 모습들.

 내가 가장 접근하기 쉬운 게 노래였다. 그렇게 마음속으로만 상상하다가, 어느 날. 덜컥 노래학원을 등록했다. 일대일 레슨으로 적당히 방음이 된 학원은 입시생들의 전쟁터였다. 앳된 얼굴의 아이들이 책가방을 메고 학원 문을 여닫는 그 사이에서, 난 전공책이 두둑이 든 가방을 들고 학원 문을 열었다.


 큰 목소리로 누군가의 시선을 집중시켜야만 내 노래 실력이 는다는 당연한 사실에도 힘들었다. 난 누군가의 앞에서 그렇게 큰 목소리를 내 본 적이 없기 때문이다. 매 수업시간마다 선생님과 적당히 수다를 떨며 아이스브레이킹이 끝나면 곧장 고음 노래로 들어가셨다. 발라드를 부르고 싶다는 내 요청이었다. 당시 내 플레이리스트는 소주 한 잔 하며 떠나간 연인을 그리워하는 사람들로 가득했다. 그래서 더 발라드를 택했다.

 선생님의 시범 후에, 매 순간 입을 뗄 때마다 나는 '안 될 것 같은데요' 하며 떨리는 목소리로 소리를 냈다. 발성연습부터 시작했는데 나는 10분에 한 번씩 물을 한 컵 마셔줘야 했다. 긴장이 되는지 목에선 사람소리보다 쇳소리가 더 났다.

목에 힘을 주지 말라는데, 그럼 어떻게 소리를 내요.


 소리를 어떻게 내야 할지 조금씩 배우고 그 '느낌'을 터득한 나는 조금씩 노래를 알음알음 부를 수 있었다. 그렇게 두 달을 했다. 자신감이 없던 첫인상 때문이었는지 선생님은 내게 한 번도 채찍을 꺼낸 적 없이 당근만 내어주셨다. 난 그 당근에 취했고... 수업보다 수다 떠는 게 더 편해진 사이가 되었다. 두 달 동안 50분 중 10분은 수다를 떨고, 40분은 노래를 불렀다. 이론부터 차근차근 배우지만 참 어려웠다. 나는 늘 속으로 '안 될 것 같다'라고 생각했었거든. 누군가 밖에서 내 목소리를 듣고 있을 것만 같았다.


 계속된 선생님의 당근과 나의 일정으로 인해 학원은 끊기로 했다. 너무 내가 속으로 '안 될 것 같다'는 생각을 해왔어서, 아쉬울 줄 알았다. 하지만... 난 정말 불태웠던 것 같다. 하나도 아쉽지 않고 후련하게 학원을 나올 수 있었다. 오히려 학교가 끝나고 30분의 버스를 타고 학원 가는 길은 즐겁기까지 했으니. 난 정말 최선을 다했다.



 이 이야기는 내 친구들도 잘 모르는 이야기다. 괜히 이야기하면 노래 한 번 해보라고 할까 봐. 괜히.

하지만 두 달 동안 썼던 나의 28만 원은 헛되지 않았다고 생각한다. 난 취미를 갖고 싶었고, 그중 하나가 노래 한 곡은 잘 부르고팠던 내 소망이었다. 안 될 것 같다며 잔뜩 쫄아있었던 주제에 생목소리를 고래고래 잘도 질렀다. 혼자 있는 방에서 발성연습도 열심히 해봤다. 참 재미있었다.

 당시 친구에게 노래 학원을 다닌다고 처음 고백했을 때, 난 친구가 작게라도 웃을 줄 알았다. 내가 들었던 건 '멋있다'는 말이었다. 또, 또. 이 인정욕구가 스멀스멀 올라와 내 자존감을 한 단계 올려주더라.

내가 아닌 남에게서 인정을 바랐던 내 모습이 아쉽지만, 성적이나 무언가 목적성을 두고 해야만 하는 과제가 아니라 정말 순수한 나의 만족감을 위해 돈을 썼던 게 처음이라 행복했다. 선생님과 지나치게 친해져서 수다만 떨 때는 아쉽기도 했지만. 아쉬운 게 참 많지만. 행복했다. 내게 28만 원이 꽤 큰돈이었음에도 나는 아깝지 않았다. 그때 처음으로 알았던 것 같다. 나한테 돈 쓰는 건 아까운 게 아니구나.


 앞으로도 나는 '미련 맞게' 최선을 다하려고 한다. 이런 내 기억들과 경험들이 쌓이고 쌓여서 나를 조금 더 안아줄 수 있을 것 같아서. 남이 무어라 해도 나는 '미련 맞게' 최선을 다할 것이다. 미련 맞게. 미련 맞은 최선은 정말 깊은 곳에서 빛이 되어 길을 밝혀주니까. 남들은 모르는 내 길을. 그렇게 생각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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