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어도 조금, 중국어도 조금, 일본어도 조금, 수어도 조금.
고등학교 3학년, 대학 입시가 끝나고 합격 발표까지 났던 학교의 분위기는 풀어질 대로 풀어져있었다. 그때의 나는 그동안 하고 싶었던 일들을 주욱 적어보았다. 아르바이트하기, 아이폰 사기, 혼자 여행 가기, 치즈볼 먹기, Imagine Dragons 콘서트 가기... 등등. 그중 하나는 '수화 배우기'였다.
마땅히 할 것이 없으니 우리는 다 같이 공포영화만 봤다. 교과 선생님들은 그런 우리를 두고 조용히 들어오셔서 개인 업무를 하시다 종이 치면 나가시고, 다음 교과 선생님이 들어오시고. 반복이었다. 공포영화가 취향이 아닌 친구들은 영화를 보는 친구들에게 방해가 되지 않도록 교실 뒤편에서 돗자리를 깔고 조용히 수다를 떨거나 책을 읽곤 했다. 나는 공포영화라면 질색 중에 질색인 사람이라 귀에 소리조차 들어오지 않게끔 캡이 씌워진 줄 이어폰을 끼고 친구와 함께 유튜브에서 수화를 배우기 시작했다.
모음과 자음, 그리고 그것을 합친 단어를 말하거나 일상생활 속에서 쓸 수 있는 수화들을 배웠다. '학교', '학교에 갑니다', '대학교', '고등학교' 등의 단어를 배우면서 언젠가 봉사를 가게 된다면 마주칠 상황에서 빛날 나를 조금은 기대하며 공부했다. 솔직히 봉사의 의미보다 '멋있을 나', '빛날 나'를 기대하며 공부했던 게 더 크다. 그때 당시 내 주변엔 수화를 아는 사람이 단 한 명도 없었으니까.
자기소개까지 배우며 친구와 써먹고 있을 때즈음, 학교에서는 입시 끝난 고등학교 3학년을 등교시키는 게 의미가 없다고 생각했다. 어느 학교나 그렇듯이 우리도 12월에는 아껴두었던 현장체험학습 신청서를 내고 등교를 하지 않았다. 각자 자격증 준비를 하거나, 여행을 가거나, 운전면허를 따는 등 시간을 보냈고, 나는 아르바이트를 시작했다. 그렇게 내게서 수화는 잊혀갔다.
아르바이트를 하다 보면 정말 다양한 사람들을 마주한다. 그중에서도 종종 수화를 쓰시는 분들이 오신다. 그리고 그런 테이블에는 꼭 음성으로 의사소통이 가능한 분이 앉아계시고, 나를 포함한 알바생들은 주로 그분과 대화하며 주문을 받고 음식을 내어드린다.
마감할 때 즈음이 되면 얼추 할 수 있는 일을 다 해놓고, 손님들이 다 빠지기만을 기다린다. 드시는 분들 앞에서 빤히 쳐다보는 것은 부담스러운 일일 테니 알바생들끼리 떠들거나 빈 테이블에 앉아 멍을 때린다. 몸으로 하는 일이라 잠시 아무것도 하지 않고 '멍 때리는 시간'은 서비스의 질을 위해서라도 필수적이다. 정신적인 휴식을 주고 나면 테이블의 말소리가 하나 둘 들려온다.'
그러던 어느 날은, 한 테이블에서 아무런 대화소리도 들리지 않았다. 사람이 저렇게 많은데- 하고 보니 수화를 쓰시는 손님분들이셨다. 바빠서 뛰어다니는 와중에 음식을 내어드리고 주문을 받을 때 정상적인 의사소통이 가능했던 것 같은데.
그때 갑자기 떠올랐던 건 몇 년 전 배운 수화였다. 그동안 수화를 쓰시는 손님들을 보아도 한 번도 생각나지 않았던 것이 그날에 그제야 떠올랐다. 흐릿한 기억을 뒤져보다 나는 '안녕히 가세요'라는 수화를 알고 있었다. 자기소개도 얼추 할 줄 알았던 나는 그것도 기억나지 않았고, 그냥 '안녕히 가세요' 하나만 기억해 냈다.
'내가 써도 되는 말일까?'
수화를 공부하며 미래의 언젠가 '빛날 나'를 기대했던 것과는 달리 조심스러워졌다. 괜히 기분 나빠하시면 어쩌지? 내가 잘못 알고 있는 거면 어쩌지? 왜 아는 척하냐고 하시면 어쩌지? 말도 안 되는 생각들이 내 습관을 따라 '최악의 상황'을 그리고 있었다. 그리고 나 자신과 조건을 걸었다.
'만약 저기 검은 티셔츠 분이 계산하러 오시면, 그때 쓰자.'
30분 정도 지났을까. 가게 마감시간이 다가왔고, 신기하게도 정말 검은 티셔츠 분이 계산을 하러 오셨다. 그때 머릿속을 스쳐 지나갔던 나의 결연한 다짐.
'써먹으려고 배운 거잖아.'
그 간단한 수화 하나에 나는 침을 꿀꺽 삼켰다. 가격을 안내하는 것까지는 모르겠고, 나는 지금 '안녕히 가세요'라는 수화 하나에 온 진땀을 빼고 있었다(쓰면서 생각났다. 써먹을걸). 가격을 말씀드리고 내어주시는 카드를 받고, 나는 소심하게 '안녕히 가세요' 라며 두 주먹을 꽉 쥐어 보였다. 기대도 안 하고 지갑을 정리하고 계시던 손님의 고개가 홱 들리더니 동그랗게 뜬 눈이 나를 마주했다. 그 눈은 내가 생각하던 '최악'이 아니었다. 똑똑히 기억한다. 놀랍고도 당황스러우며 반가운 그 눈. '당신이 그걸 어떻게 알아?'가 아니라, '이걸 여기서 마주하다니.' 하던 그 눈. 절대 못 잊을 것 같다. 손님은 내게 '안녕히 계세요'라며 수화로 답하고 나가셨다.
지쳐서 당장이라도 가고 싶었던 몸에 쫘악- 엔돌핀이 돌았다. 주에 두 번 하는 아르바이트가 끝나면 꼭 야식을 먹어주어야 풀렸던 직성이 그 엔돌핀 덕분에 해소되었을 만큼 뿌듯했다. 복지 분야의 꿈을 꾸고 있는 내게 사명감이 다시 새겨진 기분이었다.
'이게 내 천직이구나.'
고등학교 3학년 때 멋모르고 시간을 때우고자, 상대를 위한 것이 아닌 '빛나는 나'를 기대하며 공부했던 수화가 내 마음에 빛을 비춰주었다. 이렇게까지 작은 일에 뿌듯해도 되나 싶을 만큼.
그러면서 다시금 체감했다.
세상에 이유 없는 일은 없다.
내가 한 모든 일은 언젠가 내게 다시 돌아온다. 유익하든 유익하지 않든. 어떤 모습으로라도 돌아온다.
지금은 체력도 시간도 벅차서 수화를 그때처럼 공부하지는 못하지만, 생각날 때마다 기억나는 것만이라도 되새겨주어야겠다. 복지 분야를 꿈꾸는 나는 '그 누구도 소외받지 않는 세상'이 나의 마음이니까. 내 손과 힘이 닿는 곳까지 뻗어 함께 살아가고 싶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