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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BookMZ Jul 30. 2022

"요즘 니 인생의 가장 큰 화두는 뭐야?"

에세이라니 (by 재완)

"요즘 니 인생의 가장 큰 화두는 뭐야?"


며칠 전 팀장님이 나에게 물었다. 요즘 들어 우리 팀은 이런 질문을 자주 한다. 얼마 전 있었던 팀 워크숍에서 각자 인생의 점수를 묻고 난 후 이런 질문들이 부쩍 늘었다.

"글쎄요... 딱히 떠오르는 건 없는데..."


인생의 화두까지는 모르겠지만 요즘 치열하게 생각하고 있는 것은 있었다. 하지만 회사에서 할 이야기는 아닌지라, 대충 얼버무리며 대답했다. 요즘 가장 많이 생각하고 있는 게 '회사 일을 그만두고 뭘 할 수 있을까'라는 말을 굳이 팀장 앞에서 할 필요는 없으니까.


사회생활을 시작한 이래로 일이 참 즐겁고 출근이 너무 하고 싶었던 적이 있는가,라고 묻는다면 단연컨대 없었다고 대답할 수 있지만, 그렇다고 해서 요즘처럼 멍하니 ‘회사를 그만두고 대체 뭘 하며 살 수 있을까’를 고민하며 사는 적도 없는 것 같다. 딱히 회사가 그렇게 싫은 건 아닌데, 가끔은 일에 집중하기 힘들 정도로 '회사 그만두고 대체 뭐하지'라는 생각이 나를 잡아먹는다.

이런 생각이 들기 시작한 건 작년에 퇴사를 하면서부터 였다. 작년 5월, 나는 7년 다닌 회사를 그만뒀다. ‘안녕히 계세요, 여러분. 저는 떠나갑니다’ 하고 퇴사 전화를 돌리던 중 나를 많이 아껴주셨던 다른 회사 대표님이 한마디 했다.


"이래서 애들을 한가하게 두면 안돼! 여유가 생기니까 정신 차리고 업계를 나가잖아!"


대표님 말을 듣자마자 피식 웃었다. 너무 맞는 말이라서. 나는 영화 마케팅 일을 했다. 영화 업계는 코로나19에 직격탄을 맞았고, 많은 회사들이 사라졌다. 내가 다닌 회사는 사람을 자를 정도로 힘들어진 건 아니었지만 2년 간 개봉을 하지 못했다. 즉, 나는 2년 동안 아무 영화도 개봉하지 못한 채 시간만 보냈다.


그렇다고 아무것도 안 한 것도 아니었다. 계속 수정을 했다. 영화 한 편을 가지고 수정하고 수정하고 수정하고. 개봉은 못하고 시간은 많으니 자꾸 수정질 하는 사람들만 늘어났다. 이 사람 말 듣고 수정하고 저 사람 말 듣고 수정하고.


나는 나름 내 일을 좋아하고 자부심이 있었다. 영화의 흥행은 작품 본질이 결정하지만 마케팅은 영화의 첫인상을 결정하는 중요한 일이고, 전문분야라고 생각했다. 하지만 나와 전혀 다른 생각을 하는 사람들도 많았다. 감독은 내가 감독이니까 너보다 영화를 더 잘 알아서, 배우는 내가 너보다 더 영화 업계에 오래 있어서, 제작사 대표는 그냥 이게 싫어서. 예전부터 그렇게 일은 해오고 있었지만 개봉을 못하고 시간이 생기니 그런 행태들이 더 심해지고 노골적이 되었다.


어느 순간 이 포스터에, 이 예고편에 내가 생각 한 건 아무것도 들어있지 않았다. 나는 그저 전달하고 시키는 대로 하고 있었다. 꽤나 좋아했던 내 일이었는데,  ‘남의 일을 대신해주고 있을 뿐이었구나’라는 생각이 확신으로 변한 날 퇴사를 결심했다.


내 껄 하고 싶다. 남이 한 걸 어떻게 포장할까 고민하는 일 말고, 내 껄 하고 싶다는 생각이 강하게 들었다. 그것이 영화던, 드라마던, 농사던, 가게던. 오롯이 '내 거'라고 할 수 있는 걸 하고 싶다고 생각했다.


하지만 그걸 바로 찾지는 못했다. 내 껄 하고 싶다는 깨달음은 얻었는데, 용기는 얻지 못해서 일단 이직을 했다. 그리고 또 비슷한 일을 하고 있다. 다만 달라진 점이라면 나는 지금 하는 일을 더 이상 좋아지 않으며, 예전처럼 열렬히 고민하지도 않는다. 그간 쌓인 연차 덕분에 적당히 일을 처내면서 대신 머리 뒤로 '어떻게 하면 진짜 내 일을 찾을 수 있지'를 생각한다.


"친구네 집에서 하는 녹차 가게가 잘 되면 좋겠다."


쪽지를 받고 순간 나도,라고 생각했다. 누군가 자신만의 가게를, 일을 찾아서 하는 걸 보면 부럽다. 그 사람은 녹차 가게를 자신의 것으로 만들기까지 얼마나 걸렸을까, 어떻게 확신을 갖고 찾았을까. 나는 내 껄 어떻게 찾을 수 있을까. 오늘도 팀장님이 물었지만 그에게는 말할 수 없는 대답만 머릿속으로 되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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