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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육아맘소영 Nov 03. 2022

분수토로 샤워해본 적 있나요?

다신 겪고 싶지 않은 그날의 기억


여느 때와 다름없이 평온했던 생후 10개월 차의 어느 날. 

장난감을 갖고 놀며 즐거운 시간을 보내던 아이가 갑자기 목에서 가래 끓는 소리가 났다. 컹컹 거리며 기침을 하는 모습에 체온계를 가져다 대니, 삐-삑 하는 소리와 함께 주황불이 들어왔다. (참고로 주황불은 체온 37.5~38.7도의 구간을 뜻한다.) 38도라는 생각보다 높은 수치에 곧바로 야간에도 운영하는 소아과를 찾았고 2시간이나 대기한 끝에 간신히 진료를 볼 수 있었는데 돌이켜 생각해보니 문제는 여기서부터 시작된 것 같다.


희한하게 대기 내내 컨디션 난조를 보이던 아이는 진료실에 들어가자마자 아무 일도 없었다는 듯이 조용해졌기 때문이다. 체온을 측정하니 37도 였고 해당 소아과 선생님이 확인한 결과 가래도 코도 숨소리도 전부 OK. 지극히 정상이라며 약한 감기약을 처방해주었다. 이게 아닌데.







그렇게 몇 시간에 걸쳐 본 진료는 허무하게 끝이 났고 선생님 말대로 별거 아니거라 믿으며 집으로 귀가했다. 병원에서 처방 받은 약을 먹이며 자기 전 분유를 먹인 뒤 잠자리에 눕혔다.


그런데 한 시간 가량 흘렀을까? 

굳게 닫은 아이의 방문 너머로 컥컥 소리가 나기 시작했다. 일반적인 기침 소리를 넘어 단전에서 무언가 올라오는 느낌. 마치 내가 입덧으로 구역질할 때와 비슷한 소리였다. 놀란 마음에 급하게 뛰어가 보니 아이는 잠에 취해 비몽사몽 한 상태로 구역질 섞인 기침을 하고 있었고 나는 아이를 진정시키기 위해 품에 안은 채 등을 토닥여줬다.


"컥컥... 우에엑!"


컥컥거리던 아이는 한순간에 구역질과 함께 자기 전 먹은 분유를 쏟아내기 시작했다. 분수토. 말 그대로 폭포수처럼 무지막지하게 쏟아지는데 체감 상 3초 이상 숨도 못 쉬고 뿜어낸 것 같다. 놀란 나머지 나도 모르게 소리를 지르고 말았다.


소스라치게 놀란 내 목소리를 듣고 남편이 뛰어 왔을 땐 이미 폭풍 같았던 분수토가 지나간 상태였다. 퀸 사이즈 매트의 절반 이상이 젖었고 내 몸은 끈적한 분유로 뒤덮였다. 아이는 자다 말고 일어난 이 상황에 무척 놀랐는지 눈이 동그래져 아무런 소리도 못 내고 멀뚱멀뚱 엄마와 아빠를 쳐다보기만 했다. 아이만 놀랐으랴. 심장이 쿵쾅 거려 당장이라도 쓰러질 것만 같았다. 







감기에 걸린 아이는 기침, 가래 증상이 심할 경우 분수토를 할 수 있습니다....


아이를 진정시킨 뒤 분수토에 대해 검색해보았다. 수유를 하는 아이에게 나타날 수 있는 증상인데 감기에 걸려 기침, 가래 증상이 심할 경우 목에 낀 가래로 인해 구역질이 시작되어 분수토를 할 수 있다고 한다. 

그렇기에 감기에 걸렸을 땐 평소 먹이는 양 보다 적게 먹이는 게 좋으며 아이가 구역질을 할 땐 토를 할 가능성이 높으니 기도가 막히지 않게 미리 조치를 취해야 한다고. 그나마 아이의 기침 소리를 듣자마자 앉아 준 게 다행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약 10개월 간의 육아생활로 초보 엄마에서 중수 엄마가 된 느낌이었는데 아이가 아프기 시작하니 다시 원 상태로 돌아간 것 같았다. 







이 날 있었던 분수토를 시작으로 나와 아이는 약 한 달여간을 매일 병원에 들락날락하게 되었다. 원인은 아데노바이러스에 의한 감기와 장염. 어찌나 독한 바이러스인지 항생제와 지사제를 복용해도 쉽사리 떨어지지 않았다. 엄마도 아이도 매일이 힘들고 지쳤던 날들이었다. 


분수토? 토를 해봤자 얼마나 하겠어라고 가볍게 생각한 지난날을 반성하게 되는, 다신 겪고 싶지 않은 생후 10개월 차의 어느 날의 기억은 엄마에게 또 다른 깨달음을 가져다 주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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