평화로웠던 7월의 어느 날. 예고 없이 불쑥 아이에게 찾아온 감기로 인해 우리 가족은 싱그러운 초록잎들이 형형색색의 단풍옷으로 갈아입을 때까지 치열한 나날을 보냈다. 나을만하면 다시 찾아오는 지독한 친구 때문에 나는 평일마다 소아과 이곳저곳을 다니며 전전긍긍했다. 아이가 아프면 부모가 고생한다는 어른들의 말을 뼈저리게 느꼈던 날들이다. 도대체 얼마나 험난한 일상을 보냈길래? 궁금해하시는 분들을 위해 지금부터는 잃어버린 엄마의 세 달에 대해 이야기해보려고 한다.
아침 7시. 늦잠을 자고 싶은 엄마 마음도 모른 채 아이가 잠에서 깨어나려 뒤척인다. 끙끙 거리는 소리에 좀 더 자라며 토닥여보지만 이내 기침, 가래로 컥컥 거리는 아이를 안아준다. 감기로 고생하던 세 달 동안 아이는 코와 목이 불편하니 숙면을 취하지 못했다. 일어나자마자 마주한 건 지난밤에 미처 정리하지 못한 육아의 흔적들. 거실을 빼곡히 채운 장난감과 손수건, 물티슈, 옷가지들을 대충 한 켠으로 밀어둔 다음 다급히 아이의 아침을 준비해 본다. 엄마의 정성이 들어간 수제 이유식 한 상차림을 차려 대령하고 나면 시작되는 촉감놀이. 거침없는 아이의 손길에 밥상과 의자는 초토화된다. 아이를 떼어 두고 뒷정리를 한 후 샤워까지 멀끔히 하고 나면 어느덧 시간은 9시를 훌쩍 넘어가고 있다.
더 이상 지체 되면 안 된다. 무자비한 소아과 진료 대기시간을 줄이고자 이것저것 기저귀 가방에 애기 용품들을 담아본다. 아이를 태운 유모차와 기저귀, 물티슈, 젖병 등이 가득 담긴 기저귀 가방, 꾀죄죄한 몰골의 엄마. 소아과 오픈런을 하기 위한 모든 준비가 끝이 났다. 발걸음을 재촉해 소아과로 뛰어가니 이미 대기는 1시간 이상. 컨디션 난조인 아이를 데리고 어르고 달래며 진료를 보고 집으로 돌아오면 오후 1시가 된다.
여름철 무더위를 뚫고 소아과 가던 모습
낮잠을 재운 뒤 그제야 "쉬어야지." 싶으면 나도 모르게 엉망이 되어 버린 집안꼴이 눈에 들어온다. 직업병이란 게 이런 걸까? 피곤한 몸을 이끌고 이것저것 치우다 보면 금세 아이의 울음소리가 들린다. 한 번뿐인 낮잠시간이 허망하게 끝이 나면 곧바로 두 번째 이유식을 차릴 준비를 한다.
또 먹이고 씻기고. 잠시 쉬고 싶다가도 멍 때리는 아이를 보면 괜시리 마음이 쓰여 장난감을 갖고 아이에게 다가간다.그렇게 정신없이 육아와 살림을 병행하다 보니 어느새 해가 저물고 밤이 찾아온다. 아이가 눈을 붙여야 엄마가 아닌 '나'라는 사람의 시간이 생기게 된다. 느지막이 퇴근하는 남편과 잠시 여유로운 맥주 한 잔을 즐기고 나면 다음 날 아침 7시, 고단했던 일상이 또다시 반복된다. 아차, 매일 2회 이상 새벽수유를 했던 것도 빼놓을 수 없겠다. 무튼 지난 세 달간 난 아이의 엄마로서 치열하게 살아왔다.
지독하게도 아이를 괴롭히던 감기와 작별하고 나니 그제야 쌀쌀해진 공기와 떨어지는 낙엽들이 보였다. 한동안 가는 둥 마는 둥 했던 어린이집 가정통신문에 그려진 다람쥐와 단풍놀이 체험학습을 보니 가을이 왔음을 실감했다. 오랜만에 건강해진 모습으로 씩씩하게 등원을 하는 아이를 보니 안도의 미소가 나왔다. 하지만 왠지 모르게 가슴 한 편으로는 씁쓸한 마음을 생겨났다. 계절이 바뀌는 동안 나는 도대체 무얼 한 걸까?
아픈 아이를 간호하는 건 당연한 일이다. 이건 자식과 부모 간의 사이를 떠나 정말 말 그대로 아프니까. 보살핌이 필요하니까. 그래서 이 글의 소제목을 병간호했던 지난날을 '잃어버린'으로 칭하기 많은 고민이 있었다. 하지만 어째서 엄마인 나는 아이가 건강을 되찾았다는 안도감과 허망하게 지나가버린 시간에 대한 씁쓸함, 양가감정이 생기는 건 지 모르겠다.
아이와의 한바탕 등원 전쟁을 치르고 오랜만에 켜본 노트북에서 지난 세 달 동안 놓친 프로젝트 제안서와 견적서들, 프리랜서로 잘 살아보겠다며 작성하기 시작했던 미완성된 나의 포트폴리오가 눈에 들어온다. 띵-동. 복잡한 내 머릿속을 울린 무심하게 울린 건강 알림. 생리를 하지 않은 지 90여 일이 지났습니다. 그러고 보니 생리불순으로 병원에 간다는 게 벌써 세 달이 지났구나. 노트북을 잠시 덮고 병원에 나갈 채비를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