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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윤아람 Jul 08. 2024

남편이 나를 위해 지갑을 열었다

"자기는 이걸 가질 자격이 있어."


남편이 내게 말도 없이 골프 클럽을 주문했다. 골프 입문 시, 내 주변 사람들은 보통 중고품을 사거나 가족이 쓰던 걸 얻어서 썼다는 이야기를 들었다. 남편 역시 처음에는 가족이 쓰던 걸 얻어서 치기 시작했다. 나는 얻을 곳이 없으니 당근 마켓에서 저렴한 중고품을 사서 쓰려고 했는데, 남편이 내가 그러기 전에 선수를 친 것이다.


"그래서 얼마짜리야?"

"안 알랴~줌."


남편이 가격을 알려주지 않을 때는 보통 내가 상상한 것보다 훨씬 비싼 물건을 샀을 때다.


"코치님한테 클럽 사서 길이 조절할 거라고 했더니 모델명을 물어보더라고. 모른다고 했더니 가격대를 물어서 그것도 모른다고 했는데, 모른다는 게 좀 바보 같지 않아?"


남편은 그제야 대충 가격을 알려 줬고, 놀라는 내게 남편이 '자기는 이걸 가질 자격이 있어'라는 말을 덧붙였다.


"자기 지금껏 자기한테 돈 쓴 적 없잖아."


그동안 나는 나한테 돈 쓰는 게 아까웠다. 뭘 사도 싼 걸 사야 마음이 편했고, 해도 되고 안 해도 되는 거면 안 하는 쪽을 택했다. 누가 알아주길 바라고 그런 건 아니지만, 남편이 그걸 알고 있다는 사실이 기분 좋았다.


남편과 함께 클럽을 주문한 곳에 가서 평균 여자키보다 작은 내 키에 맞춰 길이를 약간 자르고, 그립을 교체했다. 마음에 드는 색상이 많아서 뭘 고를까 고민하는데, 깔별로 하나씩 하는 분들도 많다고 해서 나도 그렇게 했다. 쫙 세워놓고 보니 기분까지 알록달록 화사해진다.



"고마워. 평생 쓸게."

도둑이 몽땅 가져가버린 결혼 예물 이외에 이렇게 비싼 물건을 가져보긴 처음이다.


남편은 그 후로도 나보다 신이 나서 내 캐디백과 각종 소품들을 주문했다. 나는 그제야 차 안 트렁크에 처박혀있는 남편의 낡은 캐디백이 보였다.

"자기 것도 하나 사야겠다."

"난 됐어."


이 남자, 요즘 쫌 멋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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