며칠 전에 골프연습장에 갔을 때 생긴 일이다. 내 앞타석 남자분이 친 공이 튀어 그 공에 내 왼쪽 귀가 맞는 사고를 당했다. 그때 나는 내 타석에서 어드레스 자세(골프채를 손에 쥐고 허리를 숙여 공을 칠 준비를 하는 자세)를 취하고 있어서, 거의 무방비 상태로 공에 맞아야만 했다.
갑자기 귀에 가해진 충격에 아픔보다는 놀람이 더 컸고, 몸이 부들부들 떨리면서 눈물이 나왔다. 그 자리에 바로 주저앉아 신음하고 있는데 앞타석 남자분은 내가 공에 맞았는지도 모르는 듯했고, 뒷타석 여자분이 상황을 인지하고 뭐라 말하며 내게 다가왔다. 탁탁 공치는 소리만 들리던 연습장 안이 갑자기 소란스러워졌는데, 내게는 아주 먼 곳에서 들리는 소음처럼 느껴졌다.
한참을 멍한 상태로 앉아있다가 일어나 타석 앞 의자에 앉아 물을 한 모금 마셨다. 손이 벌벌 떨리고 있었다. 누군가 귀에서 피가 난다고 했고, 손으로 만져보니 피가 흐르고 있었다.
그때가 점심시간이라 그랬는지 직원들이 보이지 않았다. 뒷타석 여자분이 함께 병원에 가자고 해서 조금 의아한 마음이 들었다.
"혹시 직원이세요? 공은 앞타석에서 날아왔는데요."
"아, 그분이 제 남편이에요. 저랑 같이 병원에 가요. 정말 죄송해요."
다행히 연습장 건물 2층에 이비인후과가 있었다.
"신분증 주세요."
귀에서는 피가 흐르고 손도 아직 떨리는데, 간호사는 신분증을 보여줘야 접수가 된다며 신분증이 없으면 모바일 건강보험증을 다운로드하여 보여달라고 했다. 정신없는 와중에 앱을 다운로드하고 인증번호를 받아 모바일 건강보험증을 발급받았다(최근엔 반드시 신분증이 있어야 접수가 가능하다. 위급상황이 언제 생길지 모르니 이 글을 읽고 계신 분들은 모바일 건강보험증을 미리 발급받아 두면 좋을 것 같다).
의사 선생님은 피부가 찢어졌지만 꿰맬 정도는 아니고, 귓속도 괜찮다고 했다. 골프공에 맞아 실명에 이른 환자도 있었다며, 내 경우는 천만다행이라고도 했다. 나는 귓속이 괜찮다는 말에 마음이 놓였는데, 같이 온 여자분은 계속 미안해하며 어쩔 줄 몰라했다.
"일부러 그러신 것도 아닌데요. 괜찮습니다."
다치고도 관대할 수 있었던 이유
내가 가해자에게 이렇게 관대할 수 있었던 건, 실은 그동안 내가 친 공이 다른 타석으로 넘어가는 일도 종종 있었기 때문이다.
이 일이 있기 바로 전날, 연습장에서 내가 친 공이 앞자리로 몇 번 튀었다. 가볍게 통통 튀어가는 정도였지만, 나는 만약 내 공이 앞자리로 세게 날아가서 앞에 분이 맞으면 그건 누구 책임일지 궁금했다.
공을 제대로 못 친 내 책임일까? 맞은 사람만 운이 나쁜 걸까? 골프장 책임일까? 전날 잠깐 궁금해했던 일이, 다음 날 바로 내게 벌어진 것이다.
나를 병원에 데려와 치료비를 지불하고 연신 미안하다고 사과하는 이분이 가해자라고 하기엔 이 분(정확히는 이 분의 남편) 역시 잘못이 없다는 생각이 들었다. 잘못이라면 골프 실력이 부족한 것인데, 골프 연습장에서 골프 못 치는 걸 잘못이라고 할 수는 없지 않은가(골프연습장에서 스크린을 향해 친 공은 대부분 스크린에서 충격을 흡수하고 아래로 떨어지지만, 이리저리 튀는 건 채에 공을 제대로 맞추지 못했을 때 발생하는 현상이라고 한다).
병원에서 나와 내가 공을 맞게 된 경위를 정확하게 파악하기 위해 다시 연습장으로 갔다. 그 사이 직원 분이 이미 CCTV를 돌려봤는지 상황을 이리저리 설명해 줬다. 내가 서있던 타석은 앞에서 두 번째 자리였다. 내 타석과 뒷 타석 사이 왼쪽에는, 원래는 있어서는 안 될 기둥이 하나 있다.
직원 설명을 요약하면 이랬다. 내 앞사람이 친 공이 스크린 위쪽을 맞고 튕겨 나와 앞쪽 벽을 맞고 튕겨 나왔고, 또다시 내 뒤쪽 기둥을 맞고 튕겨 나와 내 왼쪽 귀를 때렸다고 한다. 그러니까 총 세 번, 이렇게 여러 번 튕겼음에도 피부가 찢어질 정도면, 날아온 공에 바로 귀를 맞았으면 어땠을지 상상만 해도 무섭다.
내가 골프를 배우기 시작한 건 약 5개월 전이고, 이곳을 다니기 전에 3개월 간 다른 연습장을 다녔다. 집 둘레로 열 군데 넘게 연습장을 알아봤다. 시설, 비용, 거리 등 모든 조건을 만족하는 연습장이 없어서 처음에는 시설이 좋은 곳을 선택했는데 거리가 멀어 계속 다니기가 힘들었다. 두 번째로 선택한 이 연습장은, 시설은 좁고 낡았지만 집에서 도보로 10분 이내의 거리고, 비용도 적게 든다는 장점이 있었다.
대부분의 골프연습장은 좌측 벽에 스크린이 설치돼 있고 각 타석 앞쪽에 스윙 모습 등을 보여주는 모니터만 있는 뻥 뚫린 구조인데, 내가 다니는 연습장에는 타석 사이를 살짝 막고 있는 기둥이 있었다. 이 기둥이 답답해 보인다고만 생각했지, 안전과도 연관이 있을 거라는 생각은 하지 못했다. 공이 어디로 튈지 모르는 연습장 내에 불필요한 구조물은 위험 요소임이 분명한데, 전에는 몰랐다가 사고를 당하고 나서야 위험하다는 게 보였다.
생각보다 많은 사례... 공에 맞거나, 채에 맞거나
사고를 당한 다음 날은 실내골프연습장에서 일어난 사고에 대한 인터넷 검색을 했다. 나처럼 튀는 공에 맞은 사고보다는 휘두르는 골프채에 맞아 다치는 사고 건수가 많았다. 실내골프연습장은 타석 간 거리가 2.5m 이상이어야 한다는 규정이 있지만, 이게 충분한 거리라고 생각해서 방심했다가는 사고가 날 수 있다.
정해진 타석을 벗어나 채를 휘두르는 행위, 기계 조작을 한다고 앞 타석 쪽으로 몸을 많이 기울일 때, 타석 옆으로 지나가면서 충분한 거리를 두지 않는 행동 등등 여러 사고 사례가 있었다.
사고가 나면 다친 사람, 다치게 한 사람 모두 억울한 상황이 될 수 있다. 본인 과실로 인한 책임은 골프연습장 측에서 배상을 하지 않기 때문이다. 내 경우는 타석에서 공을 칠 준비를 하고 있던 나와 내 앞타석에서 공을 친 분 모두 과실이 있다고는 생각되지 않았고, 100% 연습장 내 시설물에 의한 사고라는 생각이 들었다.
연습장에 전화를 걸어 사고에 대한 보상과 재발방지대책에 관한 이야기를 나눴다. 나는 왜 연습장 내 기둥을 그대로 두는지를 물었다. 그 기둥은 건물을 받치는 기둥이라, 아예 제거하는 건 불가능하다고 했다.
대신 내가 다친 직후에 타석 사이에 그물망을 설치했으나 그래도 불안하다면 스크린 골프장으로 영업 중인 단독 공간을 이용하거나 환불을 해주겠다고 했다. 치료비 등 보상 관련 사항은 연습장에서 가입한 보험에서 보상을 받도록 해주겠다고 했다. 보험에 가입이 돼있지 않은 경우 분쟁이 생길 확률이 높다고 해서 긴장했는데, 다행이었다.
사고를 당한 이틀 뒤에 보험사에서 연락을 받았다. 혹시 앞타석 분이 일반적이지 않은 방법으로 공을 쳤는지를 물었다. 나는 아니라고 대답했고, 그렇다면 보험 청구 대상이 된다며 치료비 외에도 휴업 손해, 위자료 등을 보상받을 수 있다는 안내를 받았다.
수영장, 스키장, 골프장 등 체육시설에서는 사고가 생길 경우를 대비해 '체육시설업자 배상책임보험'을 가입한다. 시설의 과실로 인한 법적인 배상책임이 있는 모든 부분에 대해 보상을 하기 때문에 병원에 다니면서 쓴 치료비 외에도 일을 못해서 손해를 본 부분, 간병비, 위자료 등을 청구할 수 있다.
특히 시설 규모나 형태에 따라 의무 가입인 곳도 있고 임의(자율) 가입인 곳도 있으니, 운동할 곳을 알아볼 때 사고 위험 요소를 살펴보는 것도 중요하지만 사고를 대비한 보험에 가입돼 있는지도 꼭 확인해 보는 게 좋겠다. 단, 본인 과실로 인한 사고는 보상받기 어려우니 안전에 관한 규정을 숙지하고 따르는 것이 무엇보다 우선이다.
며칠이 지나 귀에 난 상처는 아물어가고 있지만, 마음은 계속 불편한 상태다. 나는 부부가 같이 할 수 있는 취미생활이 있으면 좋겠다는 가벼운 마음으로 골프를 시작했었다. 그런데 골프공은 총알과도 같고, 손에 쥔 골프채가 흉기가 될 수 있다는 걸 의식하게 되니 골프가 조금 무서워졌다.
*지난주에 오마이뉴스에 송고한 글입니다. 지금은 다 나았습니다. 감사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