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벌써 수능이네요. 마무리 잘할 수 있도록 관리할 테니 집에서도 따뜻한 응원 부탁드립니다.'
고3 아들이 다니는 관리형 독서실에 마지막 결제를 했더니 이런 문자가 왔다. 따뜻한 응원이라... 난 조금 전에 아이를 향해 따뜻한 응원은커녕 폭언을 퍼부은 참이었다.
아이는 여름방학 전부터 학교에 출석 체크만 하고 나와 관리형 독서실에서 공부를 한다. 중간에 학원을 가기 위해 나오는 시간과 점심, 저녁을 먹으러 나오는 시간 외에 오전 9시쯤부터 밤 12시쯤까지를 독서실에서 보내기로 했다. 수능까지 4개월 정도를 집중하면 한 등급 정도는 올릴 수 있지 않을까 기대를 했다.
9월 모의고사 성적은 실망스러웠다. 아이의 말로는 1점 차이로 등급이 내려간 과목이 두어 과목 있다고 하니, 그럼 끝까지 최선을 다해서 아쉬움은 남기지 말자고 했다. 그간 아이한테 들어간 학원비와 독서실비를 생각하면 한숨이 나왔지만, 나보다는 아이가 더 힘들겠지 싶어서 참고 있었다.
11월이 됐다. 주말이면 항상 늦잠을 자다가 점심때쯤 일어나 학원을 가던 아이가 여전히 그 패턴을 유지했다. 자는 시간을 당기더라도 아침에 일어나는 시간은 일정하게 하는 게 좋겠다고 아이한테 말했더니 알겠다고 했다.
일요일 아침, 아이가 또 늦잠을 잔다. 7시 30분부터 한 시간 정도를 깨우다가 포기하고 놔뒀지만 속이 계속 부글부글 끓어올라 터질 것만 같았다. 내가 나가는 게 낫겠다 싶었다. 골프 연습장에 가서 두 시간 가까이 공을 쳤다.
오후 한 시가 넘었길래 집에 있는 딸들이 배가 고플 거 같아 햄버거라도 사가려고 전화를 했다.
"오빠도 있어."
이 시간이면 분명 나갔을 거라고 생각했는데, 아직 집에 있다는 말에 어이가 없었다.
이대로 집에 들어가서 아들과 마주치고 싶지 않았다. 근처 아웃렛 쪽으로 방향을 돌렸다. 몸도 힘들고 배도 고픈데 집으로 들어갈 수 없다고 생각하니 확 짜증이 났다. 결국 참지 못하고 아들한테 전화를 걸었다.
"너 왜 독서실 안 가?"
"오늘은 독서실 자율이에요. 집에서 공부하다가 학원 가려고요."
"자율이라는 게 오지 말라는 게 아니잖아? 너 집에서는 공부 안 하는 거 엄마가 모를 줄 알아? 대학 가기 싫으면 지금이라도 그냥 포기해. 네가 그러고 있으면 엄마는 답답해서 미치겠다고. 너 때문에 엄마가 집엘 들어갈 수가 없잖아!"
수험생한테 따뜻한 응원을 해 주라고? 솔직히 난 모르겠다. 내 아들이 뭐가 그렇게 힘들까? 나는 엄마가 대학 보내준다고, 아니 인문계 고등학교만 보내줬어도 신나서 공부했을 거 같은데 말이다. 학원도 4과목이나 보내줘, 관리형 독서실 보내줘, 날마다 장 봐서 밥 차려줘, 도대체 뭐가 부족해서 저렇게 밖에 못하는 거야??
지난 넉 달 동안 아이를 하숙생처럼 대하려고 애썼다. 그저 밥이나 잘해주고 나가고 들어올 때 웃으면서 '파이팅' 해주고 싶었다. 그런데 나가지도 않고 늘어져 있는 아이의 모습을 볼 때면 답답해서 미칠 것 같다.
대학은 가고 싶지만 공부는 하기 싫다는 아이였다. 아이가 대학을 가고 싶어 한다는 말만 들었지, 공부를 하기 싫다는 말은 무시해서 이런 상황이 생겼나 보다. 계속 한숨만 나온다. 열흘 뒤에 수능시험 보는 아들한테 응원은 못해줄 망정 폭언을 퍼부은 나란 인간이 실망스럽고 한심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