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매거진 2025

찐친과 함께 본 뮤지컬 맘마미아

by 윤아람

요즘 시도 때도 없이 만나는 친구가 있다. 주말에 스크린 골프장을 같이 가고 심심하면 산책도 같이하고 마트도 같이 가는. 어릴 때는 서로 잡아먹을 듯 싸운 적도 많았어서 우리가 이렇게 친해질 줄은 몰랐다. 그 친구는 나한테 뭘 자꾸 퍼준다. 집에 맛있는 게 있으면 우리 집으로 들고 오고 밥을 먹어도 먼저 카드를 내민다. 그런데 난 또 그게 막 부담스럽지는 않다. 왜냐면 그 친구는 내 언니니까. 한 살 많은 언니가 친구처럼 느껴진다.


얼마 전에는 언니가 "문화생활 좀 하자. 공연 티켓 예매해. 언니가 쏠게."라는 멋진 멘트를 날렸다. 나는 빛의 속도로 티켓 사이트를 검색해 뮤지컬 <맘마미아> 티켓을 예매했다.



맘마미아는 오래전에 많이 듣고 흥얼거렸던 아바의 팝송으로 만들어진 뮤지컬이다. 최정원, 홍지민 등 유명한 뮤지컬 배우와 가수 이현우, 김정민, 개그맨 김진수 등 낯익은 분들이 많이 출연하니 언니랑 함께 보기 딱 좋을 것 같았다. 티켓을 예매하고 두 달이나 기다려야 했지만 자리가 맨 앞자리라 기다릴만한 가치가 있었다.


9월 16일 저녁에 공연장인 엘지아트센터에 갔다. 나는 공연장 3층에 있는 이탈리안 식당을 예약해 두었다. 리뷰를 보고 많은 사람들이 맛있다고 칭찬한 트러플파스타와 연어스테이크를 주문했다. 눈과 코와 입이 즐거운 시간이었다.



그동안 많은 공연을 보러 다녔지만 맨 앞자리에서 본 건 이번이 처음이었다. 공연을 보면서 앞자리 사람으로 인한 시야 방해로 몰입이 잘 안 되는 경우가 더러 있었는데 이번에는 아무런 방해 없이 배우들의 표정은 물론 주름, 혈관까지 다 보이는 자리여서 정말 몰입이 잘됐다. 가끔은 배우들과 눈을 맞추는 기분이 들어서 설레기도 했다.


<맘마미아>는 미혼모인 주인공 도나가 펜션을 운영하는 그리스의 섬이 배경이다. 그곳에서 결혼식을 올리게 된 도나의 딸 소피가 아빠로 예상되는 세 명의 남자를 결혼식에 초대하면서 이야기가 전개된다. 내용이 무겁지 않고 귀에 익은 아바의 노래들로 채워지니 시간 가는 줄 모르고 즐겼다.


한 가지 아쉬운 점은 우리 뮤지컬 문화가 너무 경직되다 못해 경건한 분위기라는 거. 이런 공연은 감상보다는 함께 즐기면 좋을 것 같아 배우들의 노래에 맞춰 손뼉을 치고 싶은 마음이 굴뚝같았다. 혼자 그럴 용기는 없어 소리 나지 않게 살짝 손가닥을 까딱거리며 마음의 소리만을 배우의 노래 위에 얹어보았다.


이런 내 아쉬움은 커튼콜에서 한꺼번에 해소됐는데, 그때는 다 같이 큰 소리로 노래 부르고 뛰면서 즐기는 시간이 있었다. 한바탕 놀고 기분 좋게 공연장을 나왔다. 내가 느끼기에 맘마미아에서 말하고자 하는 건, '인생 뭐 있어? 현재를 즐겨.'(막 살라는 건 아니고)인 것 같다.



맘마미아에는 도나에게 무슨 일이 있어도 같은 편이 돼줄 것 같은 오랜 친구 두 명이 나온다. 나도 학창 시절에 그런 친구들이 있었고 사회생활 하면서 알게 된 지인들과도 그 인연이 오래갈 것 같았는데, 대부분 그때뿐이었다. 주변에 오랜 우정을 간직한 사람들을 보면 부러웠다. 그러다가 최근에 인생을 즐기는 데는 굳이 친구가 필요하지 않다는 걸 알게 됐다. 나는 혼자서 여행을 다니고, 공연을 보고, 봉사활동을 하거나 글을 썼다. 언니는 그런 나를 지지해 주고 함께 해준다. 우리는 자매에서 진짜 친구(요즘 말로 찐친)가 돼가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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