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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클로드 Mar 27. 2024

조용한 방황

복직 3주를 보내며

베트남 한 달 살기를 다녀오고, 그렇게 마지막 육아휴직을 끝내고서 회사에 복직한 지 3주가 되어간다. 그리고 이것은 단순히 휴직에서 복직으로 넘어가는 수순 아래에 다른 무언가를 발견하게 된 시간이기도 하다. 그것은 예상치 못한 방황.


지난 1월의 베트남 살이는 그야말로 행복한 여행자의 삶이었다. 매일매일이 화창했고, 이국적인 풍경 아래 원 없이 걷고 읽었다. 운동화를 신고 가방에 책 한 권 넣어 뜨거운 햇살 아래로 한발 내딛을 때의 그 힘찬 마음을 사랑했다. 하고 싶은 걸 하고 싶은 때 하며 지냈다. 그야말로 내가 추구하는 자유와 행복이었다.


그래서였는지 더욱 복직에 대한 무거운 마음이 들었다. 겨우 두 달 떠나온 것뿐인데 지난 십여 년의 회사 생활이 아득하게 느껴졌다. '내가 다시 회사를 다닐 수 있을까?' 하는 질문도 떠올랐다. 하지만 인간은 적응의 동물이라고 했지. 아니, 어쩌면 회사에서의 시간은 알게 모르게 내 안에 오래 쌓여있었던 것일지도. 두 달 만에 사무실 책상에 앉자마자 다시 회사원 모습이 장착되었다. '그래, 여기가 내가 있을 곳이지.' 하며 말이다.

걱정과 달리 반갑고 익숙했다. 회사 복도를 걷는 발걸음도, 실험 도구를 잡는 손도, 사람들을 대하는 얼굴도 마치 지난주까지 그랬던 것처럼 능숙하게 느껴졌다. 겨우 두 달의 쉼은 11년 해온 회사 생활에 전혀 티가 나지 않는구나 싶었다.


하지만 그것 역시 섣부른 판단이었을까. 정확히 복직 삼일째가 되던 날, 사무실 책상 앞에 앉아있는 내 모습을 문득 다른 내가 바라보게 되었다. 저 멀리 야자수 나무 아래서 걷고 읽던 내가 지금의 나를 측은히 보는 그런 느낌. '세상에 재미있는 일이 얼마나 많은데 나는 지금 여기 갇혀서 무얼 하고 있는 걸까.' 이런 위험한 생각이 들었다. 그날 저녁 집에 가서 처음으로 남편에게 이렇게 말했다. "나 회사 다니기 싫어."


전혀 예상하지 못했던 감정이었다. 이런 내 마음이 뭘까 들여다보았다. 복직에 대한 부담감? 나트랑에 대한 향수? 큰 기대를 품고 떠나 그 이상의 행복을 경험하고 돌아왔지만 지나고 나니 한낱 꿈에 불과한 일이 되어버린 속상함이었을까. 현실은 아무것도 나아지지 않았다는 실망감이었을까. 마음에 바람이 든 것일까.


내가 할 수 있는 건, 그리고 하길 바라는 건 어떻게든 이 방황을 잘 정돈하는 것이었다. 나는 여전히 회사가 필요하고, 회사를 박차고 나갈 만큼 이곳을 싫어하지 않기 때문이다. 오히려 당장 그만둔다고 생각하면 아쉽고 슬플 만큼 회사에는 내가 좋아하는 것 역시 많이 있기 때문이다.


그래서 복직을 일종의 리셋 버튼으로 생각하기로 했다. 올해의 다이어리를 처음 열어서 쓰고, 익숙하던 업무도 다시금 정성을 더해보았다. 공부로 마음을 다잡아보고자 지난주에는 학회도 다녀왔다. 어떻게든 스스로에게 흥미를 불러일으키고 꺼진 불씨를 다시 지필 방법들을 찾아 행해보았다. 그리고 가장 중요한, 마음을 다시 붙여보았다. 마주 보며 웃던 사람들, 매력을 느끼던 일들, 그리고 나를 행복하게 했던 작은 루틴들을 바라보며 말이다.


사그라들던 마음에 심폐소생을 한 듯 효과가 있었던 것일까? 집에서 문득 빨래를 개다가 남편에게 툭 해버린 말이 이랬다. "나 이제 베트남 후유증에서 빠져나온 것 같아." 말해놓고도 이게 뭘까 싶을 만큼 순간적인 생각이었다. 다시 일상을 사랑할 준비가 되었다는 신호 같은 말이었을지도 모르겠다. 멀리 두고 온 것만 그리워했는데, 돌아와 보니 이곳에도 내가 애정하는 일들이 곳곳에 있음을 깨달은 듯하다. 그 깨달음을 온전히 받아들인 게 더 중요한 포인트라는 생각도 든다.


지난 3주간 그야말로 조용히 방황했다. 그것이 방황인지도 지금에서야 알았다. 그 방황이 완전히 끝났다고 자신은 못하겠다. 그리움은 아무리 시간이 지나도 언제든 불쑥 튀어 오르는 법이기에. 하지만 일상을 정돈하는 과정은 잘 되어가고 있다고 말할 수 있겠다. 포기하고 싶지 않은, 그리고 사랑하는 많은 것들이 내 일상을 반짝이게 하고 있으니까. 그건 그것을 바라보는 내 눈이 반짝일 때 마다 알고 있으니까, 자신 있게 말할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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