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클로드 Apr 06. 2024

나의 최연소 여행 메이트

나도 모르는 새 의지한 작은 손

2024.01.05~02.08


나트랑에서의 내 여행메이트는 다름 아닌 이제 초등학교 2학년이 된 딸아이다. 처음으로 단 둘이 비행기를 타고 외국에 나갔다. '내가 정말 우리 꼬마랑 단 둘이 떠나는구나' 실감이 확 들었던 건 공항에서 배웅하던 남편과 바이바이 할 때부터였다. 그때부터 나와 아이의 여행이 시작되었다.


공항 면세점을 들어선 순간, 20대 때부터 들뜬 잰걸음으로 면세점을 돌아다니던 그 기분이 재생되었다. 하지만 현실은 한 손에는 아이 손, 다른 한 손에는 기내용 캐리어... 그리고 예전에 비해 물욕은커녕 구경 욕구마저 거의 소멸되어서 딱 살 곳만 가기로 했다. 마침 오래된 선글라스와 작별을 마음먹어서 선글라스 매장만 골라 둘러보는데 우리 꼬마 벌써 지루한 눈치다. 순간 아이에게 쇼핑 메이트의 역할을 부여하였다. 이것저것 써보며 "이거 어때? 이게 더 예뻐, 아까 쓴 게 더 예뻐?" 하며 연신 질문을 건넸다. 아이는 함께 진지하게 고민해 주고 여과 없이 의견을 내며 선글라스 앞에서 드는 나의 헷갈림에 시원스러운 선택을 내려주었다. 그렇게 쇼핑 하나를 마치고 우리는 카페에 나란히 앉아 각자 좋아하는 음료를 마시며 여행의 첫 발을 기다렸다.


나트랑에 도착해서는 정말 모든 게 현실이었다. 낯선 거리, 처음 가보는 식당, 긴장되는 첫 택시 탑승 등 매 순간 더듬이를 바짝 세우듯 살피고 두드렸다. 그리고 한 손에 잡은 아이의 작은 손이 내게 안전과 보호라는 키워드를 매 순간 일깨우며 불안을 더 증폭시켰다. 수많은 위험 요소와 발생할지 모를 상황들이 보이고 떠올랐다. 외국에 나가는 걸 무척 좋아하고 혼자서도 여러 번 다녀보았지만 언제나 첫 순간에는 두려운 법이었다. 하지만 이번에는 달랐다. 엄마로서 가지는 책임감과 두려움이 생긴 것이다. 이 작은 손이 내 손에 의지하는 무게가 매우 커다랗게 느껴졌다. 신호등 하나 없는 길을 아슬아슬하게 건널 때면 혼자 건널 때 보다 아이와 건널 때가 훨씬 두렵고 스트레스가 심했다.


그렇게 날을 거듭 보내며 낯선 곳이 하나 둘 눈에 들어올 때쯤 우리의 맞잡은 손에 생각지 못한 변화가 생겼다. 그저 내 쪽으로만 치중해 있던 무게가 양쪽을 순환하듯 분산된 느낌! 한 방향으로 흐르던 의지가 어느새 아이를 향해서도 흐르고 있었다. 그랬다. 스스로도 모르는 새 나는 아이에게 의지하고 있었다.

'내가 널 지켜야 해'라는 마음으로 다니고 있었지만 사실은 아이가 있기에 덜 두렵고 외롭지 않았다. 사소한 풍경도 놓치지 않고 함께 나누며 이야기를 만들었다. 어느 식당에 들어갈지 의논하고 메뉴판을 펼쳐놓고 나눠먹을 음식을 골랐다. "진짜 맛있다~", "이것도 먹어봐" 하며 맛을 공유하는 이 작은 아이는 어느새 내가 마냥 보호해야 할 대상이 아닌 함께 하는 파트너가 되어있었다. 여행 메이트! 이 말이 처음으로 떠오르는 순간이었다.


아이에게도 나에게도 낯선 베트남, 그곳에서 나는 마냥 보호자일 거라고만 생각했다. 하지만 과거 여행들의 친구 혹은 남편처럼 이 작은 아이가 나와 나란히 걷는 여행 메이트가 되어있는 것이었다. 순수한 나의 여행 메이트는 주말 산책길에서는 탐험을 떠난 듯 갈림길마다 원하는 방향을 골라주었다. 현지에서 처음 맛본 쌀국수에는 엄지를 치켜올리며 월드 베스트라고 격한 감탄을 표현했다. 해변 야자수 길에서는 달리기 시합을 제시하고, 마트에서는 생경한 간식들에 두 눈을 반짝이며 신나게 장을 보았다. 미용실에 나란히 앉아 색실로 머리땋기를 하고, 카페에 마주 앉아 코코넛 아이스크림을 함께 먹었다. 모든 것을 함께 경험하고 느끼며 공유했다.

그 순간들 앞에서는 뭐랄까, 우리의 관계가 정말 친구처럼 대등하게 느껴졌다. 나도 처음이고 너도 처음인 그런 세계 속에서 우리는 그저 보폭을 맞춘 여행자였다. 아이와의 그런 관계가 꽤 신선했다. 우리 딸이 벌써 엄마의 친구가 되어주는 걸까 하는 생각도 들었다. 그리고 내내 이런 말이 머릿속에 떠올랐다. '둘이라서 더 행복해.'


육아 때문에, 그리고 코로나 때문에 이런 자유로운 해외여행은 정말 오랜만이었다. 그 사이 나의 작은 꼬마는 함께 즐길 줄 아는 여행 친구가 되어있었다. 솔직히 지난 시간 동안 과거의 화려하고 자유로웠던 여행들을 그리워했다. 마치 좋은 시절 다 보냈다는 듯이 아련하게 회상하기도 했다. 하지만 이 작은 손을 꼭 붙잡고 다닌 베트남 한 달 살기는 내 여행에 새로운 페이지를 넘겨주었다.

앞으로 아이와 그려나가는 여행은 어떤 모습일까? 아이가 성장하며 여행도 함께 성장하겠지. 언젠가는 나란히 여행 계획을 세우고, 또 언젠가는 계획을 맡기게도 되겠지. 내 여행 메이트의 성장이 기대된다. 작고 소중한 나의 최연소 여행 메이트.

매거진의 이전글 귀국에 대한 소회

작품 선택

키워드 선택 0 / 3 0

댓글여부

afliean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