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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아옹다옹하다 Apr 09. 2024

멍 때리기

위문의 한 방식

 멍 때리기를 가장 잘하는 사람을 뽑는 이색 대회가 열렸다고 해요. 관객들의 투표 점수와 15분마다 체크한 심박수의 안정감을 합산해 우승자를 정하는 방식이래요. 현대 사회의 빠른 속도와 경쟁으로 인한 스트레스에서 격리되는 체험을 하는 것이 대회의 취지라고 하더군요. 열심히 일해서 번 돈으로 근사한 옷을 사거나 해외여행을 가는 사치를 부리듯, 시간의 사치도 부릴 줄 알아야 된다나요. 바쁘게 흘러가는 일상 속에서 잠시라도 멈춰 쉬는 행위가 필요하긴 하죠. 실제로 멍 때리기를 적절히 하면 뇌를 정리하고 원하는 대상에 대한 무의식적인 사고를 지속하는 효과가 있다고 해요. 대회의 우승자에게는 역설적으로 로댕의 '생각하는 사람'이 갓을 쓴 모양의 트로피가 주어졌대요.

 세상은 쉴 틈 없이 무언가를 채우는 일에만 몰두하죠. 끊임없이 더 배우고, 더 만들고, 더 갖기 위해 노력하며, 그마저도 아니면 인터넷을 통해 무언가를 보고 듣거나, 하다못해 사람을 만나 대화를 하고 관계를 형성하는 데에 열과 성을 쏟는 거예요. 종교에서는 비움에 대해 가르치지만 삶 속에서 제대로 실천하고 사는 사람이 얼마나 되겠어요. 온전히 아무것도 하지 않고 생각마저도 단절한 채 멍하니 있는 일은 시간을 헛되이 쓰는 거라고 생각하잖아요. 아무것도 안 해야 이기는 게임이라니요. 루저들이나 한다는 시간 낭비, 인생 허비를 나는 꽤 오래전부터 연습해 왔어요. 자의가 아닌, 미치지 않기 위한 생존 수단이었죠. 세상의 밑창까지 추락했음에도 더 깊이 매몰될까 봐, 그대로 영겁의 세월 속에 갇힐까 봐 두려웠어요. 어떤 사고도 틈타지 못하도록 사유의 수도꼭지를 틀어 잠갔지만 헛된 생각은 온전한 비움을 허락하지 않았습니다. 지나간 과거에 대한 후회와 번민, 현재 나를 짓누르는 근심, 불투명한 미래가 주는 염려 따위가 질퍽하게 버물어져 머릿속을 가득 채웠어요. 처음에는 현실을 외면하고 싶어서 공상에 몰두했지만 그것마저도 결국 상념의 일부라고 봐야겠죠. 망각은 신이 내린 축복이라더니 지우고 싶은 기억일수록 또렷하게 각인되더군요. 나이가 들면서 더욱 다양한 잡념이 억세게 뿌리를 내리더라고요. 아카시아나무의 강력한 번식력처럼 집요한 구석이 있어서 그냥 두면 주위 다른 나무의 성장까지 방해하곤 했어요. 댕강 잘라 내려다가 뾰족한 가시에 찔려 피를 본 게 한두 번이 아니었다니까요. 멍 때리기 대회에 참가했더라면 저도 입상권이었을 텐데 아쉽네요. 아무 일도 하지 않는 것은 누구나 할 수 있지만 아무 생각도 하지 않는 건 쉽지 않은 일이에요. 사람은 끊임없이 생각을 만들고, 심지어 자면서도 꿈을 꾸잖아요. 그것은 위험과 기회 속에서 발동하는 생존을 위한 자연스러운 현상이긴 해요. 하지만 가끔은 뇌도 쉴 수 있게 만들어 줘야 사람이 살아요.  

 자, 이제부터 저를 따라 해 보세요. 왜 '멍하다'의 어근인 '멍'과 '때리다'라는 동사를 같이 쓰는지 아세요. 술 한 잔 때리자. 영화 한 편 때리자. '때리다'라는 단어는 무슨 일은 한다는 의미로 쓰이기 때문에 멍하는 행동 또한 작위에 의한 적극 행위임을 알 수 있어요. 당신이 어떤 고민과 우려에 갇혀 있는지 저는 몰라요. 우리는 독립적인 존재이기에 서로에 대해 애정을 갖고 있다고 한들 다 헤아릴 수는 없어요. 다만 이해하기 위해 무던히 노력할 뿐이죠. 제가 어떤 다정한 말을 건넨다 한들 지친 당신을 위로하기엔 역부족이겠죠. 그러니까 이건 제가 던지는 소소한 위문의 한 방식이에요. 굳이 비우거나 버리려고 할 필요도 없어요. 그냥 5분만 멍하니 자신을 그대로 내버려 두세요. 사랑스럽고 고귀한 본연의 모습대로 잠시 방치하고 나면 그 휴식이 분명 당신을 강하게 할 거예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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