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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이정안 Dec 07. 2022

우리가 우리일 때

서로가 소음으로 느껴지기 전까지

라스트 폰 트리에의 영화 <멜랑콜리아>(2011)는 세계의 멸망, 지구의 종말에 대해 말한다. 이름 그대로 ‘멜랑콜리아’라는 거대한 행성이 충돌하며 모든 것이 끝나버리는 순간 영화도 함께 완결된다. 뜬금없이 국내 개봉이 10년이 훌쩍 지난 영화를 소환한 것은 과하게 아름답게 멸망의 순간을 박제한 이 영화가 사실은 제목이 제시하는 우울증과 멸망에 대한 서사라기보다는 실패한 관계의 거리에 대한 알레고리라고 생각했기 때문이다.


언제부턴가 사람과 사람 사이의 관계가 종결되는 순간이 ‘손절’로 불리게 됐다. 손을 떼다, 더 큰 손해를 막기 위해. 이런 단어는 주식 시장에서나 쓰일법한 말이라고 생각했는데. 실제로 그래 왔지만 어느 순간 많은 단어를 대체했다. 어딘가 성숙하지 못한 인상을 주는 ‘절교’나 다소 시적인 듯 서정적인 ‘절연’이나 비극적 정서가 느껴지는 ‘결별’ 등. 관계의 끝에는 저마다의 이유와 방식이 있겠지만 그 다변적 정서와 주관성을 소거시키려는 듯 어느 날부터 사람들은 손절이라는 단어로 여러 가지의 끝을 대체하기 시작했다. 사적인 미숙함이 감추려는 시도였을지 확실치 않지만, 아이러니하게도 손절을 먼저 했다거나 당했다는 식으로 마침표를 찍은 주체와 찍힌 대상이 명확해지고 말았다. 그리고 당연한 이야기일지 모르지만, 대부분의 관계는 손절 같은 소 챕터 제목 같은 명명도 허락되지 않은 채 닳아서 끊긴 실처럼 그냥 끝이 난다. 누가 먼저랄 것 없는 소원함 혹은 의도적이지만 끝내 더 이어지지 못한 채 멀어지는 관계들이 그렇다. 끝끝내, 끝이 나고 만다. 때로는 끝이라는 말조차 새삼스럽게.


굳이 따지자면 나는 언제나 손절을 당하는 쪽이었다. 거창한 상처의 말로 끝을 통보받은 적도 있지만 기묘한 서먹함 속에서 노력해도 회복되지 않는 유대를 실시간으로 느끼며 남겨졌다. 어째서 사람들은 모두 나를 떠나는 걸까? 다소 비련에 빠져 연민 섞인 마음으로 스스로를 돌아본 적도 있으나 답이 나온 적은 없다. 의도를 담지 않아도 모든 우리에게 끝은 온다. 어린 시절 온 마음을 다해 사랑했던 강아지가 나를 사랑하지 않아서 나를 떠난 것은 아니다. 어떤 방식으로든 우리가 우리인 순간에는 끝이 있기 때문에 그것이 계절처럼 찾아오는 것이다.


우울증에 시달리는 <멜랑콜리아>의 저스틴은 삶의 모든 것이 두렵고 불안하다. 그녀를 너무도 사랑했고 같이 잘해나갈 수 있으리라 장담하던 남편은 결국 그녀를 이해하지 못하고 곁을 떠나버린다. 저스틴의 언니 클레어는 동생을 위로하지만 그녀의 불안에 공감하지 못하는 말들로 동생의 상황을 악화시키며 본인은 ‘멜랑콜리아’의 충돌 예언으로 불안에 시달린다. 충돌로 인한 멸망은 없다며 아내의 두려움을 경시하던 남편은 지구를 비껴간다던 예상 궤도를 벗어나는 것을 깨닫는 순간 아내가 충돌 전에 자살을 위해 준비했던 약을 먹고 먼저 죽어버린다.


이 밖에도 <멜랑콜리아>에는 숱한 관계의 끝이 열거 된다. 그리고 그 클라이맥스에 세계의 끝, 지구 멸망이 있다. 적정 궤도를 벗어나 지구에 충돌하며 모든 것을 끝내고야 만 행성 멜랑콜리아처럼. 어긋나거나 때로는 존재한 적이 없거나. 적정 거리에 대한 신호가 부족했던 관계들은 궤도를 벗어나 파국을 맞이하거나 빗겨 난 채로 영원히 멀어진다.


언제나 남겨지는 입장으로 숱한 파국과 궤도 이탈을 경험하며 스스로를 방어하기 위해 미리 끝을 상상하는 버릇이 생겼다. 우리가 우리인 채로 함께 느낀 행복도 즐거움도, 어떤 교차점에 불과하다, 영속적인 것은 없으며 각자의 삶에서 우리는 멀어지기만 할지 모른다. 차라리 충돌이라는 계기라도 있었으면 하고 바라면서 서로를 영원히 적적하게 만들지도 모른다. 그건 너무 서운한 일이지만, 외로운 일이지만.


그러니까 내 말은, 우리가 우리인 시간이 조금 더 길어졌으면 한다. 지금의 소중한 관계들이 보내는 작은 신호에 귀 기울이며, 때로는 신호가 미약하거나 해독하기 어려울 지라도. 나는 내게 소중한 우리가 우리인 순간을 이왕이면 기다랗게 늘리고 싶다, 서로의 신호가 소음처럼 느껴지는 날이 오기야 오겠지만, 안 오면 더 좋을 것 같지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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