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물길 Mar 24. 2024

엄마, 오셨습니까?

봄이 오는 시기에는 목련꽃을 기다립니다. 봄이 오면 들판으로 시내로 목련꽃을 찾아 헤맵니다. 혹시, 거기에 울 엄마의 얼굴이 보일까봐 입니다. 몇 년간은 밖으로 목련 꽃을 찾아다니다가 엄마의 영혼이 여기저기 찾아드는 것보다는 나의 곁에 찾아 들었으면 하는 생각으로 3년 전 11월, 새 집으로 이사할 때 테라스에 목련나무를 심었습니다. 다음 해에는  목련꽃이 피지 않아 밖으로 나돌며 찾아 예쁘게 핀 꽃을 카메라에 담기도 했습니다.     


울 엄마는 하얀 목련꽃처럼 항상 바람에 가냘프게 흔들리며 사셨습니다. 흔들리는 꽃잎이, 하얀 치마저고리를 입고 머리엔 새참을 이고 나르시는 엄마의 모습이 그렇게 애잔하게 다가옵니다. 내가 봄을 기다리는 이유이고, 목련 꽃잎은 우리 엄마 치마저고리입니다. 그러다 치마에 흙이 묻으면 자주색 자목련으로 환생합니다. 어쩌면 그냥 흙이라기보다 땀 속에 스며든 흙이라 더욱 가슴이 미어집니다. 자목련은 백목련보다 한 달 뒤쯤 피어, 울 엄마 고생하시던 모습이 그렇게도 목련을 닮았습니다.     


백목련은 항상 양지바른 곳에서 피는 꽃이라는 느낌과 자목련은 햇빛이 들지 않는  음지에서 피던 생각이 머릿속에 박혀 자목련의 삶은 더욱더 애절해 보입니다. 그래서 슬픔은 음지에서 피어나나 봅니다. 그래서 우리의 마음이 밝지 못하면 마음이 우울해지고 멍해지기도 하나 봅니다. 음지에서 피는 꽃이 다 슬픔을 가진 것은 아니라는 생각이 들지만 저 자목련은 왠지 슬픔을 안고 사는 사람과 닮아있어 더욱 안쓰럽게다가옵니다.  


   

며칠 전에 “The mother”라는 영화를 보았습니다. FBI 출신의 엄마가 임무 수행 중에 일어난  무기 밀매를 인지한 관계로 두 폭력집단의 추적을 받고 있는 상황에서 체포되어 취조 중에 폭력 집단의 공격을 받고 만삭의 상태에서 폭력집단에게 배에 칼을 맞습니다. 병원에서 아이를  낳고 아기의 안전을 위하여 친권 포기를 강요받고, 자기의 동료(포스터)에게 아기의 뒤를 챙겨 줄 것을 당부합니다. 첫째, 좋은 양부모를 찾아 달라, 둘째 아이의 안전을 생일 때 마다 알려주고, 셋째 문제가 생기면 알려 주라는 것이었습니다.      


12년이 지난 후 아기(죠이)가 초등학교 다닐 때 납치가 됩니다. 엄마는 지난날의 경력과 실력으로 죠이를 구하여 아주 한적한 숲속 안가로 이동하는데, 이 때 죠이는 친엄마라고 직감하지만 엄마는 대답하지 않습니다. 산채에 자리를 잡고 12살인 아이가 폭력집단을 대상으로 살아남을 수 있는 방법을 가르칩니다. 하얀 눈이 덮인 산골에서 눈길을 달리며 육체적 강화 운동, 사격 훈련, 차 운전하는 법등을 실제로 폭력집단의 공격을 받았을 때 살아남을 수 있는 방법을 가르칩니다. 한 날 아침에 엄마가 눈을 떴을 때 죠이는 보이지 않습니다. 엄마가 허겁지겁 아이를 찾는 상황이, 눈앞에 아무것도 보이지 않고 죠이를 찾는, 온 산이 울리고 폭발적인 부르짖음은 아이에 대한 엄마의 간절한 마음, 누구라도 엄마이면 그럴 수밖에 없는 상황에서, 엄마의 굳건한 눈동자에서 엄마일 수밖에 없는 엄마를 보았습니다.   

  

아이를 찾았을 때 야생 늑대의 새끼들과 놀고 있는 것을 보고는 직감으로 느꼈겠지만 죠이는 새끼에게 물려 시골 병원에 가게 되고, 급히 아이의 이름이 컴퓨터에 입력이 되어 위치가 탄로 나게 되고 도망갈 시간도 없이 폭력집단이 들이 닥쳐, 죠이는 차를 몰고 눈길을 도망치고 엄마는 폭력 집단과 싸움을 벌이다 위기에 봉착 되었을 때, 죠이는 총을 쏘아 엄마를 구해 냅니다.  


   

부모는 자식을 지키는 것이 우리에겐 어쩌면 의무와 같은 느낌으로 살고 있을 겁니다. 어쩌면 잘되게 키울 수 있을까, 좋은 대학을 거쳐 좋은 직장을 구할 수 있을까하는 생각으로 말입니다. 이 영화는 자식에 대한 사랑을 말 대신에 행동으로 실제 필요한 일을 가르쳐 위기에서 탈 출 할 수 있도록 훈련을 시킵니다. 살아가면 생각하지도 못한 숱한 일들이 일어납니다. 이일들을 스스로 극복할 수 있는 나이가 되어 이겨 나가야만 그 다음의 장으로 나아갈 수 있는데 우리는 아이들에게 무엇을, 무엇을 위해 뒷바라지 하고 있는 지를  생각을 좀 해봐야 할 것 같기도 합니다. 누구라도 자신을 바쳐 아이가 잘 될 수 있다면, 아니 바로 설 수 있다면 무엇이든 아끼지 않을 것입니다. 아이가 홀로 설 수 있을 때까지 뒷바라지를  하는 것이라면 좀 고리타분할 수 있겠으나, 누구나 부모가 되면 그냥 뒷손 끼고 쳐다만 보기는 어려울 것입니다. 


    

실제로 우리는 민들레를 봅니다. 자신의 품에서 자식을 키우지 않습니다. 어느 시간이 되면 홀씨로 날려, 아주 멀리, 그것도 어디가 될지 모르는 곳으로 날려 보내어 부모와는 독립된 개체로 살아가면서 모진 극한 상황을 이겨내고 꽃을 피우고 또 같은 의미로 독립시키며 살아갑니다. 민들레는 포장된 시멘트 도로나, 척박한 자갈땅이나, 길 가운데 사람의 발에 무참히 밟히고 밟혀도 또 일어납니다. 우리의 아이들도 그렇게 자랐으면 하는 생각이 있습니다.      


                                                                  [ 울 어머니 ]

     

올해는 나의 테라스에 목련꽃이 피었습니다. 얼마나 반갑고 보고 싶은지 모릅니다. 얼굴엔 주름이 더 생긴 것 같기도 하고, 꽃잎이 한 쪽으로 쏠린 것을 보니 옛날 보리타작 할 때 도리깨에 힘이 부쳐 다치셨던 모습도 떠오릅니다. 약한 바람에 지금도 흔들리는 것을 보면 그렇게 자식을 위해 무거운 걱정은 하지 않아도 될 것 같은데 아직도 마음이 무거우십니까?     


저 산허리에 걸친 고구마 밭에 물을 이고 가시다가 넘어 지실 때도 옆에 같이 가는 저의 손을  먼저 잡아주시던 어머니. 태풍, 물바다에 집과 가축들을 다 잃어버리고도 벌근 눈으로 나를 안아주시던 어머니.    

 

대나뭇가지 회초리로 나를 바로 세우기 위해 무척 애를 쓰시던 내 어머니!  


올해는  얼마나 보고 싶으셨으면 창가에서 나를 살며시 쳐다보고 계시나요.


고운 바람에 목련 꽃잎 떨어지면 또다시 일 년을 기다려야 하는데, 한번 씩 꿈속에라도 나타나시어 어떻게 사시는지 알려주기라도 하시옵소서.   

작가의 이전글 매화가 핀다는 것은 하나의 사건이다

작품 선택

키워드 선택 0 / 3 0

댓글여부

afliean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