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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윤소흔 Mar 16. 2024

이게.. 나?

왜 그들의 나는 모두 똑같은가


"선생님 여기 보세요!"


"이거 혹시 나니?"


"네!! 정말 똑같죠?"



아이들이 그려놓은 칠판 곳곳의 안경 쓴 발랄한 표정의 캐릭터. 그 캐릭터와 꼭 닮은 선생님은 그림을 보며 푸하하! 웃음을 터트렸다.




학기 초가 지나고 난 뒤 아이들도 나를, 나도 아이들을 어느 정도 파악하고 나서부터는 조금 더 편안한 수업을 진행할 수 있었다. 아이들은 솔직하게 자신의 마음을 하트나 인사로 표현하기도 하고, 매 수업시간 전마다 칠판에 과학 2 사랑한다는 문구를 써놓고 반겨주었다. 게다가 자신의 이야기들을 조잘조잘 이야기하며 내게 장난 섞인 농담도 건네고, 환하게 웃어주는 등 저마다의 표현으로 나를 환영했다.



그런 아이들에게 내가 해줄 수 있는 건 최대한 귀를 기울여주고 적극적으로 인사를 받아주거나 그 마음에 고마움을 표현해 주는 것이었다. 그것만으로도 학교에서의 일들이 충분히 즐거웠고, 아이들에게 받는 에너지는 어마어마했다.



중학생이었던 아이들의 가장 많은 표현 방법은 세 가지였는데, 첫 번째는 과자를 주는 것이었다. 아이들은 항상 선생님께 무엇인가를 주며 자신의 마음을 표현하는 것을 하고 싶어 했지만, 안타깝게도 청탁 금지법으로 인해 적극적으로 표현하는 것을 조심스러워했다. 그런 아이들이 생각해 표현 방법이 바로 과자를 주는 것이었다. 이때 과자는 절대로 통째로 주는 일이 없이 과자 한 개를 입에 쏙 넣어주거나, 젤리나 마이쮸같은 과자를 까서 남몰래 하나씩 손에 쥐어주었다. 그럴 때면 나는 항상 고맙다고 얘기해 주었다.



두 번째 방법은 편지였다. 손으로 꾹꾹 눌러쓴 진심 어린 편지는 길이와 상관없이 많은 감동을 주었는데, 그 편지들을 읽고 또 읽다 보면 다시금 더 잘해야지 하는 마음을 다잡을 수 있게 해 주었다.



마지막 방법은 그림이었다. 그것도 작은 종이에 나를 그려주거나 내가 들어오기 전 쉬는 시간에 칠판에 나를 그려놓는 식이었는데, 웃기게도 아이들이 그려놓은 나는 약속이나 한 듯이 모조리 똑같았다.






"선생님! 선생님을 그렸어요!"


"선생님 어떠세요?"



그림을 그린 아이들은 환하게 웃으며 나의 평가를 기다렸다. 그림에 재능이 별로 없던 곰손인 나는 감탄을 거듭하며 아이들의 그림을 몇 번이고 사진으로 남겼다. 그렇게 나의 그림이 네 번째가 되었을 무렵, 다른 반에서 그려주었던 그림이라고 보여주다가 웃음이 터져 나왔다.



"근데 진심 너희들 뭐 약속이라도 했니? 다 똑같다!"



양쪽으로 갈라진 앞머리, 안경과 환한 웃음, 그리고 옆으로 묶은 포니테일까지. 무엇 하나 빠지지 않고 모두가 똑같았다. 게다가 포니테일에 올라앉은 리본을 보니 탄식이 나올 정도였다.



"어머, 리본까지도 안 빠지고 그렸네!"


"에이! 리본을 어떻게 빼먹어요! 그게 선생님의 트레이드 마크인데요! 선생님은 항상 리본 머리끈으로 머리를 묶으시잖아요."



아이들의 대답에 나는 연이어 감탄했다. 단지 밋밋한 머리끈이면 뒤통수가 재미없어 보일까 봐 작고 푸른 리본 머리끈을 쓴 것은 사실이었지만, 단 한 번도 머리끈에 대해 언급한 적이 없었기 때문에 아이들이 내 머리끈을 제대로 보았을 것이라고는 생각하지 못했기 때문이었다.



하지만 아이들은 다 보고 있었고, 다 알고 있었던 것이었다. 선생님이 무엇을 좋아하고, 무엇을 자주 쓰는지. 그 작은 디테일마저도 놓치지 않고 머리와 눈에 담으려고 애썼을 아이들을 보고 있자니 새삼 내가 얼마나 아이들에게 큰 영향력을 미칠 수 있는 사람인지를 다시금 느낄 수 있었다.



아, 아이들에게 나는 거울이구나. 그렇기에 내가 평소의 행동도, 한 번의 말도, 한 번의 표정도, 그 모든 것들을 조심하고 또 신경 써서 아이들을 대하고 또 다가가야 하는 거구나. 그런 감정을 느끼고 나니 더 이상 저 간단한 그림들이 간단하게 느껴지지 않았다. 아이들의 진심 어린 마음이 가득 담겨서, 벅찰 정도로 고맙게 느껴졌다.




문득 선생님의 모든 것을 닮고 싶어 했던 학생 시절의 내가 떠올랐다. 그러고 보면 나도 선생님이 무엇을 쓰시고, 무엇을 드시고, 무엇을 좋아하시는지 모든 것들에 관심을 가졌었다. 그리고 그중에는 지금의 내게도 영향을 미친 것들이 분명히 있을 터였다.



나 또한 그런 선생님이니까. 그런 자리에 서 있으니까. 앞으로도 아이들의 마음을 잘 받아주고, 또 그만큼 고맙다고 표현해 줄 수 있는 선생님이 되어야겠다. 작은 리본까지도 놓치지 않고 나를 사랑해 준 아이들에게 더 큰 사랑을 되돌려 주기 위해서라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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