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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산호초 Jul 24. 2023

내가 오징어면 나는 재벌이다..가 참?

조건문 해석의 역사 (1)

'A면 B다(A→B)' 라는 문장의 진짜 의미는 무엇일까? 많은 학자들이 나름의 해석법을 제시해왔다. 그 중 하나가 '실질조건문적인 해석법'이다. 이 해석법은 아래의 아이디어와 맞닿아있다.


'A면 B다'가 무엇을 의미하는지 알려면, 이 문장이 언제 '참'이라 할 수 있는지 제시하면 되지 않을까? 'A면 B다'는 A와 B로 구성돼있으므로 A,B 각각의 참/거짓을 통해 문장 전체의 참/거짓도 규정될 수 있지 않을까?


딱 들어맞는 예시라고 하긴 어렵지만.. 이 경우를 생각해보면 이해가 쉽다. '그와 나는 서로를 사랑한다'가 참인지 알고 싶은 사람들은 '그와 나'의 구성성분인 '그'가 나를 사랑하는지, '내'가 그를 사랑하는지 곰곰히 생각하곤 한다. 부분의 참/거짓을 통해 전체의 참/거짓을 알 수 있으리라 생각하기 때문이다.


조건문을 실질조건문(material conditional)적으로 해석하는 관점은 'A면 B다(A→B)'의 의미가 A⊃B라는 실질조건문의 의미와 같다고 본다. (여기선 이해가 안 되지만 좀 더 아래까지 읽어보면 이해할 수 있다) A⊃B는 또다시 (~A∨B)로 정의된다. ~는 'not(부정)', ∨는 'or'의 역할을 하는 논리연산자다. (~A∨B)는 A가 거짓이거나(or) B가 참인 경우를 가리킨다.


* 여기서 ⊃는 집합 기호가 아니다.


정리하면, A가 거짓이거나 B가 참인 경우  A⊃B가 참이고, A→B가 참이라는 게 조건문의 실질조건문적 해석이다.


이를 표로 나타내면 다음과 같다.

출처:Stanford Encyclopedia of Philosophy - The Logic of Conditionals

이 표의 내용을 보다 알아보기 쉽게 정리하면 아래와 같다.



두 개의 숫자값(value)으로 참(1)/거짓(0)을 나타낸대서 2진 논리(two-valued logics)라고도 한다. 이러한 실질해석법에 의하면 조건문 A→B는 A가 1(참)이고 B가 0(거짓)일 때만 0(거짓)이 된다. 나머지 경우는 모두 1(참)이다. 표의 오른쪽 하단 부분이 A→B의 진리치를 나타내는 부분인데, 살펴보면 0이 하나뿐인 걸 확인할 수 있다. B가 0이고, A가 1일 때다.


실질조건문은 조건문을 굉장히 단순하고 직관적으로 해석할 수 있도록 해 준다. 엄마가 우는 아이를 달래려 이렇게 말했다고 가정해보자.


네가 울지 않는다면, 크리스마스에 산타에게 선물을 받는다

여기서 A는 '너는 울지 않는다'고, B는 '크리스마스에 산타에게 선물을 받는다'다. 아이가 엄마의 말을 잘 들어서 1년 내내 한 번도 울지 않았지만, 크리스마스에 어떠한 이유에선지 산타에게 선물을 받지 못했다고 치자. A는 참이지만, B는 거짓인 경우가 된 것이다. 이때 아이가 "엄마가 거짓말을 했다"고 탓해도 엄마는 할 말이 없을 것 같다. 아마 이 이야기를 들은 대부분의 '네가 울지 않는다면, 크리스마스에 산타에게 선물을 받는다'는 엄마의 말이 거짓이라고 생각할 것이다. 이처럼 A가 참인데 B가 거짓일 때 A→B가 거짓이라고 받아들이는 건 매우 직관적인 해석이다.


실질조건문의 난점 1


문제는 실질조건문이 너무 단순하단 것이다. 우리가 조건문을 사용하는 방식은 실질조건문의 도식으로 모두 설명되지 않는다. 실질조건문이 제시한 해석법(위의 표)에 따라 조건문의 참 거짓을 따졌을 때, 우리의 직관이 도저히 받아들이기 어려운 결론이 도출되기도 한다.


첫 번째 문제는 실질조건문 해석법에 따르면 A가 거짓(0)일 때 B의 참/거짓(0,1)에 상관 없이 A→B(A⊃B)가 무조건 1(참)이 된다는 것이다.


표를 다시 들여다보자. A가 0(거짓)인 경우에 A⊃B는 B가 1이든 0이든(참이든 거짓이든) 모두 1(참)이라 되어 있는 걸 확인할 수 있다. 실질조건문 해석법에 따라 A가 거짓일 때 A→B가 참이라는 걸 받아들이면, 우리는 가끔 얼토당토 않은 문장을 참이라고 인정해야만 하는 상황에 놓인다. 아래의 문장이 그 예다.


내가 오징어면, 나는 재벌이다.


여기서 A는 '나는 오징어다', B는 '나는 재벌이다'다. 나는 오징어가 아니라 사람이므로 A는 0(거짓)이다. ~A의 상황인 것이다. 실질조건문 해석에 따르면 A가 0(거짓)일 때(~A일 때) A→B는 B의 값에 상관없이 그냥 1(참)이 된다. 이를 문장에 예시 문장에 적용하면, 내가 오징어가 아니므로 '내가 오징어면 나는 재벌이다'가 참이 되어 버리는 것이다. 그러나 '내가 오징어면 나는 재벌이다'가 상식적으로 가당키나 한 문장인가. 실질해석법에 의하면 어쩌고저쩌고...를 다 제쳐두고 직관적으로 생각했을 때 도처히 받아들이기 어려운 문장이다. 또다른 예시도 있다.


내 다리가 부러졌다면, 나는 스키를 탈 것이다.


내 다리가 부러지지 않았다면, 내 다리가 부러지지 않아서 A가 0(거짓)이라는 이유 때문에 나는 '내 다리가 부러졌다면, 나는 스키를 탈 것이다'라는... 의사가 들으면 기겁할만한 소리를 1(참)이라고 받아들여야 한다.


실질조건문처럼 A와B의 참/거짓만으로 A→B의 참/거짓을 '기계적'으로 정의하면, A와 B에 실제로 어떤 내용이 들어가는지 생각하지 않게 된다. 그러나 '내가 오징어면 나는 재벌이다' '내 다리가 부러졌다면, 나는 스키를 탈 것이다'는 실질조건문 도식에 따라 기계적으로 따졌을 때 참일진 몰라도, 그 내용을 고려했을 땐 도처히 참이라 하기 어렵다. 여기에서 우린 조건문의 참 거짓을 따질 때 A,B 안에 들어있는 내용 역시 중요하다는 깨달음을 얻을 수 있다.


실질조건문의 난점 2


또 다른 난점도 있다. 앞서 언급된 도식에 따르면, 'A면 B다' 'B면 A다' 둘 중 하나가 반드시 참일 수밖에 없다. 또다시 표를 들여다보자.



일단 'A면 B다'가 거짓이라고 치자. 실질조건문 해석법에 의하면 A면 B다가 0(거짓)인 경우는 하나밖에 없다. A가 1(참)이고 B가 0(거짓)일 때다. 이 경우 'B면 A다'는 자동으로 참이 된다. '내가 오징어면 나는 재벌이다'가 자동으로 참인 것과 같은 이유에서다. 질조건문 해석에 의하면 전건(조건문에서 '~면' 앞에 오는 명제)이 0(거짓)일 경우 조건문 전체가 자동으로 1(참)이 돼버리기 때문이다. 즉,실질조건문 해석법을 곧이곧대로 따르면 'A면 B다'가 거짓일 때, 'B면 A다'는 참일 수밖에 없다. 'B면 A다'가 거짓인 반대의 경우를 생각해봐도, 같은 과정을 따라 'A면 B다'는 참이 되어 버린다. 그래서 'A면 B다'와 'B면 A다' 둘 중 하나가 반드시 참이어야만 하는 상황이 벌어진다.


하지만 생각해보자.


내가 바보면, 넌 똥멍청이다

네가 똥멍청이면, 난 바보다


실질조건문에 의하면 이들은 둘 중 하나가 반드시 참이어야만 하는 관계에 있다. 그러나 툭 터놓고 말했을 때, 우리가 이중 하나를 꼭 참으로 받아들여야만 할까? 굳이 그러지 않아도 될 것 같다. 우리는 아무도 헐뜯지 않을 수 있기 때문이다.


실질조건문의 난점 3


여기서 끝이 아니다. 또 다른 난점이 있다. 누누이 말했지만, 실질조건문 해석법에 의하면 'A면 B다'가 0(거짓)이기 위해선 A가 1(참)이고 B가 거짓(0)이어야만 한다. 아래의 문장을 생각해보자.


신이 존재한다면, 모든 범죄자들이 천국에 갈 것이다.


여기서 A는 '신이 존재한다', B는 '모든 범죄자들이 천국에 갈 것이다'다.

이 문장은 딱 봐도 말이 안 돼 보인다. 조건문이 0(거짓)이라고 해도 될 것 같다. 그러나 이 조건문이 거짓이라고 부정하려는 사람은 실질조건문 해석법에 의해 '신이 존재한다'가 참이라고 받아들여야 한다. 몇 번이나 말했듯 실질조건문은 A가 1(참)이고, B가 0(거짓)일 때만 조건문 전체가 0(거짓)이라고 규정하기 때문이다. 그렇다면 이 문장은 신이 있다고 믿는 유신론자만 부정할 수 있는 문장이 된다. 무신론자는 이 문장이 거짓이라고 말할 수 없다. 하지만 정말 그런가? 아무리 생각해도.. 이 문장은 유신론자든 무신론자든 받아들이기 어렵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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