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 집 대장님, 나의 아버지
아버지는 나에게 말을 좀 세게 하시곤 했다. 정확히는 고집과 자존심으로 뭉친 명령들, 자세히 들어보면 이유나 타당성은 없다. 내가 당장에 모든 것을 다 제쳐두고 말을 듣지 않으면 크게 분노하셨다. 10대에는 마치 중장비에 깔린 뜨거운 아스팔트 같은 느낌을 받아 그런 아버지가 밉기도 했었지만, 뒤돌아 생각해 보니 비속어 한 개 섞이지 않은 호통이었다.
내가 공부를 시작하며 동기 부여가 되었던 것 중 하나는 아버지에게 있다. 이따금씩 가끔 놀러 오시는 아버지 친구분들은 아버지가 내 자랑을 얼마나 하시는지에 대해 알려주셨다. 내가 성적을 올리면 올릴수록 더 자주 듣게 되어 더욱 공부하게 되었다. 솔직하지 못한 내 아버지는 이렇게 표현하시는 것 같다. 나 역시 마찬가지이다. 당신의 아들이니까.
아버지는 내게 변함없는 사람이었는데, 이제는 수명 이야기를 하신다. 내가 지금 당장에 자식을 가져도 이제 20년-30년도 함께 할 수 없다는 말. 나는 해외로, 동생 또한 대학원에 들어가며 독립하니 말 못 할 공허함이 묻어난 말이었다. 차마 입 밖으로 '아버지, 그런 말 마세요'라는 말 대신 왜 그런 말을 하냐며 쓸데없이 화로 무마한 내가 참 모질이 같다. 좀 부드럽게 말할 수 없었나.
이후에도 아버지는 빠르게 지나가는 시간 앞에 볼 시간이 적다는 말만 반복하셨다. 나는 말 문이 막혀 침묵했다. 사실 내가 제일 두려워했던 주제였다. 나는 본인 앞날도 못 가려서 아버지한테 위로의 말도 전하지 못하는데, 내가 말을 꺼내면 약해지는 아버지가 상상되어 마음 아파온다. 나를 가장 아껴주는 사람이 먼저 그런 말을 꺼내니 뭐라 말로 표현할 수 없는 감정이 올라왔다. 흘러가는 시간이 참 애석하다.
시간이 지나도 감정이 쉽게 누그러지지 않는다. 아무리 노력해도 받아들여야만 하는 그 상황이 싫다.
당신은 당신의 모질이 아들이 고작 반장이 되었을 때도, 군부대를 들어갈 때도, 유학길에 나섰을 때도 나를 아껴주었다. 갖은 풍파를 막아주는 당신의 미래는 이제 당신의 자식이 대신 막아줄 차례이다. 트럭을 몰며 과일을 팔던 91년 둔촌동의 당신은 더 대우를 받을 자격이 있다. 그렇게 만들기 위해 내가 이곳에 온 이유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