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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폐관수련인 Oct 30. 2024

바다 다음의 모험

육지에 정착하고 난 이후의 이야기

유학, 처음에는 넓은 바다 한가운데 떨어진 느낌이 들었다. 알몸으로 내던져져서 어디론가 헤엄쳐서 가야 되는데, 수평선 너머로 아무것도 보이지 않는 그런 상황.

이 먼 타지에 왔다는 사실 보다 당장에 연구를 어떻게 해 나가는지가 문제였다. 나는 언제나 먹고사는 것보다 내 공부할 것이 더 중요한, 하루라도 빨리 목적 이룰 일들에 수단과 방법을 가리지 않았다. 물론 이 점은 사람들과 좋은 관계를 유지하는 것보다 더 우선순위에 두었다. 결국엔 그렇게 되었다. 내가 고집한 그대로.


가족들은 이런 모습을 그다지 좋아하지 않는다. 그저 내가 쓸쓸하고 외로워 보이나 보다 싶었는데, 가만 보니 외국인이건 한국인이건 너도 나도 벽을 두고 밀어내는 이 고집된 성격을 어찌할 수 없어 아쉬워하는 것 같다. 그들의 시선에서 나는 속마음 털어낼 친구 하나 없고, 혹여나 쓰러지면 도와줄 사람도 없는 그런 독거노인의 삶을 살고 있다.


매번 이 주제가 머리를 겉돌 때마다 나도 마음이 그렇게 좋은 건 아니다. 언제나 내가 정해 놓은 답 속에서도 한 방향만을 바라보는 것에 자책해 왔지만, 나는 내가 바라는 이상향이 될 수 없었다. 그렇게 17년이 훌쩍 흘러 버렸다.


고집쟁이, 독불장군으로 이기심을 보이는 보기에는 좋지 않을지라도 그다지 잘못된 것은 아니라고 생각해 왔기 때문인 것 같다. 그렇다고 주변인들로부터 조언을 받는다고 닫고 눈 감는 게 아니었다. 어차피 교과서적인 답을 들어도 내가 지금 당장에 해야 하는 목표는 그들이 대신해 것이 아니기 때문이었다. 이루지 못하면 여기까지 온 이유가 없어진다. 그렇다고 만에 하나 그들이 대신해준다고 해도 내가 거부했다. 도움 받을 수 있는 능력보다 스스로 할 수 있는 능력이 내게는 더 중요했다. 물론 지금도 그렇다.


사람의 생에 정(正)의 길을 말할 수 있는 이는 세상에 수두룩하다. 타인도 나도 결국 내가 사는 삶이 정답이다.

그럼에도 한 번은 이 고집을 좀 풀어보려 아무 이유도 없이 선인인척 사람을 도왔다. 우연한 계기로도, 의도된 상황에서라도 힘껏 도왔다. 그러나 이런 한쪽의 일방적인 고집은 안정성을 어긋나게 만들기 마련이다. 도움줌의 유무를 떠나 나 자신은 도움 받지 않자 구설이 찾아왔다.


다시 또 관계를 엎어버리고 다 잘라버리면 그만인데, 왜 나는 다시 또 하나하나 사소한 것에도 신경 쓰고 조심하고 있는 건가. 굳이 인간관계 형성신경을 곤두세우고 있다. 이는 불면증의 이유 중 하나임에 분명하다.


수십 년 동안 끝내 이루지 못한 인간관계의 성취 문제 때문인가, 블랙아웃이 온 뒤 곁에 아무도 없어 느끼는 생존 본능 때문이었는가, 아니면 나를 믿어주는 가족들에게 혹여나 상처를 줄까 봐 겁이 나서였는가. 

솔직히 나도 왜 이렇게까지 신경 쓰고 있는지 잘 모르겠다. 지금 당장에는 사람에게 정을 두지 않는 편이 마음이 좀 더 편안할 뿐이다.

다시 또 이곳에서의 사람들을 지워버리고 새로 시작한다고 같은 답을 찾을 수 있을까 싶다.

 

아마도 이것에 대한 답을 찾는 게 다음 모험의 주제인 것 같다. 이번에는 답을 꼭 찾지 못하더라도 사람 때문에 감정 소비하는 일이 없었으면 좋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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