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번아웃의 일상 한 꼭지

남아있는 기대여명을 생각하며

by 백년서원

차 한잔 할 시간 없이 하루가 쏜살같이 흘러간다. 일을 부정하지는 않지만 설마 이렇게 일만 하다가 죽는 건 아니겠지? 하는 의심이 들어온다. 차분하게 내 시간 가지는 것에도 게으름이 치고 들어면 눈을 감고 현재 나의 기분 상태를 차분하게 내려다본다. 살짝 번아웃이 온 것 같아서 루틴마저 내려놓고 나를 놓아준다.


상품진열대 제품처럼 인생에도 유통기한이 있음을 인지한다면 번아웃에 시간을 할애할 때가 아닌 것 같다. 듣기 좋은 말로 한 개인의 기대수명을 100년이라고 한다. '기대수명'을 '기대여명'이라 고쳐 생각하니 집 나간 멘탈에 정신이 번쩍 들어온다.




2064년에 100세가 되는 나의 '기대여명'은 39년이라는 계산이 나온다. 더 엄밀하게 따져보면, 나의 의지로 바깥출입이 자유로울 수 있는 기간은 길게 잡아도 20년 남짓이다. 남아있는 여명을 어떻게 쓰고 가나하고 생각하니 번아웃이 어냐!


예전엔 참 부지런했는데 지금 나는 대체로 느려졌다. 최근 들어 게으름이 친구 하자고 졸졸 따라붙고 있어 그에 맞춰 살살 달래는 중이다. 지나온 삶을 통틀어 현재 나의 세계는 그런대로 안정적이고 뚜렷해지고 있다. 어설프고 미숙하지만 글을 쓰고 노는(?)것이 나의 재미고 나의 세계다. 아직 알을 깨지 못했을 뿐 알속에서 진화하고 있는 '아프락사스'의 태아다. 단지, 나의 세계가 부화되는 시점을 알 수 없을 뿐, 때가 도래하여 나갈 세상이 있다는 것이 삶이 주는 희망이다. 그 순간을 위해 나의 가능성에 초점을 맞추고 다시 타이머를 조인다.




기대수명을 '대여명'으로 생각하고부터 시간이 더욱더 소중하게 다가온다. 지나간 것은 지나간 대로 아름다웠고 남아있는 것들은 더 아름다울 수 있도록 남은 여명을 애지중지해야겠다는 생각을 해본다. 지금보다 더 진한 삶을 우려내야겠다고 마음먹은 날 나의 번아웃은 백기투항하고 나의 편에 섰다.


어느 순간 예고도 없이 게으름이 들어왔지만 밀어내지 않고 그 게으른 상태에 못 이긴 척 편승해 보았다. 그것으로 얼마간의 세속적인 달콤함을 맛보았고 쉴 수도 있었다. 게으름을 독이라고 나쁘게만 생각하지 않고 산길을 가다 만난 반가운 오솔길로 생각해 본다. 그래, 오솔길은 원래 호젓한 낭만의 길이였지. 잘못 든 오솔길에서 피톤치드 듬뿍 받아 가던 길 마저 가자며 운동화끈을 화끈하게 조여 맨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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