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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갓지고 평화로운 일요일 아침의 반짇고리 고해성사

바느질하며 드는 마음

by 백년서원

오랜만의 고요한 아침입니다. 세탁기를 돌려놓고 창문도 열고, 현관문도 열며 지난밤사이 갇혔던 집안 공기를 맞바람으로 밀어내며 일요일을 시작합니다. 출근하지 않는 날 주부의 일상이란 단연 게으름이죠. 필수적으로 꼭 들여다봐야 할 sns를 잠시 둘러보고 나의 시간을 찾아 뒤돌아서 나옵니다.

딸과 남편이 출근(특수직)을 기에 혼자된 시간이 평화롭습니다. 손에 익어 이미 달인이 된 살림살이들을 한 바퀴 휙~ 어루만져 주고 오늘의 할 일을 또 찾습니다.






이불을 손봐야 해서 반짇고리를 꺼내 바느질을 시작했어요. 따뜻한 봄날 듣기 좋은 카페 음악을 찾아 틀어놓으니 마음이 이내 가라앉으며 조신한 현실 주부 모드로 역할전환입니다. 불현듯, "요즘도 반짇고리가 있는 집이 있을까?" 하는 생각이 들어옵니다. 지금은 거의 세탁소에서 모든 게 해결되는 것 같습니다. 세탁물을 맡기면 덜렁거리는 단추까지 모두 달아주고 있으니 반짇고리의 쓰임이 점점 퇴보하는 것 같아집니다. 처음 가졌던 반짇고리는 오래되고 헤져서 가성비 면에서도 좋고 반영구적인 것으로 바꿔서 사용 중입니다. 비록 친환경은 아니지만 라탄 분위기가 나는 미니 소품 바스켓이 딱 제격입니다. 실과 바늘 가위와 스페어 단추들과 고무줄까지 모두 들어가고도 공간이 남았네요. 예전에 혼수로 가지고 온 알록달록 새색시 반짇고리는 정이 많이 들어 정리하는데 까지 마음이 영 얹잖았는데 지금의 라탄 반짇고리는 저랑 길게 갈 것 같아 흡족합니다.




이불을 살 때 그대로 사용했더니 앞장 뒷장이 따로 놀며 펄러덩 거려서 얌전하게 고정이 되게 드문 드문 박음질을 했습니다. 덮을 때에도 접을 때에도 좀 더 수월해지네요. 진즉에 손볼걸 후회가 되었습니다. 일요일 아침 뭔가 보람 있는 일을 하고 나니 괜스레 입가에 미소가 그려집니다. 지금 느끼는 이 감정은 분명 '행복바이러스 '겠지요? 이처럼 행복은 스스로 짓는 게 맞는것 같습니다. 바느질 그 뭣이라고 고깟걸로 행복씩이나 느껴질까 의심 드시나요? 저도 이 시간 전에는' 행복은 마음먹기 나름'이라는 말을 흘려 들었습니다. 행복은 외부에서 오는 것이라고 생각했고 누군가에 의해서 내손에 쥐여 주는 것이라고 알고 살았습니다. 살다 보니 그 맘도 내려놓을 때가 오네요. 기다린다고 행복은 오지 않고, 가지고 싶어 떼쓴다고 가져지는 것도 아닌 것 같습니다. 복도 행복도 밥을 짓듯 정성 들여 지어야 한다는 것을 뒤늦게 깨닫는 아침입니다.






'지금 아는 것을 그때 알았더라면'이라는 책의 제목을 본 적이 있습니다. 읽어보진 못했지만 뒤늦게 알아차리고 그 댓가로 많이 잃은 것에 대한 이야기가 아닐까 하는 뜬금없는 해석을 해봅니다. 행복에 대한 오해와 곡해로 거물에서 다잡은 고기를 놓치듯 많은 것을 놓쳐보고야 알게 되었습니다. 지나간 시간을 되돌릴 순 없지만 지금부터는 덜 놓치고 살 수 있을 것 같은 마음이 듭니다.




바느질도 일종의 수행이 되나 봅니다. 실과 바늘에 집중하고 잔잔한 음악에 의해 무심히 내려놓은 마음이 본디 마음자리를 찾아가는 것을 보고 한순간에 철이 듭니다. 깨달음은 이렇게 나 스스로가 행했을 때 그 결과로 주어지는 선물 같은 것인가 봅니다. 하루하루를 이렇게만 살 수 있다면 더 이상 원망하는 마음은 들지 않을 것 같다는 것까지, 내친김에 모두 알아차리는 한갓 지게 여여한 일요일 아침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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