후각 에세이
"여보, 오늘 저녁은 밥 먹는 건 좀 부담스럽지? 멸치로 육수 끓여서 국수나 말아먹읍시다. 내가 맛있게 만들어 줄게 조금만 기다려요." 남편은 오늘이 처음이 아니라는 듯 익숙한 포스로 주방을 오간다.
주말 이틀은 삼시 세끼에 대해서 관대해진다. 쫓기는 것 없는 일요일 오전엔, 아점으로 한 끼를 먹고 이것저것 주전부리로 배를 채우다 보면 저녁밥은 먹기도 애매하고 건너뛰는 것도 살짝 아쉬운 마음이 들 때가 있다. 그럴 때는 멸치육수로 국물을 낸 칼칼한 '김치말이국수'가 남편의 단골 메뉴다. 엄지와 검지를 동그랗게 말아 '오케이' 사인을 보낸다. 가만히 앉혀 놓고 먹게 해 준다는데 마다할 이유는 없다. 국수 마니아인 남편이 국수를 좋아하지 않는 나를 위해 개발한 '김치말이 국수'는 아내를 위한 남편의 '외조 레시피'다.
음식점이 즐비한 '먹거리 골목'을 지나가다 나의 뇌파를 건드리는 어떤 냄새에 발걸음이 멎는다. 커다란 솥단지 안에서 멸치 육수가 솟구치며 끓어오르고 있다. 굳이 간판을 보지 않아도 국숫집임이 분명하다. 저걸 저렇게 오래 끓여댄다고 육수가 진해질까 비린내만 더할 텐데.... 나는 사 먹을 생각도 없으면서 쓸데없는 오지랖을 떨고 있고, 국숫집 주인은 멸치의 진이라는 진은 몽땅 뽑아낼 기세로 열을 가하고 있다. 멸치 냄새 짙어지는 국숫집을 뒤로하고 빠르게 골목을 빠져나간다. 멸치육수를 끓이고 있는 국숫집의 당연한 풍경 앞에서 기억하고 싶지 않은 오래 전의 기억이 되살아났기 때문이다.
아마도 열 살 이전이었던 것 같다. 나의 어린 시절은 가난했고 밥보다 국수를 더 자주 먹었다. 의, 식, 주 모든 게 부족해 창백한 얼굴엔 늘 마른버짐이 꽃처럼 피어있었다. 어려서 가난이 뭔지는 잘 몰랐지만 그때 먹었던 음식은 기억이 난다. 끼니마다 오늘도 국수! 내일도 국수! 국수를 안 먹는 날이 없었다. 엄마는 없는 살림에 한 끼 밥 먹을걸 세끼 국수로 늘려서 하루하루를 버텨냈던 것 같다. 늘 국수를 먹다 보니 어린 마음에도 하얀 쌀밥에 고소한 누룽지가 먹고 싶었지만 어림도 없는 일이었다. 언제까지 그렇게 국수만 먹일 수 없었던 엄마의 어떤 결심이 평소에 장을 보러 다니던 가까운 시장으로 가게 했다.
뭘 해야 밑천을 잃지 않고 재고도 안 남기는 장사가 있을까 하고 며칠을 지켜보았다. 채소 전은 그날 못 파는 것들은 모두 재고가 되어 다음날의 손해가 불 보듯 했고, 생선 전은 비린내와 하루 종일 씨름해도 상하는 것을 막을 수가 없었다. 그래서 찾아낸 '신의 한 수'는 '마른 멸치' 장사였다. 때마침 '국민 밑반찬'으로 '멸치볶음'이 대세일 때 '마른 멸치'는 엄마의 주 종목이 되어 아주 신나게 팔아 내었다. 건어물에 있어서는 '장사 천재'로 자리매김하였고 해가 갈 수록 우리 집 경제가 나아졌다. 엄마는 요즘 용어로 말하면 '마케팅'의 기본을 알았고, 사전조사로 철저하게 손익을 따져 평생의 업으로 선택했다. 그렇게 건어물 장사로 얻은 이윤으로 여섯 자매를 먹이고 키웠다. 그때부터 밥도 누룽지도 맘껏 먹었고 동생들은 나처럼 그렇게 국수를 먹을 일이 없었다.
이후는 과거를 잊고 살았다. 가난과 국수가 무슨 관계가 있으며, 멸치 육수 끓이는 가겟집 앞에서 가던 발길을 멈추고 회상에 젖을 이유가 뭐가 있는지 몰랐다. 예전엔 한 번도 생각해 보지 않은 질문지를 들고 답을 찾는다. 먹고 싶지 않은 것을 너무 당연하게 먹어야 했던 날들이 애꿎게도 '멸치 육수' 냄새와 함께 나쁜 기억으로 남아 있었다는 사실을 국숫집 앞을 지나며 알게 되었다. 그동안 국수는 나의 식생활에서 외면당했던 메뉴다. 집에서는 물론 외식에서도 제외되었다. "그 많은 음식 두고 국수를 왜 돈을 주고 사 먹지?" 국수 마니아들에게 나는 의문문으로 반응했다. 하지만 냉면, 밀면이 싫지 않은 걸 보면 밀가루 음식이라서가 아니라 분명 다른 이유가 있는 것 같다. 평소에는 '빵순이'로 온갖 종류의 빵을 찾아가며 먹는 것만 봐도 분명 밀가루는 아니기에 멸치에 비중을 싣는다.
결혼하고 첫아이를 가져 심한 입덧 중에 국물이라도 먹으려고 살고 있던 아파트 상가에 가서 '떡만둣국'을 주문했다. 어차피 안 넘어갈 것인 줄 알면서 한 숟가락을 떠는데 벌써 속이 요동을 친다. 아니나 다를까 멸치 냄새다. '떡만둣국' 육수에서 올라오는 비릿한 멸치 냄새는 코끝에서 이미 헛구역질을 초래하고 있었다. 물론 입덧을 하면 모든 음식이 오심의 대상인 건 정설이다. 문제는 유독 멸치 육수 냄새를 흡입할 때 더욱 심해지는 것이 의심의 포인트다. 입덧과 '떡만둣국'의 잘못된 만남으로 그 이후로는 한 번도 그 메뉴를 다시 먹어볼 일이 없었다. 하지만 엄마를 생각하면 멸치가 가장 먼저 떠오른다. 엄마는 배고픔을 해결해 준 멸치를 자식처럼 껴안고 평생을 살았다. 엄마의 삶을 다 안다고 할 수는 없지만 많은 시간을 엄마와 함께하고 나니 조금은 알 것 같다. 건어물 장사와 함께한 엄마의 일생은 우리 가족 모두에게 배고픔을 면하게 해 준 '가난 해방 일지'였다.
지금은 시절이 좋아져 먹거리가 풍족한 시대를 살고 있다. 이제는 가난했던 시절을 넘어와 잘 먹고 잘 살게 해 준 고마운 멸치의 곱지 않은 사연을 '새로 고침' 하고 넘어야겠다. 국수가 무슨 죄라고 그동안 그렇게 밀어낼 일이었나? 알고 보니 멸치 육수 냄새가 싫었다기보다는 국수를 밥 대신 주식으로 먹어야 했던 배고픈 가난이 싫었던 것이다. 세월이 아무리 많이 지났어도 배고팠던 어린 시절의 가난은 추억하기 불편한 진실이다.
끓이고 삶고 뚝딱거리더니 어느새 국수가 다 되었다며 남편의 부르는 소리가 들린다. 식탁에는 땡고추 다지고 김치 송송 썰어 얹은 국수 한 그릇이 간장 양념장과 함께 정갈하게 놓였다. 멸치 육수에 잘 섞은 면발을 쭉 들어 올려 한입 무니 국물에서 멸치 냄새가 먼저 올라온다. 국수 대접을 양손으로 들고 국물도 같이 들이마신다. 어라? 육수가 시원하네? 지난날 정체되어 있던 십 년 체증이 시원한 국물과 함께 쓸려 내려가면서 멸치 육수와 묵은 화해를 한다. 한갓진 휴일 늦은 오후에 남편의 '김치말이국수'로 인해 멸치에 대한 스토리를 다시 쓴다. 나이 들면서 국수 한 그릇도 별미가 될 수 있을 것 같은 예감이 들면서 남편의 주말 메뉴가 오늘따라 더욱 칼칼하고 시원하다. 과거의 결핍이 준 배고픔에 대한 기억이 그때 먹은 국수와 함께 후각저편에서 저항으로 남아 있었고, 결국은 멸치 육수 냄새는 아무 죄가 없었다는 '면죄부'를 발행하게 만들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