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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어딘의 우연한 연결 Sep 02. 2022

[잘사는청년] 노는 인간 하야티

-김지현을 만나다


‘불효자는 놉니다’

라는 제목의 글을 읽는 순간 빵 터지고 말았다. 이렇게 신박한 글제라니, 제목 안에 시대가 모두 함축되어 있잖아. 아 역시 하야티야, 라고 생각했으나 토론이 시작되면서 이 문장이 가수 씨 없는 수박 김대중의 노래 제목이라는 것을 알게 되었다. 아쉽긴 했지만 이 제목을 불러와 쓴 하야티의 글은 몹시 재미있었다.


프랜차이즈가 아닌 개인 카페 알바는 인기는 많지만 티오는 적은 알바 중 하나였다. 나도 알바사이트를 한참이나 뒤지고 몇 군데나 면접을 보고 나서야 힘들게 구한 알바였다. 알바 자리도 자리지만 나는 아주 까다로운 알바지망생이었다. 학교도 직장도 안 다니면서 나름 바쁜 백수여서 주 5일을 근무하거나 주말을 풀로 근무할 수는 없었다. 그래서 주 2일이나 주 3일 알바를 구해야 하는데 그것도 저녁시간을 피해서 찾아야 했다. 월, 화, 목요일 아침엔 운동을 가야 하고, 화요일엔 글쓰기 모임을 해야 하고, 수요일엔 퍼커션 팀 회의와 악기 연습, 목요일엔 현대무용 수업, 주말엔 퍼커션 공연과 청소년 카페 운영진 회의, 이웃집 친구들과 하는 글쓰기 모임, 농사짓는 모임까지 해치워야 하기 때문이다. 생활비를 벌기 위해 케이크와 브라우니를 구워서 파는 일이나 누드 크로키 모델을 주에 한 번씩 하고 인형탈 알바 같은 일일 알바도 종종 구해서 가까스로 통장을 연명한다. 그런 와중에 올 가을에 마감하기로 한 출판 프로젝트의 원고를 마감해야 하고 자기는 일 하니까 집안일 못 하겠다는 언니 대신 집안일도 하고 혹여라도 밥 못 먹고 다닐라 남동생 밥도 챙겨야 하고 월드투어 하고 있는 방탄소년단 소식도 챙겨봐야 하고……. 주 5일을 출근하는 친구가 농담처럼 하야티가 제일 바쁜 것 아냐? 라고 말하지만 사실 농담이 아닐 수도 있다. 하지만 내 삶에 있어서 가장 우선순위에 놓이는 것은 언제나 노는 것이었다. 정신 없는 스케줄 속에서도 노는 곳이라면 빠지지 않고 달려갔다. 세상의 모든 잔치와 파티와 페스티벌에 가는 것이 나의 소망이었다.  

-하야티, ‘불효자는 놉니다’ 중



아프리칸 댄스하는 하야티, 삼바를 가르치는 하야티


개벽학당에서 훌라를 가르치는 하야티, 사진 ©고유경



‘노는 인간 하야티.’

언젠가 하야티에 관한 글을 쓴다면 제목은 그것이 될 것이었다. 하야티는 잘 논다. 재미있는 건 노는 것에 대해 이전 세대가 보인 도덕적 강박이나 불안이 없어 보인다는 점이다. 하야티의 삶이 걱정스럽거나 불안해 보인다면 당신은 아마도, 노동이 삶에 목표와 질서를 부여하는 시대를 살았던 사람, 일 것이다. 하야티는 놀면서 삶을 조직하고 이상을 향해 가고 스스로를 연마하고 세상에 기여한다. 이 낯선 인간을 이해할 때 어쩌면 다가올 시대를 짐작하고 어림하고 추측할 수 있을 것이다.


안녕하세요. 알로나. 즐거운 연말 보내고 계신가요? 저는 하야티입니다. 밝고 생명력 넘친다는 뜻을 가진 이름이에요.

제가 멀리 계신 알로나에게 메일을 쓰는 이유는 알로나에게 하와이 문화와 훌라를 배우고 싶기 때문이에요. 저는 하와이에 가본 적도 알로나와 만난 적도 없습니다. 그런데 언젠가 친구들이 아주 기쁜 소식을 들은 것처럼 흥분된 얼굴로 저에게 와서 말하더라구요. 하자센터 성년식에서 본 알로나의 공연이 무척이나 아름다웠고 제가 알로나를 꼭 만나봤으면 좋겠다고요. 친구들이 굳이 저에게 와서 알로나 이야기를 한 것은 제가 춤을 좋아한다는 것을 알기 때문일 것입니다. 저는 언제나 춤을 추거든요. 종종 하자센터에서 청소년들에게 춤을 가르치기도 해요. 혼자 추는 것보다는 함께 추는 춤이 더 즐겁다는 것을 알고 있어요. 춤의 힘을 믿어요. 어떤 순간에도 춤을 추며 절망과 싸울 수 있을 거라 믿어요. 평생 춤을 출 것이고, 또 사람들을 춤추게 만드는 일을 할 것이라 믿어요.

그래서 다양한 춤을 배우고 있어요. 삼바, 아프리칸댄스, 현대무용, 한국무용 등등 인연이 닿는 대로 폭 넓게 배우고 있어요. 하지만 사실 깊이 배우고 있지는 못합니다. 그 부분이 항상 아쉬워요. 적어도 하나의 춤 정도는 깊이 있게 이해하고 통달하고 싶어요. 춤뿐만 아니라 그 춤의 배경과 맥락이 되는 문화까지도 제 몸에 오롯이 담고 싶어요. 그런 와중에 훌라를 아주 조금 접할 기회가 있었습니다. 제 몸과 영혼에 아주 잘 맞는 춤이라는 것을 느꼈어요. 제가 생각한 것 이상의 춤이었어요. 하늘, 땅, 바람 등 동작 하나하나에 의미가 있는 것이 꼭 하나의 이야기를 듣는 것 같았고 몸으로 부르는 노래 같았어요. 특히 바람 같고 물결 같은 손동작이 정말 섬세하고 여유로웠어요. 그때 훌라를 제대로 배워보고 싶다고 생각했습니다.

알로나가 오디세이 학교에서 하와이 워크숍을 진행했다는 이야기를 들었습니다. 한 명 한 명 눈을 맞추고 포옹하고 하와이 이름을 지어 주셨다구요. 그 이야길 듣고 제가 훌라를 배운다면 알로나 같은 어른에게 배우고 싶다고 생각했습니다. 훌라의 스피릿을, 더불어 하와이의 스피릿을 알로나에게 배우고 싶어요. 알로나의 곁에서 그 에너지와 사랑과 용기를 전수 받고 싶어요. 부디 알로나의 지혜를 나누어 받을 수 있기를 기대합니다.

저는 풍요로운 몸이 되고 싶어요. 제 몸에 춤을, 생명력을, 힘을 많이 담아놓았다가 사람들과 나누며 살고 싶어요. 그러기 위해서 지금은 그 씨앗을 많이 모아두어야 할 때라고 생각합니다. 그래서 부탁드리고 싶은 것은 알로나가 계신 곳에서 훌라 수업을 받을 수 있을지 여쭙고 싶어요. 혹시 스쿨이나 캠프를 운영하고 계신지, 그렇지 않다면 제가 어떤 식으로든 훌라를 배울 수 있는 방법이 있는지도요. 힘드시다면 부담 없이 거절하셔도 괜찮습니다. 인연이 닿는다면 언젠가 한국에서든 하와이에서든 만나고 싶습니다.

한국에서 배운 훌라는 “little brown gal” 이라는 곡에 맞추어 추는 춤입니다. 부끄럽지만 저의 훌라 비디오를 함께 보냅니다.

알로나의 2018년이 충만한 한 해였길 바라며, 또 2019년이 기다려지는 한 해이기를 바라며.


힐로에 계신 알로나에게
서울에서 하야티 드림


하야티가 하와이에 간다고 했을 때 주변 사람들이 짓던 표정이 생각난다. 말도 안 돼, 무슨 돈으로? 차곡차곡 월급 받는 나도 못 가는데 어떻게? 그녀와 친구들의 차이라면 하야티는 ‘돈을 모아’ 하와이에 가겠다는 생각을 하지 않았다는 점일 것이다. 하야티는 훌라를 배우고 싶었는데 마침 스승이 하와이에 계시니 그곳으로 날아간 것이다. 누군가의 삶이 부럽고 그렇게 살고 싶고 조금쯤 질투와 시기도 생긴다면 그 삶은 그 시대의 워너비(wannabe)일 것이다. 그에 비해 저렇게 살아도 되는 거야? 미래라는 건 일말의 고려도 하지 않으면서? 라는 삶이 있다면 그건 아마도 전위(avant-garde)의 삶일 것이다. 부러운가 혹은 두려운가, 워너비와 전위 사이의 거리는 생각보다 아득하다. 현재의 질서와 규범과 윤리 안에서 근사한 삶을 영위하는 것이 워너비라면 전위의 삶은 모오든 규칙과 배열과 배치를 사뿐히 흐트러뜨린다. 이십대 중반의 삶으로 접어들면서 생계를 위해 전 시간을 할애하지 않는 것, 노동과 비노동의 경계를 흐릿하게 만들고 말랑말랑하게 해버리는 것, 정규직의 삶을 원하지 않는 것, 자신이 원하고 바라는 일을 하며 하루의 대부분을 보내는 것. 기존의 세상을 그대로 유지하려는 이들에게 이러한 삶의 양식은 불안할 뿐 아니라 불온해 보인다. ‘다른 욕망’을 욕망하는 것, 그것은 사유의 스위치를 전환, 함을 의미한다. 적게 먹고 적게 일하고 생명과 생명 아닌 것 사이를 유영하며 몸 있는 존재도 사랑하지만 몸 없는 존재도 유유히 품는, 다가올 시간을 준비하고 대비하는 것이 아니라 지금 여기에서 미래를 살아버리는, 의도하든 의도치 않든, 라이프스타일 개벽.



하와이를 만난 하야티



반쯤 하얗게 센 머리를 풀어헤친 채 훌라를 추고, 바느질하고, 차를 마시는 근사한 할머니일 것이라고 생각했던 알로나는 사실 야구모자에 선글라스를 끼고 트럭을 모는 멋진 할머니였다. 영화 <매드맥스>에서 씨앗주머니를 소중히 품에 지니고 오토바이로 황량한 사막을 누비는 할머니들을 떠오르게 했다. 올해로 칠순이라는 알로나는 능숙하고 편안하게 트럭을 몰았다. 계기판 쪽에는 손녀처럼 보이는 여자아이의 사진이 붙어있었다. 트럭은 어디든지 갈 수 있지, 알로나가 거듭 말했다. 차를 무척 좋아한다고 했고 무척 그래보였다. 종종 카레이싱도 즐긴다고 했다. 화산활동 때문에 구불구불 울퉁불퉁한 빅아일랜드의 길을 속도도 줄이지 않고 쌩쌩 달릴 때마다 나는 롤러코스터를 타는 것처럼 아찔해져서 손잡이를 꼬옥 붙잡았다. 차에 탄 다음 알로나가 제일 먼저 하는 것은 음악을 트는 일이었다. 익숙한 우쿨렐레 반주의 하와이안 음악, 힘찬 기도문 같은 하와이안 전통 음악, 7080로큰롤 탑10 같은 음악이 번갈아 흘러나왔다. 알로나는 노래를 따라 부르거나 춤을 추면서 자주 열린 창문으로 손을 내밀며 “알로하, 브라더!” 라고 외쳤다. 코너를 돌 때마다, 주차를 할 때마다, 가게에 들어설 때마다 누군가와 반갑게 인사를 하는 것을 보아 이 동네 사람들과는 모두 알고 지내는 듯 했다.
알로나는 주말마다 생일파티에 갔다. 여섯 살 난 증손녀 말루아이의 생일이기도 했고 두 살 배기 쌍둥이의 생일, 손녀의 생일, 손자의 생일, 친구 아들의 생일, 친구의 생일이기도 했다. 파티에서 피자를 먹고 소시지를 먹고 컵케이크를 먹고 초코 케이크에 바닐라 아이스크림을 얹어 먹고 수영을 하고. 그들의 주말은 늘 그런 식인 듯 했다. 알로나는 파티의 모든 사람들과 껴안으며 반갑게 인사했다. 손주, 삼촌, 이모, 증손주, 딸 등등 이라고 나에게 소개했다. 알로나는 빅 패밀리의 한가운데 있었다. 손주만 여덟 명에 증손주는 열여섯 명이랬다. 곧 여섯 살 난 증손녀 말루아이가 엄마, 아빠라고 부르는 두 사람이 말루아이의 생모, 생부는 아니라는 것을 알게 되었다. 말루아이의 생모는 따로 있지만 같이 사는 이모가 말루아이를 돌보았고 말루아이는 둘 다를 마미라고 불렀다. 말루아이의 아빠가 누구인지는 아무도 모른다. 말루아이는 삼촌을 아빠라고 불렀다. 삼촌과 이모의 범위는 굉장히 넓고 모호했다. 알로나가 모든 사람들을 이모와 삼촌으로 소개했기 때문이다. 알로나가 마이 썬, 마이 도터라고 부르는 이들이 모두 알로나가 낳은 자식들은 아니라는 것도 알게 되었다. 그러니까 이 빅 패밀리는 낯선 이도 가족처럼 받아들인다는 알로하 스피릿으로 만들어진 빅 패밀리인 것이었다. 정말 아빠의 남자형제인지는 모르겠지만 화산활동으로 집을 잃은 삼촌에게 기꺼이 자기 집을 빌려주고, 정말 자식의 자식인지는 모르겠지만 손주의 집 소파에서 살며, 정말 엄마 아빠인지는 모르겠지만 그냥 사정과 여건이 되는 사람이 아이를 키우는 빅 패밀리가 나는 매우 새롭고 혼란스러웠다.
알로나의 일과는 차로 시작해서 차로 끝났다. 새벽 같이 일어나 세탁물들을 세탁방으로 실어 나른 다음 여섯 살 난 증손녀 말루아이를 학교에 데려다 준다. 아침으로 차 안에서 커피와 빵을 먹으며 알로나가 하와이안 문화를 가르치는 초등학교에 간다. 수업이 끝나면 다시 증손녀 말루아이와 또 다른 증손자 에꼴루이와 히아포를 데리러 간다. 그리고는 꼭 세븐일레븐에 들른다. 알로나는 1리터짜리 탄산음료를 고르고 증손주들은 스팸 무스비와 밀크쉐이크를 고른다. 그들을 뒷좌석에 꽉 채워 앉히고 한 시간을 달려 말루아이를 피아노 레슨에 데려다 준 뒤 다시 한 시간을 달려 집으로 돌아온다. 소파에 엉덩이 붙일 새도 없이 차를 타고 저녁을 먹으러 나간다. 알로나가 트럭으로 여기저기를 누비는 동안 나는 그녀 가방에 달린 열쇠고리처럼 대롱대롱 따라다니며 그래서 훌라는 언제 배우나, 생각했다. 그 모든 일과가 끝난 후 아주 잠시 30분 짬이 나면 겨우 훌라를 배웠다.
달이 밝게 뜬 밤이었다. 하얀 달빛이 밤바다 위로 다리를 만들고 있었다. 알로나와 나는 해변에서 가장 가까운 곳에 섰다.

“훌라에서 제일 중요한 것은 자연과 교감하는 일이야.”

훌라는 몸의 아름다움이 아니라 자연의 아름다움을 표현하기 위해 추는 춤이었다. 알로나가 손을 아래로 뻗어 부드럽게 물결치듯 움직였다.

“이 동작은 바다를 뜻해. 손으로 바다를 만들 때에는 네가 보고 느꼈던 바다들을 생각해 봐. 푸르기도 하고 붉기도 하고 보랏빛이기도 하고 잔잔하기도 하고 차갑기도 하고 깊기도 하지. 바다 냄새와 바다 소리, 바다의 감촉. 그것들을 불러오는 거야. 네가 서울에 가서도 이 동작을 하려면 너의 머릿속에 지금 이곳의 바다를 떠올려야해.”

알로나의 손짓이 믿을 수 없을 만큼 자연스럽게 출렁거렸다. 그것은 테크닉이 아니라 왠지 스피릿이라 불러야 마땅할 것 같았다. 내가 아무리 춤을 잘 춘다고 해도 감히 따라할 수 없는 종류의 것이었다. 알로나와 나의 몸짓은 와이키키 비치에서 신덕 해수욕장만큼이나 멀리 떨어져 있었다. 알로나의 바다는 정말로 눈부신 하와이의 바다 같았고 나의 바다는 캐리비안베이의 파도풀 같았다. 알로나와 내 안에 쌓인 바다의 총량은 그렇게 달랐다. 모든 사람들의 훌라가 다 다르다면 그건 그 안에 있는 바다가 다 다르기 때문일 거라는 생각이 들었다. 평생 높은 산만 바라보고 살았던 네팔의 할머니가 만드는 산과 바다, 보이는 게 오로지 지평선뿐인 초원에서 자란 몽골의 아이가 만드는 땅과 바다 동작이 보고 싶어졌다.

양팔을 높게 들고 하늘을 바라보았다. 환영한다는 뜻의 동작이었다. 별과 달과 하얀 구름과 까만 하늘이 보였다. 파도 소리가 들리고 몸을 쓰다듬는 바람도 느껴졌다. 들었던 손을 천천히 가져오면서 몸을 쓸어내렸다. 내 몸, 내가 여기 존재하고 있다는 뜻의 동작이었다. 하늘, 바람, 파도소리 같은 것들이 이제 내 몸 안에도 존재했다. 훌라를 출 때마다 이 밤이 떠오를 것 같았다.

알로나는 나를 차에 태우고 쿠쿠이나무에 데려갔다. 쿠쿠이라는 나무에 대한 노래를 알려주기 위해서였다. 이파리는 손바닥처럼 생겼고, 줄기는 검고, 열매는 딱딱하고, 기름으로 만들어 쓴단다. 알로나는 이런 것들도 훌라 수업의 일부라고 말했다. 이렇게 직접 보고 만져보아야 훌라를 출 수 있다고. 그렇지, 내가 훌라를 배우기 위해 이 먼 곳까지 날아온 거였지. 훌라 레슨은 이렇게 해야 하는 거구나. 과연 내가 한국에 돌아가서 훌라를 가르칠 수 있을까 의심하며 알로나가 가르쳐준 대로 훌라를 열심히 추고 있으면 알로나가 말했다.

너는 댄서로 태어났구나.


-하야티, ‘훌라레슨’ 중



알로나와 하야티


알로나를 만난 건 바리데기를 접견한 일이었을 것이다. 이미 생명수를 발견하여 그 물로 사람을 씻기고 밥도 짓고 빨래도 하며 세상을 살리는 이, 내 부엌의 설거지물이 바로 생명수라는 것을 깨달은 이, 에게 하야티는 세례를 받고 돌아왔다. 아이들 돌보는 것이 춤이고 케이크를 만드는 것이 춤이고 바구니를 짜는 것이 춤이고 우크렐레를 가르치는 것이 춤이고 놀러온 친구들을 위해 기꺼이 시간을 내어주는 것이 춤이라는 것을 하야티는 하와이에서 배우고 왔을 것이다.


하야티  어떤 춤의 정수까지 가서 최고점을 찍는다는 생각을 안 해요. 옛날에는 그래야 하는 건가보다 했는데 요즘은 굳이 그럴 필요가 있을까 싶어요. 저는 춤을 마스터하고 싶은 게 아니고 이걸 도구로 삼아서 사람들하고 춤추는 게 더 중요해요. 같이 춤추는 것, 그걸 하고 싶어서 춤을 배운다는 걸 알게 됐어요. 그래서 저는 누구랑 추느냐가 정말 중요해요. 몽골에서 로드스꼴라 아이들과도 그래서 아주 잘 놀았어요. 우리 사이엔 신뢰가 있었으니까요.


몽골의 게르는 세상에서 가장 좋은 집이었다. 집이라기보다는 아아아주 큰 옷 같았다. 안과 밖의 경계가 분명하면서도 묘하게 연결된 온온한 주거지였다. 달과 별과 바람과 풀고 흙과 말과 개와 매순간 함께 있는 느낌이었다. 황금궁궐을 두고도 여름이면 게르로 돌아와 지냈다는 몽골의 칸들이 이해되기도 했다. 개별적이면서도 우주의 품 안에 있는 으늑한 마음이 종종 생겨나는, 초원의 별 같은 공간이었다. 어쨌거나 우리, 여행학교 로드스꼴라는 그 해 여름 몽골을 여행 중이었고 마지막 며칠을 차고 맑은 호수가 펼쳐진 흡수골에서 지냈다. 어딘 어딘 나와보세요. 동료교사 고운이 불렀다. 마악 잠자리에 들려다 무슨 일이 있나, 게르의 문을 열고 나갔다. 고운이 한 곳을 가리켰다. 오, 거기 아이들이, 열네 살에서 스물네 살까지 남녀청춘들이 한데 모여 춤을 추고 있었다. 달빛 찬란한 몽골의 대지 위에서, 멀리서 봐도 땀을 뻘뻘 흘리며 열정적으로 몸을 흔들고 있었다. 그 한가운데 춤판을 조율하고 리드하고 참여하며 마음껏 즐기는 하야티가 있었다. 놀라운 건 그 모든 일이 어떠한 소리도 없이 진행되는 것이었다. 금방이라도 폭발할 것 같은 격정과 꽉 다문 침묵이 한데 어울려 빚어내는 광경은 놀랍도록 웃기면서 기묘했다. 스무 명 넘는 청소년들의 얼굴은 웃음을 참느라 팽창할 대로 팽창해 있었다. 사연은 이랬다. 우리가 묵고 있는 게르촌의 이웃 게르촌에서 결혼식 피로연이 있었다. 그곳에서 틀어놓은 음악이 이곳까지 들려왔다. 춤추고 싶은 음악이라고 누군가 말했고 그럼 추자고 하야티가 말했고 다른 이들의 수면을 방해하면 안 되니 멀리서 들려오는 음악에 맞추어 춤을 추되 소리를 내지 않기로 약속을 하고 춤을 추기 시작했다. 화장실에 다녀오다 별구경을 하러 나왔다 우연히 지나가다 한 사람 두 사람 합류하고 마침내 모든 게르 문이 열리면서 저토록 장렬한 춤판이 벌어졌다는 것이었다. 음악을 잘 듣기 위해, 다른 여행자들에게 피해를 주지 않기 위해 입을 꽉 다물고 춤을 추느라 아이들의 에너지는 응축되고 응결되어 심장에서 배꼽으로 다시 무릎 아래로 다시 발바닥으로 내려갔다. 생을 살아갈 에너지가 양껏 비축된 밤이었다. 그 여행 내내 우리는 춤을 추었다. 하라호름의 강가에서 흠씬 바람 부는 언덕에서 밤하늘의 별을 보다 고장 난 버스가 고쳐지기를 기다리며 초원의 이슬을 밟으며 뛰고 구르고 점프하고 달렸다. 하야티가 있는 곳이라면 어디서든 춤을 출 수 있었다. 한국의 남자 청소년들이 ‘자연스럽게’ 춤을 추는 것은 드물고 희귀한 일이다. 칭찬은 고래를 춤추게 한다고 했던가. 하야티는 중2도 춤추게 만들었다. 여행셀럽, 그 여행 이후 나는 하야티를 그렇게 부른다. 하야티와 함께 하는 여행은 비비드(vivid)하다. 혹 당신, 춤추는 여행을 하고 싶다면 여기 하야티와 함께.


처음 그녀에게 혹 했던 것은 움직임이었다. 차가운 호숫가에서 촉촉해진 잔디 위에서 ‘한뜻 한마음으로’라는 춤을 배웠다. 내가 알고 있는 춤은 고작 방송댄스나 아이돌 춤 정도였는데 하야티의 춤은 다양하고 풍성했다. 시원하게 두 팔을 벌리며 뛰어다녔다. 춤을 추고 몸을 움직이는 것에 대해 늘 주변의 시선을 의식했는데 하야티와 춤을 출 때면 그런 것들이 부서지곤 했다. 몽골의 드넓은 초원에서 자연이 주는 거대한 에너지를 마주했을 때 나는 두려움 없이 자연스럽게 그녀와 함께 춤을 추었다. 하야티의 주위로 흐르는 에너지가 나를 춤추게 했고 나에게도 그녀에게 있는 에너지가 있다는 것을 알게 되었다. 하야티에게는 몸과 마음을 움직이는 거대한 에너지가 있다.

-씨앗, 하야티와 함께 핀란드와 몽골을 여행한 청소년


하야티, 춤이 필요해. 서울역을 국제역으로, 라는 캠페인을 앞두고 하야티에게 부탁한 건 안무였다. 1920년대 서울역은 국제역이었다. 이 말인즉슨 서울역 플랫폼 13번홈에 가서 ‘파리행’ 기차표를 살 수 있었다는 이야기다. 서울역을 출발한 기차는 원산을 지나 두만강을 건너 블라디보스토크를 지나면서는 시베리아 횡단열차와 연결되었다. 이후 노보시비리스크, 모스크바를 지나 바르샤바를 지나 베를린에 닿았다. 나혜석도 손기정도 최승희도 이 열차를 타고 유럽으로 향했고 주세죽도 여운형도 허정숙도 박헌영도 이동휘도 이 기차를 타고 유라시아 대륙을 넘나들며 세계의 피억압민족들과 연대하고 어깨 겯었다. 만주와 유라시아는 세계와 이어지는 통로이자 희망의 길이었다. 유라시아 대륙의 드넓은 평원과 숲, 초원은 그러나 분단과 함께 우리 삶에서 삭제되었다. 유라시아가 기차로 연결된다면 한반도는 육상실크로드의 기착지이자 해상실크로드의 출발지로 그 위상이 달라질 것이다. 북방에 대한 상상력을 복원할 때 우리 삶의 무대는 확장되고 개인과 국가의 미래비전 또한 광활해질 것이다. 그러니 하야티 춤이 필요해, 로드스꼴라 교사들이 작사작곡한 ‘서울역을 국제역으로’라는 노래의 데모버전을 넘기며 말했다. 2주 만에 춤이 만들어졌다. 하야티는 청년과 청소년들에게 자신이 만든 춤을 가르쳤다. 하야티로부터 춤을 전수받은 삼십 여명의 청년 청소년들은 2018년 1년 내내 춤을 추었다. 목포역에서 밀양역에서 천안역에서 철원역에서 서울역에서 다시 블라디보스토크에서 하바로프스크, 이르크추크, 바이칼을 거쳐 모스크바 지나 베를린에 닿을 때까지 유라시아를 춤으로 횡단했다. 춤은 몸에 스몄다. 피부가 되고 섬모가 되고 뉴런이 되었다. 아무르강이 기찻길이 시베리아의 찬 공기가 김알렉산드라가 만국의 노동자여 단결하라가 데카브리스트가 혈관을 흐르고 미끄러지고 떠돌았다. 하야티의 춤과 함께.


‘서울역을 국제역으로’ 프로젝트를 하면서 ‘평화’라는 단어가 얼마나 흥겹고 유쾌한 말인지를 알게 되었다. 우리는 한반도의 평화체제를 강의하거나 읊지 않았다. 춤추고 노래하고 북을 쳤다. 수많은 러시아 사람들과 독일 사람들이 우리의 퍼포먼스를 봤다. 우리가 뭐라고 외치는지 알아듣지는 못하면서도 웃고 박수를 치고 영상을 찍었다. 노래와 춤이 가진 위력이라고 생각했다.

-파도, 하야티가 만든 춤을 추면서 유라시아 횡단여행을 한 청소년


라이프스타일의 개벽은 이념이나 주장이 아니라 몸으로 사는 일이다. 머리가 아니라 근육이 세포가 호르몬이 신경망이 하는 일이므로 유전자를 바꾸어 버린다. 의도와 목적을 갖고 애써 행하는 것이 아니라 직관과 호흡으로 살아지는 대로 살기에 가볍고 유연하게 생을 밀고나간다. 낯선 세상을 마중하러 기꺼이 중력으로부터 벗어나는 이들, 우주를 들이마시고 내뱉는다.    


하야티  사실 사회는 혼란의 도가니탕이지요. 그런 와중에도 그것들이 저의 일상을 힘들게 하거나 밤잠을 못 이루게 하지는 않아요. 사회적인 이슈에 마음이 연동되는 건 친구들 때문이에요. 간디학교에서부터 그랬어요. 중심의 자리에 있지는 않지만 늘 응원의 자리에 있었어요. 위원회를 꾸리지는 않지만 위원회 친구들이 해달라는 일을 하지요.


하야티의 손은 늘 준비되어 있다. 술을 빚고 케이크를 만들고 팥죽을 쑤고 양갱을 만든다. 우리가 무언가 근사한 파티를 하고 싶어질 때 의미 있는 행사를 할 때 그녀는 뚝딱 갈비찜을 해내고 식혜를 만들고 샹그리아를 제조한다. 중요한 회의를 하는 이들을 위해 고소한 배추전을 부치고 보글보글 된장국을 끓인다. 그녀의 손은 요리뿐 아니라 글쓰기를 위해서도 예비되어 있다. 하고 싶은 이야기도 쓰지만 해야 하는 이야기를 위해서도 기꺼이 밤을 새워 글을 쓴다. 그녀의 언어는 익살스러우면서도 품위가 있다. 직관적이면서도 핵심과 바로 닿아있다. 기획안을 쓸 때 뉴스레터를 제작할 때 잡지를 만들 때 심각하고 어려운 글 속에서 그녀의 글은 활짝 명랑하고 발랄하고 다정하고 따뜻하다. 닥치면 쓰는 손은 오오랜 연마를 필요로 한다. 돈도 명예도 사랑도 안 될 글쓰기 따위를 장기간 수련할 수 있는 마음은 ‘그냥’ 에 있다. 하야티는 대부분의 일을 ‘그냥’ 한다. ‘그냥’은 묻지도 따지지도 않는 마음이다. 의도와 목적 없는, 바라는 바 없는 마음자리다. 바람은 그냥 불고 파도도 그냥 치고 비도 그냥 내린다. 엄마도 나를 그냥 사랑했다. 그냥 하는 마음은 가장 자연스럽고 가장 우주적이다. 하야티는 오랜 시간 공들여 그냥 마음과 몸을 갈고 닦는다. 파쿠르도 요가도 축구도 그냥 한다. 반복하여 장애물을 넘는 훈련을 수없이 되풀이할 때 문득 마음의 장벽도 훌쩍 뛰어넘을 수 있음을 저절로 알아질 때까지.


노란색 축구 스타킹을 무릎까지 끌어올려 신는다. 파란 추리닝 바지에 노란색 유니폼 상의, 주황색 축구화를 신고 빨간색 가방을 든다. 스포츠 브라는커녕 그냥 브래지어도 갑갑해 하고 월화수목금토일 구제 원피스만 입고 다니는 내가 평소엔 절대 입지 않을 수수하고도 화려한 착장으로 돌아다니면 사람들이 묻는다.
등산이라도 다녀온 차림이네. 무슨 운동해요?
아 저 축구하고 오느라…….
그렇게 말하면 다섯 번 중에 한번 쯤 이런 반응이 돌아온다.
우와~ 멋있다!
해맑은 아이처럼 말하는 그들에게 차마 말할 수 없다. 실제로 운동장에서 내가 축구하는 모습 보면 그런 말이 절대 나올 수 없다는 것을.

운동하는 여자라고 해서 높이 올려 묶은 포니테일, 당연히 쌩얼이겠지만 화장한 듯 해사한 얼굴빛, 운동에 보람을 느끼는 듯한 미소, 딱 붙는 브라탑과 레깅스와 예쁜 러닝화, 납작한 배와 슬림한 팔다리, 그 와중에 빵빵하고 탄력 있는 가슴, 깃털같이 가볍게 달리는 젊은 여성, 을 떠올렸다면 서대문문화체육회관 축구장에 월화목 오전 열시에 한번만 와봤으면 한다. 젊은 친구들의 취향이 전혀 반영되지 않은 디자인의 유니폼, 땀에 젖어 파김치처럼 달라붙은 머리카락, 그 머리카락이 거슬려서 찬 파워 에어로빅 느낌의 헤어밴드, 햇볕에 그을려 까만데 힘들어서 붉게 상기된 얼굴, 속눈썹과 눈썹과 인중 털에 맺혀 뚝뚝 떨어지는 땀, 축축하게 젖은 유니폼과 양말에서 땀 냄새가 진동하는 그런 꼴은 어느 누구에게도 보여주고 싶지 않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축구하는 나를 보러 운동장에 온다면 야생가젤처럼 튼튼하고 아름답게 달리며 공을 자유자재로 다루는 장면, 보다는 다리를 최대한으로 뻗어보지만 아슬아슬하게 공을 놓치고, 안타까워 탄식하고, 피지컬로는 축구 가르치게 생겨가지고 킥에 힘이 하나도 없다고 혼나고, 죄송합니다! 사과하고, 심장이 목구멍으로 튀어나올 것처럼 힘들지만 이 악물고 달리고, 허리에 손을 짚고 숨을 고르고, 부딪히고, 넘어지고, 공에 맞아 입술이 터지는 장면을 감상할 수 있을 것이다.

이토록 긴 설명을 함축해서 “제가 축구하는 거 못 봐서 그래요. 저 쪼다에요”라는 말로 “우와 멋있다!”라는 오해를 해명하고 나면 이번에는 “조기축구 동호회 같은 거예요?”라는 질문이 돌아온다. 그 말을 들으면 나는 또 한 번 격렬하게 해명하고 싶어져버린다. 아침에 하는 것은 맞지만 ‘조기축구 동호회’처럼 나이브한 이름으로 우리 서대문우먼에프씨가 불리는 것은 참을 수가 없기 때문이다. 서대문우먼에프씨로 말할 것 같으면 서울시 각 지역구 여성축구팀들이 모두 출전한 <2018 서울시 왕중왕전 축구대회> 우승에 빛나는 팀이라고 할 수 있겠다. 물론 나는 경기에 출전은커녕 응원하러 가본 적도 없거니와 이렇게 리그에서 성적 잘 내는 팀인 거 알았으면 들어오지 않았을 지도 모른다.

내 장래희망은 단 한 번도 축구선수였던 적이 없으며 지금도 마찬가지고 앞으로도 그럴 것이다. 내가 축구를 하는 것은 그냥 축구가 하고 싶어서이지 절대로 축구왕이 되고 싶다든지 그런 이유가 아니다. 그러나 단지 재미와 건강을 위해 축구를 한다기엔 팀의 훈련의 강도가 조금 빡세다. 일주일에 세 번, 두 시간씩 운동장에 모여서 매번 같지만 조금씩 다른 훈련을 한다. 처음엔 가볍게 몸을 풀 겸 기본기 훈련을 한다. 50센티미터 간격으로 놓인 마크를 피해서 뛰기, 한 발로 뛰기, 옆으로 뛰기, 뒤로 뛰기, 빠르게 뛰기, 다리 높이 올려 차기, 옆으로 높이 올려 차기, 뒤로 높이 올려 차기 등등이 끝나기 무섭게 옆으로 옮겨가 두 명씩 짝을 지어 공으로 하는 기본기 훈련을 한다. 마크를 돌아와서 스텝을 밟은 다음에 던져주는 공을 인사이드로 차기, 발등으로 차기, 무릎으로 받은 다음에 인사이드로 차기, 가슴으로 받은 다음에 발등으로 차기, 머리로 받기를 각각 열 번씩 하고 나면 이제 본격적으로 ‘오늘의 훈련’에 들어간다. ‘오늘의 훈련’은 거의 매번 다른데 거의 매번 새롭고 매번 어렵다. 패스하기, 잡고 패스하기, 안 잡고 바로 패스하기, 패스하고 콘 돌아오기, 패스하고 자리 바꾸기, 패스하고 왼쪽 콘으로 달려 나가서 주는 공 오른발로 잡고 가운데 사람에게 준 다음 반대편으로 달려가기, 원 안에서 다른 팀과 안 부딪히고 멈추지 말고 달리면서 패스하기, 뒤로 달리면서 패스하기, 마크 피해서 드리블하기, 발 안쪽으로 드리블하기, 발 바깥쪽으로 드리블하기, 안안밖으로 드리블하기, 안밖밖으로 드리블하기, 슈팅하기, 달려가서 슈팅하기, 드리블해서 공 세워놓은 다음 콘 돌아와서 슈팅하기, 패스하고 되돌아오는 공 슈팅하기, 콘 돌아 달려 나가서 띄워주는 공 슈팅하기. 슈팅해서 골대 중앙 말고 사이드로 골 넣기, 그 모든 것 발 바꿔 왼발로 하기…. 감독님은 어쩜 그리 매번 새로운 훈련을 만드실까 신기하면서 그 많은 훈련을 거치면서도 나아질 기미가 안 보이는 내 실력도 신기했다. 공 중앙에 넓게 발을 맞추고 무게중심을 낮추고 몸이 비뚤어지지 않고 디딤발을 정확한 방향으로 짚으려 신경 쓰는 것만으로도 이미 몸과 머리가 과부하인데 이 쪽으로 가야지! 저 발로 잡아야지! 그 발로 차야지! 이것저것 주문하는 거 소화하느라 정신이 없다. 감독님이 축구는 힘 좋고 다리 빠르다고 될 게 아니고 머리가 좋아야 한다고 말할 때마다 미적분을 제대로 못 해서 혼나는 초등학생이 된 기분이었다.

 -하야티, ‘그곳에 가면 그 여자들이 있다 3’ 중



축구하는 하야티


하야티의 삶에 주목하는 것은 ‘라이프스타일 개벽’의 힌트가 내재해 있기 때문이다. 바야흐로 물질이 개벽되는 시대다. 사물인터넷, 인공지능은 이미 우리의 일상을 변화시키고 있다. 인간의 모든 경험과 기억은 초고도로 집적되어 빅데이터를 만들어내고 그것들은 촘촘히 촘촘히 연결되어 새로운 욕망의 체계를 조직한다. 그 과정에서 AI는 어쩌면 우리의 예측을 사뿐히 벗어나는 당황스러운 세계를 구축해낼 지도 모를 일이다. 바라지 않았지만 와버린 세계는 조금 난감하고 얼핏얼핏 두려울 것이다. 인류의 미래가 어디로 갈 것인지 알 수 없다면 혹은 관여할 수 없다면 어디로 가고 싶은지는 생각해볼 수 있지 않을까. 일자리의 문제에 대해서 그것은 조금 구체적일 수 있다. AI 시스템은 효율적으로 시장을 재편하고 삶의 질서를 전과는 다르게 조직하고 있다. 인간보다 뛰어난 학습능력과 굳이 인간을 중심에 놓지 않아도 되는 창의성은 세상의 바깥으로 인류를 밀어내는데 주저함이 없다. 물질이 개벽되는 시대에 정신을 개벽할 이유가 여기에 있다. 기존의 노동개념은 불안과 공포를 야기할 뿐이다. 경쟁에서 승리하는 것도 더 이상 답이 될 수 없다. 노동과 관련한 새로운 도덕과 윤리가 만들어질 때 비로소 인간다움 혹은 인간존재의 사랑스러움이 발현될 수 있을 것이다. 인간노동의 영역이었던 많은 부분들을 기꺼이 기계에 넘기고 그동안 하고 싶었으나 하지 못했던 일들, 돌보고 다듬고 수양하는 삶, 을 살 수 있는 기회가 드디어 온 것이라면 흔쾌히 그 시대를 맞이할 일이다. 일과 놀이가 파티와 일상이 여행과 공부가 낡은 것과 새로운 것이 시작과 끝이 생명과 생명 너머가, 그 딱딱한 경계를 허물 때 그 자리에는 어떤 새로운 삶의 양식이 생겨날까. 머리를 맞대고 그 낯선 세계를 상상하고 설계하고 창조해볼 일이다. 무릇 개벽의 시대에 하야티의 삶을 주의 깊게 살피는 이유가 여기에 있다. 스스로 생의 리듬을 만들어내고 누구와도 무엇과도 협동할 줄 알며 용맹하고 자유로운 감수성을 지닌 인간이라면 AI의 시대에도 안녕 친구, 손을 내밀며 세상의 첫 아침을 맞이할 수 있지 않을까. 그러고 보면 그녀는 누구든 무엇이든 친구라고 불렀다. 안녕 참새친구, 안녕 고양이친구, 안녕 노랑꽃친구, 안녕 냉장고친구, 안녕 브로콜리 친구……. 그 무엇도 확신할 수 없는 시대, 다만 그녀의 글이 대전환의 시대를 살아낸 인류의 보고서가 될 것이며 그녀의 나날이 새로운 시대를 걸어간 첫 발자국이 될 것임을 어렴풋 예감해 볼 뿐.


누군가의 가방 속을 살펴보면 그 사람의 생활을 조금 알 수 있다고 했다. 그럴 일은 없겠지만, 만약 내 가방을 누군가 훔쳐간다면 가방도둑은 가방을 열어보고서 이렇게 생각할 것이다. ‘얘는 대체 뭐하는 애야?’ 낡고 빵빵한 나이키 백팩 안엔 주인의 일과를 짐작할 수 없는 물건들로 가득할 테니까. 냄새 나는 핫핑크 축구 스타킹, 형광주황색 싸구려 축구화, 투엑스 라지 아동용 스포츠 언더웨어. 축축한 스포츠브라, 전혀 매치되지 않는 빨간색 유니폼과 파란색 저지 후리스와 바람막이, 기모 츄리닝바지, 장갑, 비니, 넥워머, 헤어밴드, 정강이보호대, 썬크림……. 뭐야, 축구하는 애인가? 싶을 때 아레나 수영복 주머니가 등장한다. 아쿠아로빅하는 할머니들이나 입을 법한 촌스런 꽃무늬 수영복, 수모, 수경, 젖은 수건, 로션, 수분 크림, 아이크림, 세럼, 헤어에센스, 빗, 바디워시, 샴푸, 헤어팩, 클렌징 폼, 샤워타올, 칫솔, 치약……. 아이고, 많기도 하다. 축구도 하고 수영도 하나보네, 하고 수영복 주머니를 들어내면 아니 이건 또 뭐야, 제일국악사 주머니가 등장한다. 그 안에는 눈부시게 흰 한국무용 치마와 솜버선과 연꽃무늬 손수건과 빨간 누비지갑이 들었다. 슬슬 감이 잡히질 않는데 그 와중에 무거운 노트북과 두꺼운 책, 이 반찬통은 뭐람. 물병은 왜 두개나, 사과랑 감을 이렇게나 많이? 아무튼 정체를 알 수 없는 이상한 사람이다, 싶겠지.

옆 레일의 할머니들은 어마무시했다. 내가 겨우 자유형 두 바퀴도 못 돌고 헥헥대고 있을 때 할머니들은 오리발을 끼고 자유형 배영 접영으로 레일을 수 십 바퀴씩 돌았다. 나는 옆 레일에서 킥판 잡고 발차기 하면서 칙칙폭폭 질주하는 할머니 접영기차를 넋 놓고 바라봤다. 강습시간이 끝나고도 할머니들은 뭔가 모자랐는지 수영장을 M자로 횡단하고서야 물 밖으로 나섰다. 선생님이 들어오기 전 잠시 몸을 푸는 시간에 옆 레일 할머니께 정말 궁금했던 것을 여쭤보았다.

“정말 대단하세요. 수영 얼마나 하신 거예요?”
“30년 넘었지. 예전에 전두환이가 다니던 수영장도 다녔으니까. 몇 년 전까지만 해도 한강 횡단하고 그랬는데 요새는 늙어서~”

실례지만 여쭤본 연세는 올해로 여든 둘이랬다. 30년 수영 했다는 할머니들 보면서 왜 3개월 했는데 접영 안 되는지 생각했던 내가 부끄러워졌다. 진정한 물개들 앞에서 나는 인어 공주는커녕 해삼이 된 기분이었다.  

-하야티, ‘수영장의 언니들’ 중



몸의 시대가 가고

무수무수 망의 시대가 오더라도

우주의 궁극적 실재는

춤이리니

율동이리니

파동이리니

하야티

너는

높이 날고

멀리 달려라




부록


잘 먹고 잘 사는 법


하야티



축제는 끝났다. 봄이면 버들벚나무 아래서 공 차고 여름이면 공 차고 뜨거워진 몸으로 계곡에 뛰어들고 가을이면 홍시 무화과 사과 밤 따먹고 부른 배로 해먹에 누워 낮잠 자고 겨울이면 눈싸움하고 밤엔 별똥별 세었다. 티비도 와이파이도 없고 반지하도 나무보다 높은 빌딩도 큰 도로도 없고 마침 나는 열여덟 살이었다. 충분한 시간과 충분한 공간 위에서 충분히 밥을 먹고 잠을 자고 노래하고 춤추고 옷 짓고 농사 짓고 밥 짓고 그릇 빚고 멍 때리고 담을 넘고 토론하고 회의하고 회의하고 지겨워하고 외로워하고 애써 미움 받고 숨넘어가라 웃고 울고 맘껏 축제를 벌였다. 시간 흐르는 게 무서웠다. 졸업이 한 달 남았을 때는 하루하루가 너무 아까워서 도대체 어떻게 보내야 할지 몰라 초조했다. 나는 개구리, 여기는 따뜻한 우물 안이라는 것을 알았지만 제발 우물 안에서 계속 살게 해달라고 바짓가랑이라도 붙잡고 싶은 마음이었다. 붙잡을 가랑이 없이 덜렁 졸업했다. 영원히 여기로 회귀하고 싶은 마음으로 지원했던 사범대도 맥없이 떨어졌다. 깨어보니 너무 행복한 꿈을 꿔서 울었다는 아무개처럼 나는 막 이제 행복한 꿈에서 내쫓긴 기분이었다. 내 인생에 그렇게 밀도 높은 시간은 다시 오지 않을 것 같았다. 죽을 때까지 나는 지금을 그리워하며 살아야할 것 같았다.


새벽 두 세시쯤 배가 고파 야식을 찾아 헤맬 때처럼 소속이 고파서 이리저리 헤맸다. 내 또래 친구들은 전부 대학에 가거나 일을 하거나 워홀을 가거나 어학연수를 가있느라 바빴다. 어딜 가나 내 곳 같지가 않아 여기저기 찔러보던 나는 하자센터를 찔렀다가 그대로 거기 꽂히고 말았다. 서울시청소년직업체험센터라는 이름으로는 담아내기가 힘든 곳이었다. 울 할머니가 다니는 복지회관이 떠올랐다. 울 할머니 복지회관에 가서 친구들이랑 한글도 배우고 노래도 부르고 실버요가도 하고 밥도 해먹고 화투도 치고 소일거리해서 돈도 번댔다. 광양 집에 내려가도 할머니는 맨날 복지회관 가있느라 얼굴 보기가 힘들었다. 그래도 할머니가 복지회관 얘기할 때는 신나고 자랑스럽게 말씀하셨다. 수포츠 댄스 교실도 있고 잉, 한글 배우는 학교 졸업하면 학사모 쓰고 졸업장도 받어 가지고, 하믄, 다 꽁짠디, 회관 밥도 을매나 맛있다고 잉……. 할머니 얘기 들으면서 나도 빨리 늙어서 복지회관 다니고 싶다고 생각했는데 사실 나한테는 하자센터가 있었다. 하자에선 수포츠 댄스 클래스는 없었지만 노래도 부르고 요가도 하고 밥도 먹고 돈도 벌었다. 일과 삶과 놀이의 삼위일체가 거기 있었다.


어떤 날은 서아프리카 코트디부아르의 춤을 배우고, 어느 날은 청소년들에게 삼바 스텝을 가르치고, 케이크를 구워서 팔고 브라질 리듬을 연주하고 여행 잡지를 만들고 처음 만나는 청소년들과 춤추고 글을 쓰고 잡지를 만들고 책을 내고 직조하고 헌옷을 사고 몽골제국과 중국의 역사를 공부하고 나무를 갈아서 젓가락을 만들고……. 서로 전혀 어울리지 않아 보이는 온갖 일들이 고 작은 데서 벌어졌다. 작은 헌 건물과 큰 새 건물, 이렇게 두 채가 있는데 나는 본관 신관 할 것 없이 제집처럼 드나들며 무용연습실 요리스튜디오 카페 부엌 교실 대강당 소강당 책방 미니극장 옥상 마당을 누볐다. 경비선생님도 신관 3층 운영부 직원도 본관 1층 책방 주인도 나를 알았다. 하자에선 바빴으면 바빴지 심심할 틈이 없었다.


무엇보다 따르고 싶은 어른이 있었다. 그는 가진 것 내놓을 줄 알아야 받을 수도 있다는 것, 그것이 일대일교환이 아니라 돌고 돌아서 언젠가는 돌아온다는 것을 가르쳤다. 어느 스님이 강연에서 하신 말씀이었다면 시큰둥하게 넘겼을 법 하지만 그가 말했기 때문에 내가 손해 본다고 느껴질 때마다 그의 말을 떠올렸다. 나에게 오는 일들을 의심 없이 그냥 막 하다보면 어느새 내 길이 되고 삶이 된다는 말도 다른 어른이 말했으면 ‘꼰대 다 됐네’라고 생각했을 테지만 그가 말했기 때문에 어떤 일을 할까 말까 망설일 때마다 그의 말을 떠올렸다. 내 소신이 없어서 불안하면 믿을 만한 사람이 시키는 대로 따라 살아도 괜찮다는 것이 나의 소신인데 그가 믿을 만한 사람 같아서 시키는 건 웬만하면 하고 살았다. 알고 보니 공부가 적성에 맞지 않는다는 것을 느꼈지만 그와 함께 하기 위해서는 끊임없이 공부를 해야만 했다. 나는 대부분의 강의에서 대부분의 시간을 졸았다. 조금 재밌어지다가도 금세 고개를 처박고 꾸벅꾸벅 졸았다. 그래도 꾸역꾸역 갔다. 어쨌든 귀동냥으로 그가 말하는 것들의 뉘앙스라도 알아듣기 위해서였다. 그는 다른 사람을 설명하며 자신의 일을 사랑하고 확장할 줄 아는 사람이라는 말을 썼는데 그가 바로 그런 사람이었다. 그는 자신뿐만 아니라 나도 사랑하고 나의 일도 사랑하고 나의 일을 확장해주기까지 하는 그런 사람이었다. 나도 모르는 새에 내 미래 계획이 그의 머릿속에 들어있기도 했다. 실행되지 않는다 해도 가끔은 그의 머릿속에 그의 미래 속에 내 미래가 있다는 사실이 무척 든든하게 느껴졌다.


내가 일 벌리고 싶을 때마다 언제든 품을 내어주는 든든한 빽이 하자라면 나에게는 나보다 더 재미난 일 벌려 언제든 끼워주는 노는 친구들도 있었다. 양쪽 다 재밌는 인생을 살기 위해 필요한 것들 같았다.


우리 집 앞에는 버드나무가게라는 간판을 단 오래된 집이 있다. 그냥 집일 뿐 아무것도 팔지 않는다. 가족이 아닌 사람들이 모여 살고 있다. 우리 집도 낡을 만큼 낡았지만 가게는 더 낡아서 아예 못 쓰는 공간이 많다. 혹시라도 천장이 무너질까 옥상은 출입금지고 마당으로 나가야 있는 푸세식 화장실은 똥담(똥 싸면서 담배 피우기)이 가능해서 애연가들이 좋아했다. 마당 안 작은 텃밭에는 바질과 고추가 자라고 가게 옆 조금 큰 텃밭에선 배추와 무, 파, 갓과 괴물 같은 해바라기가 자랐다.  


가게와 우리집은 떨어져 있지만 부엌만큼은 한집이나 다름없었다. 요리하다가 뭔가 없으면 아무도 없는 집에 문 두들기고 들어가서 후추 가져다 쓰고 생마늘 가져다 쓰고 다진 마늘 가져다 쓰고 냄비 가져다 쓰고 쌀 가져다 밥하고 냉장고 안에 상해가는 두부 가져가서 해치웠다. 다들 바빠서 저녁을 자주 해먹지는 못하지만 저녁시간 집에 누구 있으면 꼭 불러서 같이 밥 챙겨먹고 설거지하고 그랬다.


중원은 버드나무 가게의 터줏대감이다. 밭과 부엌과 난로를 포함해 가게의 모든 것을 관할한다. 우리는 장난스레 대장님이라고 불렀는데 실제로 중원은 막강한 권력자다. 모든 결정은 중원과 함께 하고 중원이 불편하다고 하면 누구도 가게에 올수 없다. 그만큼 하는 일도 많았다. 요즈음엔 마당을 쓸면서 과연 이 집에서 나 말고 마당을 쓸어본 사람이 있을까? 생각하며 씁쓸해하는 중이다. 내년 지 생일엔 군면제 기념으로 100만원 들여 파티 한댔다. 맨날 하는 게 파티면서 또 하나 싶다. 중원은 친해지고 싶은 사람 있으면 가게로 불러서 밥 해먹이고 술 따르면서 친목을 다졌다. 신기할 정도로 처음 보는 손님들을 자연스럽게 가게에 녹여내는 게 중원의 능력이었다. 지금은 머리 길러서 이제나 저제나 아프로 펌 하기를 벼르고 있다.


자인은 사실 ‘자는 인간’의 줄임말이 아닐까 의심되는 사람이다. 같이 웃고 떠들고 술 마시다가도 열두시만 되면 어김없이 고개가 푹 꺾였다. 자인, 들어가서 자. 라고 몇 번을 말해야 자인은 막 눈뜬 강아지처럼 잠자리를 찾아들어갔다. 자인이 자리에 끝까지 남는 일은 거의 아니 절대 없었다. 중원이 끝까지 남는 일도 없었다. 중원은 친목 다진다고 계속 술 마셔대다 어느새 발만 내놓고 침대에 뻗었다. 그럼 끝까지 남는 건 보통 나와, 처음 보는 손님과, 두세 번 본 손님 정도였다. 자인은 자기만 하는 건 아니고 그림도 그렸다. 가장 섬세한 감성을 가졌으나 한 덩치 하는 성인 다섯 명 꽉 들어찬 모닝 몰고 고속도로에서 시속 140 밟는 그런 거친 사람이기도 하다.


중원 방과 자인 방 사이에 성인 남성 두 명 누우면 꽉 차고 세 명은 못 눕는 작은 방이 있는데 거기에 최영이 산다. 영이는 다정한 이름만큼 다정한 성격과 다정한 풍채를 가졌는데 환경운동연합에서 활동가로 일하느라 언제나 피곤해했다. 영이가 밥했다고 먹으러 오라고 하면 무조건 카레였다. 카레만 먹고 살 수 있다고 말할 정도로 영이는 카레를 좋아했다. 햄이랑 고기도 좋아했다. 내가 야채 카레 끓이고 있으면 야채보다 많은 고기 사와서 넣으라고 했다. 된장찌개에 스팸을 넣어서 끓인 사람도 영이가 처음이었다. 그런 영이는 자꾸 간이 아프다면서 술 마실 때마다 약을 챙겨먹더니 어느 날 금주, 금고기, 금카레를 선고받고 돌아왔다. 건강검진 해보니 심각한 지방간이랬다. 술도 고기도 자극적인 음식도 못 먹는 영이는 무척이나 우울하고 차분해보였다. 가게에서 갑자기 영이가 한참이나 보이지 않아 밖에 나가보면 동네를 걸으며 담배를 피우고 있었다. 이 인간 간 안 좋아서 술 끊으랬더니 그만큼 담배를 졸라게 펴서 폐도 안 좋아지게 생겼다.


내 일과는 보통 하자-가게-집으로 이루어졌다. 평일은 낮엔 하자에서 일하거나 회의하고 밤엔 가게에서 술을 마셨다. 마을버스타고 우리 집 가려면 버드나무가게 앞에 내려서 가야하는데 괜히 한번 들여다보고 가게에 불이 켜져 있으면 괜히 한번 들어가 보고 사람들이 와인 마시고 있으면 괜히 한잔 얻어먹고 괜히 과자 한 봉지 뜯고 그러다 또 새로운 사람이 들어오고 그렇게 새벽 다섯 시 되고 그랬다. 주말이면 내 몸은 두 개라도 모자랐다. 가게 친구들과 금요일에 차 타고 강원도 정선 놀러가서 술 마시고 그 다음날 아침 일곱 시에 일곱 시간 버스 타고 철원 가서 하자센터 친구들과 같이 여행하고 그 다음날 저녁 숨차게 가게 들어오면 바로 버드나무 글방 시작하는 그런 식이었다.


김장철에는 목요일과 금요일 하자에서 김장을 하고 토요일 일요일 버드나무 가게에서 김장을 했다. 가게에서 키운 배추, 무, 갓 그리고 하자 친구들과 키운 배추로 김치를 담갔다. 고작 오십여 포기에 김장 인원은 열댓 명이었다. 김장이라고 하기엔 조금 시시했지만 사실 김장을 빌미로 한 잔치였다. 김장 잔치를 주도 한 것은 중원과 자인이었다. 자기들 성을 따서 ‘김(중원)장(자인)’이란 이름으로 지원 사업에 공모해서 지원금을 받았다. 그 돈으로 새우젓 사고 액젓 사고 쌀 사고 고춧가루 손두부 샀다. 양념에 옷 버릴까봐 우리 집에서 안 입는 옷 한 무더기 가져다 각자 골라 입었다. 색깔과 무늬의 조화 같은 것은 전혀 고려않고 무조건 따뜻하고 사이즈 맞는 옷을 여러 겹 껴입었다. 하늘색 목폴라에 자주색 니트 입고 줄무늬 가디건 걸친 사람과 목에 큰 리본과 프릴이 달린 미니원피스 입은 사람들이 고무장갑을 끼고 서로를 보며 깔깔 웃었다. 김장엔 수육, 수육엔 막걸리가 빠질 수 없어서 난로에 다닥다닥 둘러 앉아 기타를 치다가 나가서 눈싸움도 했다.


오랜만에 연락하는 친구들 하나같이 “너 잘 놀고 있다며”라는 말로 안부를 물었다. 어떻게 소문이 거기까지 퍼졌는지는 몰라도 헛소문은 아니었다. 나는 좀 잘 놀고 있었다. 오는 파티 안 막고 가는 파티는 붙잡는 파티피플, 내 사전에 무리는 없다. 올해도 왼팔엔 하자 오른팔엔 버드나무가게를 안고 잘 놀았다. 이제는 어디서든 잘 놀고 잘 살 자신이 있지만 일단은 오늘도 하자로 출근 도장을 찍고 버드나무가게에서 밥을 먹고 파티에 간다.



버드개미마을에는 개미처럼 일하는 언니와 예술가인 중원과 가난한 내가 산다, 일러스트 ©김지현






[잘 사는 청년]

노는 인간 하야티

-김지현을 만나다


인터뷰어. 어딘

인터뷰이. 김지현

글. 어딘

발행일. 2020.01.26

발행처.《일간개벽》'노는 인간 하야티 - 라이프스타일개벽의 전선에서 김지현을 만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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