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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GSR Dec 26. 2021

In Da-Lat #83


나짱에서 체크아웃을 할 때, 주인아줌마는 웃으면서 좋았냐고 물어보셨다. 수속이 끝나고 친구가 여행 온다면 여기 추천해달라고 하시며 명함 하나 쓱 내밀었다. 나는 그걸 여권케이스에 껴 놓았다.



 베트남에서 도시를 이동할 때는 슬리핑 버스였다. 다만 나는 그냥 가는 버스를 예약했었는데 타보니 슬리핑 버스였다. 앉아가려 했는데 누워갔다. 달랏에 내려 처음 느낀 건 추위였다. 비가 와서인지는 모르겠지만 베트남에서 처음 선선하다고 느꼈다. 걸어서 도착한 숙소는 좋지도 나쁘지도 않았다. 다만 1인실이니 그러려니 하고 사용했다. 게다가 여기는 조식도 준다. 한 가지 없는 건 에어콘이었다. 그동안 베트남 숙소에서는 늘 있었는데 없으니 조금 걱정되었다. 밤에 더워서 못 자면 어떡하지?


 트립어드바이저를 이리저리 만지며 이탈리아 음식점을 찾아보았다. 해외에서까지 네이버 블로그나 네이버 지도를 둘러볼 순 없었다. 마침 미친 듯이 까르보나라 스파게티가 끌렸다. 나는 크림 스파게티를 그리 좋아하지는 않지만 독일에서 먹었던 까르보나라가 맛있었고, 토마토 스파게티에 비해 가게별 맛 차이가 크지 않겠다고 생각했다.



 구석에 있어서 사람이 거의 없었던 파스타집에 들어가서 주문했다. 오븐 스파게티형이었는데 베이컨이 수북이 얹어져 있어서 느끼함과 짭짤함이 함께 느껴지는 게 좋았다. 하지만 나의 최애 스파게티는 알리오올리오였다.

달랏에는 크레이지 하우스라고 있다. 동화에서 나온 듯 미친 건물처럼 곡선들과 화려한 장식들, 기괴한 외형들 그리고 높은 곳에 있었다. 높은 곳에 있어서 여기에서 동네를 한눈에 볼 수 있다는 것도 신기했고, 계속 짓고 있다는 것이 신기했고 이곳에서 숙박이 가능하다는 것에 한번 더 놀랐다. 깊이 들어가다 보면 오래된 사람들의 사진들과 기사들이 나왔다. 나는 그걸 알지 못했지만. 그래서 더 기괴한 분위기를 내게 주었다. 겉은 우스꽝스러운 건축물인데 안에는 실제 사람들의 흑백사진이 걸려있으니. 귀신이라는 느낌보다도 200년 살고 있는 사람의 기괴한 역사가 있을 거 같은 느낌.



 나와서 걷는 길은 좋았다. 늘 땀과 함께 살았던 나지만 덥지도 않아서 땀도 거의 흘리지 않았다. 선선했다. 베트남에서 선선하다니 신선했다. 도시 가운데 즈음 커다란 호수가 하나 있었는데 이 호수를 중심으로 주변을 걷는 게 좋았다. 때때로 걷다 보면 추웠다. 그래서 도중에 밥을 먹으로 돌아갔다. 다만 마지막 날 천천히 다시 걷자고 다짐은 했다.



 왠지 달랏에서는 베트남 음식을 먹을 분위기가 나지 않았다. 달랏에 있을 때는 무조건 서양식이다!라는 마음을 가졌다. 양식하면 대표적인 건 스테이크지. 주변을 계속 찾아보았지만 간단한 스테이크점 하나만 찾을 수 있었다. 다만 무척 맛없었다. 후추향이 너무 셌고 고기는 질겼다. 역시 만만한건 파스타였던건가. 나중에 파스타 먹으러 다시 갈 수밖에 없겠다고 생각했다.


 이렇게 돌아다니고 숙소에 들어가서 샤워를 했다. 처음이었다. 베트남에서 따뜻한 물로 샤워를 한다는 것이. 그런데 이런 천국이 없다. 찬물로 샤워하지 않는데 이런 천국이 없었다. 나도 모르게 넋 놓고 뜨거운 물이 나오는 샤워기 앞에 서 있었다. 아까 에어컨이 없다고 툴툴거렸는데 필요가 없는 거구나. 선풍기를 틀지 않아도 충분히 추웠다. 그날 나는 두꺼운 이불을 덮고 잠이 들었다. 달랏은 이렇게 선선한 도시였구나.



 달랏에서 해야 할 건 단 하나였다. 캐녀닝. 내가 갔던 게스트하우스에서는 캐녀닝을 투어 아이템으로 소개해주고 있었다. 다른 여행사에서 캐녀닝을 찾기보다는 그냥 여기서 하는 게 낫다고 생각했다. 사실 너무 귀찮아서. 다음 도시로 갈 버스도 알아봐야 했는데 마침 여기서도 버스를 안내해주고 있었다. 미리 예약해 두었다.

게스트하우스에서 조식을 준다고 해서 기다렸다. 내 앞에 주어진 건 바로 반미였다. 오늘은 캐녀닝 하는 날이었다. 밥을 다 먹고 버스를 기다리며 앉아있었는데 캐녀닝 하는 사람에게 주는 게 있다며 창고를 뒤적거린 후. 검은색 가운데 황금색으로 게스트하우스 이름이 박혀있는... 나시티였다.


 캐녀닝은 총 5명이서 진행되었다. 서양인 4명과 동양인은 나 혼자였다. 젖기 괜찮은 신발이 없어서 라오스에서 산 크록스 비슷한 신발 신고 왔지만 다행히도 코스는 다 진행할 수 있었다. 캐녀닝은 계곡을 따라 오르거나 내려가며 하는 액티비티며 생각보다 꽤 위험한 스포츠다. 밧줄을 고정시켜서 절벽 같은 곳을 오르거나 내려가기도 하고, 물살에 몸을 맡긴 채 내려가기도 했다. 다이빙도 7m, 15m에서도 할 수 있었다. 나름 안전을 위한 장비를 착용하고 로프가 잘 매달려 있는지 확인한 후에 가도 좋다는 사인을 가이드들이 진행해주었다. 다만 단 한번, 내가 뛰어내릴 차례가 될 때, 안전장비를 걸어주었는데 확인해보니 걸려있지 않았다. 뭐라고 하니까 깜빡했다고 미안하다고 했다. 에라이 그걸 깜빡하면 안 되지... 내가 저승 갈 뻔했는데...



 캐녀닝은 긴 시간 동안 하지 않았다. 알고 보니 오전 타임, 오후 타임이 따로 나누어져 있었고 나는 나도 모른 채 오전 타임으로 간 것이었다. 그 덕에 마무리는 다 같이 점심을 먹는 시간을 가질 수 있었다. 그리고 역시 반미였다.


 역시 언어였다. 네덜란드 사람과 미국 사람들이었는데 서로 영어로 의사소통을 할 수 있었다. 같은 언어가 통하는 사람끼리 더 빨리 친해지는 건 어쩔 수 없었다. 트럼프에 대해서 이야기를 하더니 네덜란드 사람들이 생각하는 트럼프, 그런 이야기로 넘어갔다. 나는 그냥 앞에 놓인 반미 재료들을 보며 어떻게 조합해서 먹을까 고민했다. 치즈를 넣을지 토마토를 넣을지 말이지. 나 빼고 4명은 캐녀닝 후 만나기로 약속도 바로 잡더라. 만능 번역기 어디 안 나오나.


 점심을 마지막으로 숙소로 돌아왔다. 내 폰 데이터가 다 썼다고 나오길래 이를 어쩌나 했다. 씻고 준비한 후 빨래들을 맡기고 데이터 충전할 곳을 찾아 나섰다. 꽤 많이 걸었는데 문이 닫혀 있었다. 세네 군데 돌아보았는데도 없었다. 그래서 다시 밥을 먹으러 갔다. 어제 먹었던 피자라이크로 가는 동안 비가 서서히 내리기 시작했다. 밥을 먹는 동안 루앙프라방에서 만났던 누나들에게서 연락이 왔다. 숙소 갈 때쯤 비는 그쳤다. 숙소에서 누나들과 영상통화를 하고 과자와 음료수를 사고 숙소 아래 있는 바에서 블루먼데이와 밤비어를 마셨다.



 하루는 여유롭게 지냈다. 그날은 늦게 자서 조식을 못 먹었다. 뭐 늘 안 먹는 건 일상다반사였으니 괜찮았다. 자면서도 조식 언제가 마감일까 10시일까 11시는 너무 늦겠지 했는데 9시였다. 그냥 신경 안 쓰고 푹 자도 될뻔했다. 뭐 푹 잤지만. 오늘은 걸으며 다니고 싶었다. 2시간 정도 걸었다. 걷다가 호수 근처에 다다르니 오히려 쌀쌀해져서 외투 하나 있었으면 했다. 역시 달랏이구나.


 달랏은 와인도 유명하다 한다. 프랑스지배령일 때 프랑스 사람들이 휴양하러 많이 왔다고 한다. 그래서 나도 와인을 먹었다. 펜네 파스타와 함께.



 그리고 카페에서 쿠키 앤 크림을 먹으며 일기를 쓰고 숙소에 갔다. 잠시 있다가 밥 먹으러 다시 나왔는데 달랏 마켓 근처는 홍대가 되어 있었다. 사람들이 춤추고 둘러싸여서 소리 지르거나 노래를 부르고 옆에서는 비트박스를 하고 건물 반대편에서는 플라스틱 공으로 축구를 하고 있었다. 워낙 차가 많은 지역이지만 밤에는 경찰이 통제를 해서 차가 오는 걸 막는 모양이었다. 야시장도 엄청 크게 열렸다.



그리고 여기서 먹은 스테이크는 정말 맛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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