자살이 허기진 밤 #025
강박이 오는 날이 있다. 오늘은 꼭 이걸 해야겠다 싶은 날. 자주 오는 강박은 정리다. 청소와 정리를 그리 좋아하지 않는 나지만 그런 생각이 들 때는 반드시 한다.
내가 오랜 시간을 보내는 곳은 방의 컴퓨터 책상 앞이다. 내 방에 들어오면서부터 마주할 수 있어 평소 가지고 다니는 카드지갑과 핸드폰, 이어폰이 늘 널브러져 있다. 때때로 그 앞에서 밥도 먹을 때가 있고 과자도 뜯으니 심할 때는 상상도 못 할 정도로 어지럽혀 있을 때가 있다. 굳이 이런 것이 아니더라도 이미 책상 위에 있는 것들이 많다. 방은 좁고 복잡해서 데스크톱 하나 넣기 어려워 노트북을 사용한다. 그리고 멀티탭, 모니터, 외장하드 등 다양한 컴퓨터 관련 부속품들로 이미 책상은 꽉 채워져 있다.
왜 이렇게 책상 위에는 먼지가 자주 쌓이는지. 겨우 책상 하나인데도 어디선가 나오는 먼지는 늘 거슬리게 한다. 마음이 들 때에는 그 복작하던 책상 위에 있는 물건들을 다 내려놓은 후 정리를 시작한다. 먼지를 깔끔하게 닦고 주변기기들을 하나씩 열을 맞춰서 배치한다. 이미 오랜 기간 책상에 있었지만 당분간 사용하지 않을 것 같은 물건들은 서랍에 넣어 놓는다. 영수증이라던가 연극 티켓, 관람권 같은 것들은 쓰레기통에 버린다. 그렇게 몇십 분을 낑낑거리며 정리를 마무리하면 겨우 책상 하나지만 그 깔끔함에 좋지 않았던 기분도 약간 씻겨나간다.
하지만 책상 옆에 있는 책장은 건드릴 수가 없다. 그동안 사 왔던 책이나 잡지들은 이미 책장이 포용할 수 있는 부피를 아득히 초과해 버려 책장 빈 공간까지 욱여넣어도 부족하여 바닥에 쌓이고 있었고, 책이 범람하기 전 인테리어용으로 좋겠다 싶거나, 여행에서 사 왔던 작은 아이템들은 이미 뭉쳐 엉켜있어 기괴해졌다. 정리하고 싶지만 공간자체가 없어 할 수 없는 상황이었다. 이렇게 책상이라도 정리하여 마음의 여유가 조금 생길 때 평소에 감당할 수 없었던 책장에도 조금씩 손을 댄다. 정리하고 버린다.
정리하고 버린다는 것은 나의 한편을 차지하고 있던 무언가를 버리는 것이다. 더 이상 찾을 수 없는 공허로 내보내는 것이고 버린 뒤 생긴 공간만큼 알 수 없는 그리움도 조금씩, 조금씩 늘려나가는 것이다. 때때로 알 수 없을 만큼 미세해서 아무리 생각해도 생각나지 않아 출처를 모르는 상실감과 우울함에 나를 빠뜨린다.
다들 미니멀리스트를 지향한다고 하지만 나는 맥시멈리스트다. 뭐든 많은 게 좋고 좋은 게 좋다. 맥시멈리스트의 삶의 방식은 나의 작은 삶의 조각들도 알아채릴 수 없을지언정 한편 구석에 모셔놓는다는 것. 시간이 지난 후 그 구석을 바라보고 삶의 조각을 마주한 후 정체를 알 수 없어 버린다고 해도 그때까지는 모셔놓는다.
정리하면서 개운함과 동시에 쓸쓸한 감정을 느끼는 것은 그 때문인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