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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GSR Mar 04. 2024

고정 궤도와 열정

서른즈음에 자살하기 전 #026


 지속적이고 안정적인 삶을 원하는 것은 개개인의 속도 차이가 있을 뿐 나이가 들수록 명확한 명제가 되어간다. 점차 다양한 도전을 하는 삶에서 안정적으로 삶에 대한 태도가 변해간다. 하지만 삶의 일반적인 루틴이 위협을 받을 가능성이 높은 시간은 일요일 밤에서 새벽으로 넘어갈 때. 주말 간 여유 있는 밤시간을 즐기느라 늦게 자고 늦게 일어나는 유희 때문에, 일요일 밤은 자연스럽게 생각이 많아져 초조해하며 잠이 오지 않는다.


 다들 같은 경험을 했겠지만, 다음날이면 출근해야 한다.라는 생각이 이렇게 가슴을 답답하게 하다니. 분명 나의 업무는 힘들지 않고 근무시간도 길지 않아 고통받는 일은 거의 없다고 생각했는데 왜 회사에 간다는 생각만으로도 답답해질까? 다음날 숙취에 치명적인 나는, 혼자서 술을 마시지도 않지만, 가끔씩 알딸딸함과 숙취의 고통에 몸을 맡기고 싶을 때가 있다. 그게 바로 오늘이었다. 술을 마시면 잠이라도 빨리 들 수 있으니.


 부쩍 요즘 모든 업무나 자기계발에 대해 적극성이 떨어지고 있었다. 이제 내게는 회사 일에 대한 한 줌의 열정도 남아있지 않다.(비단 지금 속한 회사에 대한 이야기가 아니다. 속한, 속할 모든 회사에 대한 현시점의 이야기이다.) 삶에 있어서 직업은 자아실현의 도구가 아니다. 그저 삶을 영위하기 위한 기본 조건일 뿐. 다시 말해 돈을 벌 수단이며 그 이상도, 이하도 아니다. 그래서 내가 직업을 고르는 기준 중 하나는 내 시간이 많아야 한다는 점이다. 매달 찍히는 숫자, 그리고 내가 사용할 수 있는 시간의 극대화.


 동시에 나는 생각한다. 이제 나의 일상에서 남은 건 정서적 삶의 추락뿐. 마약을 경험한 사람처럼 나는 나의 일상에서 도파민을 얻을 수 없다. 어느 것도 나에게 감동과 감흥을 가져다주지 못한다. 업무를 처리하고 나면 하나를 끝냈다는 안도감만 나를 살짝 찌른다. 사람들도 마찬가지다. 떠날 사람은 떠나고 남을 사람은 남고 새로 합류할 사람은 다시 생긴다. 그건 급격한 변화가 아닌 자연스러운 현상이다. 나의 시간을 보낼 때 예전처럼 새로운 것에 도전한다고 기쁘지는 않다. 평소보다 조금 더 심장이 뛸 뿐.


 나는 뛰어난 사람이 아니며, 파장을 가져올 사람도 아니다. 장마로 불어버린 강 상류에 던져진 모래 알갱이가 가져온 파장이 인생에 가장 큰 업적으로 살아가는 사람이다. 그래서 이미 시시한 엔딩이라는 것을 알고 다시 보는 영화가 나의 삶처럼 느껴진다. 한때, 산 정상에서 가장 깊은 바다로 떨어지는 듯한 굴곡이 있고, 항상 남에게 몇 시간씩, 며칠씩 들려줄 이야기가 많았던 나의 삶이, 하고 싶은 것이 손가락만으로 셀 수 없을 정도로 많았던 나의 삶이, 늘 일을 벌이던 나의 삶이 이처럼 시시하게 변해버렸나.


 그러나 누구에게도 이런 생각을 말하지 못한다. 회사 사람들에게는 언제나 일에 대해 진심을 다하는, 열정적으로 보여야 한다. 약점을 보이거나 불평하면 안 된다는 생각이 든다. 특히 공적인 관계에서 허술한 모습을 보인다면 그것은 어떤 방식으로든 내게 해를 입힐 것이다. 공적으로는 완벽할 수 없어도 약한 부분을 보여주면 안 된다. 그렇다고 사적으로 친한 사람들에게도 이런 말을 꺼내기가 조심스럽다. 애인에게 한 번 정도는 주의 깊게 이런 고민을 나눌 수 있다. 이 주제에 대해 공통의 관심사를 가지고 있을 수도 있다. 하지만 반복된다면 감정의 쓰레기통 혹은 아무것도 아닌 일로 느껴질 수 있다. 잦은 흔들림은 나의 것. 강요할 수 없다. 그게 단순히 함께 생각해 달라는 간단한 요청도 어렵다. 그건 경험해 보고서 알았다. 약한 모습과 늘 흔들리는 모습을 너무 많이 보여주었다는 것을 표정을 보고 알게 되었다.


 애매하게 아는 사람들에게는 이런 주제로 말하는 것이 쉽다. 이 사람들이 내 삶에 어떠한 영향도 미치지 않을 거라는 걸 알기 때문이다. 어차피 한번 만난 후에 그 해에 다시 만날 거란 보장도 없다. 가장 가까워야 할 가족과 애인, 친한 친구들에게는 말하지 못하고 지인에게는 할 수 있는 아이러니함이란.


 다시 돌아와서, 나는 왜 아직도 흔들릴까? 자신의 길이 무엇인지 명확히 알고 갈 수 없을까? 왜 마음이 정리되지 않는 걸까? 예전처럼 아무 생각 없이, 현재 한국에서의 삶을 다 버리고 여행을 다니며 살고 싶다가도 이제 그게 불가능 함을 안다. 사실 여행을 떠나고 싶은 게 아닐 수도 있다. 단지 원인 모를 몸부림일 수, 직장인으로서의 관성일 수 있다. 다만, 지금의 나는 의지가 결여된 살아있는 시체이며 어떠한 감흥도 느끼지 못하는 수동적인 인간이다. 하자고 하면 하는, 하지 말자고 하면 하지 않는. 그나마 우울한 노래가 나의 감정을 조금이라도 건드는 것을 보면 기쁨보다 슬픔만 남아있는 삶인 걸까. 우울한 음악은 강제로 감정을 주입하는 마약과 같이 느껴진다. 그나마 다행인 건 마약은 기쁨과 고양감을 주고 깨어나면 한없이 바닥으로 끌고 가지만, 우울한 음악은 이미 바닥이다. 


나의 흔들림은 언제쯤 정상 궤도에 오르게 될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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