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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젊은최양 Feb 27. 2024

위즈덤하우스 위클리 픽션, 위픽 #1

≪소녀는 따로 자란다≫ 외 2종

1년 동안 50편의 연재가 50권의 책으로 완성되는 위즈덤하우스의 단편소설 연재 프로젝트 위클리픽션이 시즌 1을 마무리했다. 1년에 걸친 대장정이 끝난 기념으로 그간 완독한 위픽 시리즈와 끄적거린 감상을 공유해보려고 한다. 같은 디자인의 표지인데 색감과 질감을 매번 콘셉트에 맞게 다양하게 썼다는 점이 인상 깊다. 이런 키치하고 당돌한 기획력 넘나 멋지다. 겉보기도 좋고 읽기도 좋고 작가 라인업은 어찌 좋은지 보석 같은 시리즈다. 




≪소녀는 따로 자란다≫

위픽 시리즈 중 가장 핫한 아이가 아닌가 싶다. 일명 ≪소.따.자.≫

제목과 표지를 보고는, 여자들의 이야기가 아닐까 짐작했다. 영화 ≪타오르는 여인의 초상≫, ≪더 페이버릿≫, 그리고 문학동네의 도서 ≪매트릭스≫가 떠올랐다. 완독해보니 생각했던 것과는 전혀 다른 방향의 책이어서 오히려 놀랐다.


해당 도서의 편집자님이 답변해주신 것처럼, 『소녀는 따로 자란다』는 뛰어나다거나 탁월하지만은 않은, '자매애'에 속해보지 못한 여자애들을 초대하는 곳이다. 오히려 자매애 그 바깥의 공간이다. 개인적으로는, 어른들의 사정으로 초등학교만 7군데를 다녔던 그 어린 시절을 떠오르게 했다. 이 책의 소녀처럼 다른 의미에서 겉도는 타인으로, 방과 후 여기저기를 불려 다니며 숨 쉬는 대나무숲이 되어주었던 기억이 난다.

나를 찾기 시작한 스물부터 멋진 서른둘이 된 지금까지 단 한 번도 부모가 바라는 상에 부합하지 못한 내 모습도 보았다. 처음엔 휴학으로, 그다음에는 전과로, 약혼의 실패로, 취직 이후에는 허랑방탕한 모습으로, 지금은 갑작스레 새로운 인생을 맞이한 30대로 부모에게 가녀린 실망감을 안겨주었다. 하지만 그들도 '수'처럼 멋진 어른들이어서, 그래서, 우리는 여전히 서로를 인정하고 사랑한다. 그 눈치 없이 사랑이 가득한 감사가 떠올랐다. 사실 그렇게 된 지도 얼마 되지 않았지만 말이다.(웃음)



수가 이 질문의 의도를 이해조차 못 한다는 사실이, 그 단호한 어리둥절함이 더할 나위 없는 위로가 되었다. 예쁘지, 그럼 예쁘지. (p. 58)





≪만조를 기다리며≫

핫한 젊은 작가에게는 고집스럽게도 낯을 가리는 변태스런 습성 때문에 조예은 작가님은 익히 들었지만, 작품은 처음이다. 특이한 흡입력이었다.

1. 불가항력으로 잊지 못하는 곳.

정해에게 미아도와 영산이 있듯, 나에겐 20대 때 하루가 멀다 하고 거닐던 포항 영일대가 있다. 슬픈 기억도 있었는데, 우연히 애인과 다시 방문했을 때 꾸욱꾸욱 밟아 파도에 던졌다. 그때 이후부터는 긍정적인 느낌만 남고 아련한 감은 사라져서 그리워하질 않았다. 정해도 파도에 (정말로) 모든 걸 흘려보냈으니 이제 후련히 거취를 옮길 수 있으리라.


2. 비관적이지만은 않은, 그리워하는 마음.

부모님은 엄하지 않으셨고 자유롭게 우리 자매를 키웠다. 오히려 조부모님, 특히 외할아버지께서 첫 아이인 나를 장자처럼 이끄셨다. 너무 자유만 따를 때는 현실을 직시하도록 하셨고, 시간이 언제 이렇게 흘렀는지 모르겠다며 세월의 무상을 논하기도 하셨다. 나이에 비해 정정하셔서 할머니와 함께 해외여행도 잘 다니셨다. 내가 유치원생일 때부터 나중엔 미국 땅에 묻힐 거라며 서운한 말씀을 자주 하셨는데, 왜인지 갑자기 한국에 정착하셨다. 그리고 곧 정말 갑작스러운 병에 급하게 돌아가셨다. 중환자실로 모시는 길에는 할머니와 나뿐이었다. 별일 없겠지 하는 마음으로 시름시름 앓는 할아버지께 무탈할 거라고 장담했던 그 순간이 마지막이다. 마지막이란 걸 알았다면 그렇게 너스레를 떨지 않았을 텐데. 아마 모든 가족들도 예측하지 못했을 거다. 그래서 그 자리에 있던 구체적인 슬픔은 나만 안다.


3. 업(業)과 연(緣)이 쌓여 만든, 시절인연.

한참 음악 축제 문화에 빠져있던 기간이 있었다. 2018년도, 정확히 코로나 직전. 중학생 때 빠져 살던 책과 음악과 영화를 대학에 진학하며, 취직을 준비하며, 회사 생활을 하며 정말 신기하게도 까맣게 잊었다. 그런데 그 시절 그 사람들을 통해 음악을 다시 듣게 되었고 책을 다시 향유하게 됐다. 그 시절로 인해 직업도 공학도에서 출판인으로 바뀌었다. 진탕 취해 감상 속에, 철학 속에, 에고 속에 파묻힐 수 있게 경험을 넓혀준 그 많은 스쳐 지나간 인연들에게 감사를 표한다.




≪고르디우스의 매듭을 자르면

앞서 부모와 서로를 인정하며 사랑하게 된 지 얼마 되지 않았다고 했는데, 누구에게나 그런 스토리는 있을 터. 그런 것들이 얽힌 이야기다.


≪소따자≫의 형광핑크 표지를 보고는 영화 ≪타오르는 여인의 초상≫, ≪더 페이버릿≫, 그리고 문학동네의 도서 ≪매트릭스≫가 떠올린 것처럼 문학, 연극, 회화, 음악, 영화와 같은 영상물까지 모든 예술은 얽히고설켜 있고 서로의 근간이 되기도, 서로를 증명하기도 한다. 요새는 문학동네의 독파에 적극적으로 참여한 이후 의도치 않게, 업 또한 '글'임에도, 영상물보다도 글이 훨씬 좋아져 버려서 한 번에 여러 권을 읽는데(한 권을 읽다가 쉬면서 다른 책을 또 보곤 한다.) 쫌쫌따리로 읽고 있는 돌고래 출판사의 평론집 ≪악인의 서사≫에서 같은 키워드가 나와 반가웠다.




그럼, 이만.� 언젠가 2편으로 돌아오리라. 급한 마무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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