윌리엄 셰익스피어의 ≪클레오파트라와 안토니우스(1607)≫
두 가지 작품 속 '클레오파트라'를 살펴보는 읽기를 했다. 이번 독서는 특히나 세 가지 포인트로 집중해야만 했다.
첫 번째는 '저자'이다.
<클레오파트라 시리즈>의 첫 번째 작품 ≪클레오파트라와 안토니우스≫의 저자는 극작가 중 단연코 가장 유명하다고 할 수 있는 '윌리엄 셰익스피어'이다.
두 번째는 '클레오파트라의 재평가'이다.
어렴풋한 이미지로만 기억되던 이집트 프톨레마이오스 왕국의 여왕이자 마지막 통치자였던 클레오파트라 7세 필로파토르는 내게 마치 카라바조의 메두사와 비슷했다. 강한 여성 주인공의 상징으로 느껴졌다.
조금 더 긍정적으로 말하자면 외젠 들라크루아의 그림처럼 혁명가스러운 느낌이랄까?
물론 ‘팜므파탈’, '매혹하는 악녀'로만 기억하는 사람도 있을 것 같다.
하지만, 셰익스피어의 클레오파트라를 만나고 난 후 그녀에게서 사랑꾼 웨딩피치의 모습을 떠올렸다.
유명한 '사랑짤'을 만든 웨딩피치 모모코!
(웨딩피치 모모코도 단순하고 덜렁대기도 하지만, 친모의 부재로 가사에 능하고 나름대로 성숙한 면과 자립심도 있으며 리더십을 발휘한다.
요런 현대물에서의 여성 전사 리더상을 과거 역사적 인물들의 캐릭터성에서 차용해왔을 수도 있겠다는 생각이 든다.)
세 번째는 '역사성'이다.
작년 셰익스피어의 대표적 희곡들, 4대 비극과 5대 희극을 대부분 탐독했지만, 실제 역사 기반의 작품은 처음이었다. 그렇다, 이 작품은 이집트를 배경으로 한 극작품으로서의 예술성뿐 아니라 역사를 담고 있다는 특이점이 있다.
안토니우스는 율리우스 카이사르의 측근으로, 카이사르 사후 카이사르의 양자였던 옥타비아누스 카이사르(아우구스투스)와의 2차 삼두정치를 통해 로마의 대권에 도전했지만 이어진 내전에서 끝내 패배하고 사라진 인물이다.
섹스투스 폼페이우스와 옥타비아누스(카이사르)가 대립하자 이들의 평화 협정을 중재하기도 했으며, 이 시기에 클레오파트라에게 홀딱 빠진 것으로 추정된다.
(참고로 이 시기는 기원전 69년 정도로, 우리나라에서는 박혁거세가 알에서 깨어났다.)
여기서 약간 헷갈리는 게 있는데, 옥타비아누스 카이사르는 우리가 잘 알고 있는 클레오파트라의 연인 카이사르가 아니고 그의 아들 카이사르다. 클레오파트라가 맨몸으로 카펫에 돌돌 말린 채 만남을 가진 건 율리우스 카이사르이고, 이 책에서 등장하는 카이사르는 그의 아들 옥타비아누스 카이사르이다.
이제 다시 첫 번째 포인트로 돌아가 저자 '셰익스피어' 그리고 극 중 대사들에 조금 더 집중해보고 싶다.
셰익스피어 비극의 주인공들은 한결같이 고귀한 인물이지만 욕망을 가지고 있다.
(햄릿 - 우유부단, 리어왕 - 교만, 오셀로 - 질투, 맥베스 - 야망)
셰익스피어의 ≪클레오파트라와 안토니우스≫는 고대 로마의 2차 삼두정치를 배경으로 하기에, 야망으로 인한 결함 때문에 비극이 시작되는 ≪멕베스(1623)≫와 비교되는 부분들이 있다.
내 의도에 박차를 가할 근거는 어디에도 없구나.
그저 야망만이 혼자 날뛰다
반대쪽으로 고꾸라질 뿐.
열린책들의《맥베스》 p.36
우리의 욕망이
만족을 모르니 모든 걸 잃고도 얻은 것은 아무것도 없구나.
같은 책, p.75
그는 날 애송이라고 부르며, 나를 이집트를 무찌를 힘이 있다고 큰소리치는군. 내 전령에게 매질까지 했다고. 그리고 나한테 일대일 전투를 신청해, 카이사르 대 안토니우스, 그 늙은 악당에게 죽을 방법은 많다고 알려줘야지 용기가 가상하구나.
히스토리퀸의《클레오파트라와 안토니우스》 p.143
세 명의 장군들은 애증의 관계로 조건에 의해 의지하거나 화합하기도, 살의 넘치게 서로에게 칼을 겨누기도, 감정에 따라 동정하기도 하는데 이 지점이 독특하게 다가왔다.
메나스, 나는 작은 원한은 큰 원한을 위해 양보하는 법이오.
같은 책, p.43
하지만 작은 문제는 큰 문제를 위해 양보하게 되네.
같은 책, p.45
고귀한 제군들, 우리를 결속하는 건 나라의 위급한 사정 때문이니 사소한 일로 분열되어서는 안 되오. 상냥한 말을 합시다. 우리가 사소한 의견 차이로 목소리를 높여 논쟁하면 상처 치유에 재를 뿌리게 될 것이오. 그러면, 고귀한 동반자들이여, 진정으로 간청하건대, 틀어진 지점을 듣기 좋은 말로 감정을 자극하여 문제를 크게 만들지 마시오.
같은 책, p.45
나 역시 그러하오. 레피두스. 이렇게 우리는 합의가 되었으니 난 우리가 화해한 내용을 기록하고 이를 봉해 나눠 가졌으면 하오.
같은 책, p.73
모두 손을 잡으시오. 귀청이 떨어지게 풍악을 울려라. 그사이 저는 여러분 자리를 정해 드리고 저 소년에게 노래를 부르게 하리다. 후렴은 옆구리 터질 만큼 크게 부르시오.
같은 책, p.85
특히나 누군가 혹은 누군가의 친족의 죽음에 진심으로 슬퍼하는 모습이 놀라웠다. 그들은 당시 정말 그랬을까. 극의 내용처럼 실제로 세 인물이 즐기는 시간까지도 함께 보냈다면 정말 그랬을지도 모르겠다.
이봐요, 에노바르부스, 안토니우스가 율리우스 카이사르가 죽은 걸 보고 땅이 울리게 울부짖었잖소. 빌립보에서 브루투스가 살해당한 걸 보고도 그랬고.
같은 책, p.95
이렇게 위대한 자가 쓰러질 땐 더 큰 굉음이 울리는 법이오. 이 둥근 지구는 소리에 놀라 사자들이 거리로 몰려오고, 시민들은 반대로 사자 굴로 들어가는 혼돈이 생긴다. 안토니우스의 죽음은 한 사람의 운명이 아니라 그의 이름에는 세상의 절반이 달려 있다.
같은 책, p.190
여왕더러 행복하게 지내라고 명하시오. 그녀는 우리 몇 사람이 얼마나 명예롭고 친절하게 여왕을 위해 결정했는지 조만간 알게 되리다. 카이사르는 상냥하게 처우할 것이오.
같은 책, p.192
그리고 아주 도입부부터 결말까지 계속해서 운명을 떠올리지만 거스르지 못하고
(미쳐 버린 끝에 물에 빠져 죽은 비참한 운명, ≪햄릿(1603)≫이 떠오른다.)
이 쾌락도 운명의 수레바퀴가 바뀌면 반대로 고통이 되는 법!
같은 책, p.21
그래, 강한 힘이 힘끼리 꼬이고 있네. 운명은 결정되었고, 모든 것이 끝났다.
같은 책, p.175
한순간의 잘못된 선택으로 비극적 파멸을 맞는다.
클레오파트라가 죽었는데도 난 이렇게 비열하게 살아 신들의 혐오함을 받아야 한다니. 지난날 천하를 칼로 호령하고 광활한 바다를 함대의 도시로 만들었던 내가 여자만큼의 용기도 없었던가! 내 목숨을 끊어 죽음으로 저 카이사르에게 난 자신을 정복했다고 말했던 여왕에 비하면 아무것도 아니지. 에로스 넌 내게 맹세했지. 불명예와 공포가 필연적으로 몰려와서 상황이 어쩔 수 없으면 넌 내 명령으로 날 죽여주겠다고 했지, 자 지금이 바로 그때니. 적절한 시기에 날 치시오. 카이사르가 날 이겼소. 그대의 뺨을 붉게 하시오.
같은 책, p.176
한편, 셰익스피어의 희극에서는 행복과 평화 같은 온화한 것을 주제로 하여 코미디적인 대사와 보조 인물들(특히나 광대와 같은)이 마치 우리 판소리에서 추임새로 흥과 분위기를 돋우는 '고수'처럼 분위기를 띄우고, 마지막에는 여러 커플이 탄생하며 끝난다.
이러한 시각으로 바라보았을 때 셰익스피어의 ≪클레오파트라와 안토니우스≫는
주요 인물들이 욕망적이고 결말에서는 운명을 거스르지 못한다는 점에서 비극 같지만,
과장된 대사와 다소 웃음을 주는 주변 인물들의 모습에서는 희극적 면모가 보인다. 결말이 정해져 있는 실제 역사를 기반으로 극작품을 창작 및 각색했기에 비극과 희극의 경계에 있을 수 있었으리라고 본다.
이번에는 셰익스피어의 희극 중 가장 좋아하는 ≪베니스의 상인(1596)≫을 함께 두겠다.
셰익스피어의 ≪클레오파트라와 안토니우스≫에서 희극적인 면모는 첫째 음악적 요소에서
자네의 마음은 출렁이는 대양 위를 넘실대고
있는 것일세. 거기에서는 자네의 상선들이
웅장한 돛을 달고 바다 위의 귀족이나 부호처럼 혹은
화려한 꽃수레인 양 군소 선박들을 내려다보며
그 튼튼한 날개로 곁을 지나가면 이들 군소 선박들은
굽실굽실 경의를 표한다네.
문학동네의《베니스의 상인》 p.10
오소서! 포도나무 대왕! 통통한 취한 눈의 바쿠스 신이시어! 그대의 통들에 우리의 걱정을 빠뜨리고 그대의 포도나무를 우리 머리에 왕관처럼 씌우네. 부어라 마셔라 세상이 돌 때까지. 부어라 마셔라 세상이 돌 때까지.
히스토리퀸의《클레오파트라와 안토니우스》 p.143
둘째 주변 인물들의 배신적 모습에서
(개인적으로 에노바르부스를 독특한 주변 인물로 둔 것이 신의 한 수라고 본다.
역시 감초를 잘 살리는 셰익스피어.)
아니면, 긴박한 상황을 위해 그대들이 서로 사랑을 빌린다면, 폼페이우스 소식이 안 들릴 때, 사랑을 되돌려주시오. 한가해지면 얼마든지 말다툼할 시간이 있을 거요.
같은 책, p.43
이 일 때문에 난 더 이상 네 쇠락한 운명을 따르지 않으리라. 원하는 바를 해 주겠다고 했는데 받아 주지 않는 자에게 기회는 두 번 다시 없으리니.
같은 책, p.83
우리 장군의 머리가 차츰 쇠약해지니 심장으로 채우나 보다. 용기가 이성을 잡아먹으면 싸움에서 휘두르는 칼도 녹슬게 되지. 장군님을 떠날 방법을 찾아봐야겠어.
같은 책, p.140
셋째 비극의 특징인 주요 인물의 죽음에서조차 드러난다.(아주 특이했다.)
어째서? 안 죽지? 죽지 않았는가? 근위대여, 여봐라! 오, 나를 죽게 해 다오!
같은 책, p.178
안토니우스. 나를 사랑하는 자는 따라 죽어도 괜찮소.
근위대원 1. 저는 아닙니다.
근위대원 2. 저도 아닙니다.
근위대원 3. 아무도 아닙니다.
같은 책, p.179
거기에 더해 넷째 질투나 겁처럼 인간의 나약함에 빠진 클레오파트라의 모습에서도!
(심지어는 마지막에 소동을 일으키는 주체가 클레오파트라가 되는데,
이런 느낌의 '소동'은 보통 셰익스피어의 희극에서 등장한다.
우당탕탕 소동이 벌어지고, 이를 급작스레 해결하며 사랑에 빠진 모두가 연인이 되며 끝난다.
하지만 여기에서는 이 또한 틀어져 있는데, '희극'에서 스토리텔링의 중심부에 서 있는
'우당탕탕 소동' 플로우가 '비극'적 결말을 낳는다.)
그것은 별로이군. 장군님이 그녀를 오래 좋아할 리는 없겠다.
같은 책, p.98
목소리도 둔탁하고 난쟁이 같아. 그녀의 걸음걸이에는 위엄이 있나? 그대가 그녀의 위풍당당한 걸음걸이를 본 적 있으면 말해보아라.
같은 책, p.99
나 좀 살려줘, 내 여인들이여! 오, 그는 방패나 탐나서 싸우다 미친 텔라몬보다 더 미치고 말았어. 테살리아의 산돼지도 저렇게까지 미쳐 날뛰지는 않았어.
같은 책, p.171
사당 안으로 가자! 마르디안, 가서 그에게 내가 자결했다고 하게. 내가 마지막으로 한 말이 "안토니우스"였다고 말하게. 그리고 그리 말할 때 부디 슬프게 말하게. 그러니, 마르디안, 그분이 내 죽음을 어떻게 여기는지 내게 보고해 주게. 사당으로 가자!
같은 책, p.171