돌봄에 대한 직관적 관찰

박지영 작가님의 ≪복미영 팬클럽 흥망사≫

by 젊은최양

머릿속에 자꾸만 ≪복미영 팬클럽 흥망사≫가 납작하게 가라앉는 영상이 재생된다. 어떤 이야기들은 바닥에 납작하게 붙어간다. 그 안의 글자들은 지면에 바짝 판판해진다. 하지만 너무도 영화적인 캐릭터들은 너무나도 입체적이어서 픽션이 진짜로 설득이 되고 배경과 상황이 종이 바깥으로 3D로 튀어오른다.


정보라 작가님의 ≪아이들의 집≫이 보호와 지원이 필요한 어린이와 청소년, 신체적 정신적으로 장애를 가진 사람들, 다른 지향점을 가지고 있는 사람들 등 사회적 약자들을 지키고 기르는 것이 당연시된 근미래를 오싹한 SF로 풀어낸다면, 박지영 작가님의 ≪복미영 팬클럽 흥망사≫는 희극적인 해학의 장을 현실로 보여주며 다소 소란스럽게 한풀이를 한다.


두 작품을 나란히 두고 보면 한국적인 것의 미래와 한국적인 것의 너무도 현재를 볼 수 있다. 작품의 갈래도 그렇지만 그 속에 주로 등장하는 인물들의 연령대까지도 이 지점을 통과하고 있다는 점이 신비롭고 '이모들의 돌봄'이라는 공통점 또한 두 작품을 비교해볼 수밖에 없도록 한다.



"이모는 그 애 죽은 거 봤어요?"

가루가 물었다. 무정형은 한순간 굳어졌다.

"이모 그런 거 조사하는 일 하잖아요?"

무정형은 고민했다 그리고 마침내 고개를 끄덕였다. 가루는 열두 살이었다. 이미 진실을 알고 있는 아이에게 거짓말을 해봤자 소용없었다.

열림원의《아이들의 집》 p.76



소심하고 우유부단한 복미영이 스스로 복미영 팬클럽을 만든 것은 하늘의 명을 깨닫는 나이라는 지천명(知天命)을 지나고도 6년이 되었을, 56세가 되는 봄이었다.

현대문학《복미영 팬클럽 흥망사》의 첫 문장



"뭘 읽으세요?" 묻기에 표지를 보여주니 얼핏 입가에 미소가 번지더니 "이모님, 그 책 재미있으세요?" 하고 또 물었다. 그래서 "네, 흥미롭네요." 대답하니 혼자 뭐가 그리 웃긴지 후후 웃고는 거실로 나갔다. 잠시 후 복미영이 바지락술찜을 거실에 가져다주고 하은이 자고 있는 방으로 들어가는데 뒤에서 이 소장이 정훈희의 LP판을 틀며 친구들과 나누는 대화가 들렸다. "야, 너네 이모님은 이 밤중에 바지락술찜도 만들어주시네?" 누군가 센스 있다며 감탄하자 이 소장이 왜인지 아주 재치 있는 농담을 하는 사람같이 뽐내는 말투로 대꾸했다. "야, 우리 집 이모님은 수전 손택도 읽어."

그건 어떤 의미였을까?

같은 책, p.8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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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이들의 집≫에서 무명(無明)의 인물들이 무정형, 가루, 구, 삼각형, 정사각형, 마름모, 표, 관 등 형태(形態)적으로 표현된다면, ≪복미영 팬클럽 흥망사≫에서는 색(色)으로 등장한다.



"가루우우우우!"

천둥 같은 소리가 식당을 울렸다. 무정형과 정사각형은 가루와 함께 동시에 돌아보았다.

삼각형이었다 전동 휠체어를 탄 삼각형이 가루의 이름을 외치며 돌진해 오고 있었다. 그 뒤에서 줄넘기가 함께 달려왔다.

"삼가아아아악! 줄다리이이이이!"

가루도 소리치며 기뻐했다.

열림원의《아이들의 집》 p.86



이야기의 시작은 그 일을 겪고 말을 꺼낸 본인이지만 이야기의 결말은 누구라도 맺을 수 있는 것, 구체적인 세부사항도 얼마든지 수선 가능한 것 등으로 바뀐 데에는, 사실 동네북의 사연이란 게 듣다 보면 재능 있는 악플러인 드라마 퀸 다홍 씨의 이야기나 뮤직 복싱체육관 관장님인 맷집 좋은 보라 씨의 이야기나 자신의 글이 가장 인정을 받은 순간이 동네 북클럽에서 들은 사연을 각색해 라디오 컬투쇼에 보내어 채택 기념상품으로 열무김치 4킬로그램을 받은 거라며 자랑 아닌 한탄을 하는 웹 소설 작가 노랑 씨의 이야기나 모두 고만고만한 고통과 상처와 억울함과 불행을 담은 거기서 거기라서 가능한 일이기도 했다.

현대문학《복미영 팬클럽 흥망사》 p. 9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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약자를 말한다면, 속으로 '그만'을 외쳐도 황모과 작가님의 단편 《10초는 영원히》까지 가슴 아프게 다시금 떠올리게 된다.



"우리를 봐. 이곳에선 아픈 자들에게 그 어떤 처치도 하지 않았어."

(중략)

간수들은 우리에게 소년범, 사회 부적응자에 더해 한 가지 이름을 또 붙였다. 공상 구현병, 희귀성 망상 질환자.

위즈덤하우스의 위픽 시리즈 중 《10초는 영원히》 p.7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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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지만,

≪아이들의 집≫이라는 차가운 미래의 스릴러가 돌봄을 당연시하는 사랑을 완전히 깊숙이 뿌리박아 전제한다면, ≪복미영 팬클럽 흥망사≫에서는 사랑에 대한 부정이 이야기를 끌고 간다. 현실적인 부담이 기본적으로 피어오르는 감사와 사랑을 억누르고 외면하도록 다정한 사람이면서 아닌 척하게끔 한다. 전지적 작가시점은 다른 인물들은 성씨를 붙인 본명으로, 또는 무명의 색깔로 부르지만, 이모들에게만은 '이모'라는 호칭을 확실하게 붙인다.



아픈 은수 이모를 누가 부양할 것인가. 자신이 부양의 책임을 떠맡는다는 선택지는 애초에 없었다. 베로니카가 할 수 있을 리도 없었다. 그러니 그 책이을 누구에게 떠넘길 것인가, 엄밀히 말하면 다 쓴 이모를 누구에게 버릴 것인가가 김지은이 당장 해결해야 할 문제였다.

같은 책, p.13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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복미영은 마치 한 잔의 위스키와 한 모금의 담배만을 바라며 집 없이 자신만의 방식대로 사랑하고 살아가는 영화 ≪소공녀≫의 미소 같다. 젊은 시절부터 이모로만 살아온 중년의 미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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요새는 많은 이야기들이 비유인 듯하다가도 꽤 직관적이다. ≪아이들의 집≫과 ≪복미영 팬클럽 흥망사≫는 다른 듯 '이모들의 돌봄'을 직관적으로 관조한다는 점에서 동일하다. 여기에 ≪복미영 팬클럽 흥망사≫는 작품의 성격에 맞게 지평을 넓히는 말장난이 많이 등장한다. 그것들을 지켜보고 있노라면 종종 종이에 찍힌 글자들로 예술을 하는 조르주 페렉이 떠오르기도 하고, 우리나라 엄마 또래 어르신들 특유의 말장난들이 두둥실 돋아나기도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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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키다는 것과 버림의 대비, 그리고 한 테두리 안에 속해 있는 돌봄을 독자들에게 다른 색의 안경을 건네는 두 작가님의 작품으로 바라보는 것만으로도 아주 흥미로웠다.


그런데 나에게 작품 그 자체만큼이나마 놀라움을 주었던 것 이 책의 콘셉트와 실제 마케팅의 행보였다.

다음은 현대문학 출판사 인스타그램의 서평단 모집 게시글. 이미지를 넘겨보지 않았다면 서평단 홍보 이미지인 줄 몰랐을 것 같다. 콘셉트에 완전 충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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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리고 다음은 책과 함께 배송된 저자님의 손편지(+하찮고 귀여운 하트)와 스티커 굿즈, 책에서도 언급되는 '복미영 팬클럽 특전 - 1회 버리기 신청권'! 이런 포인트들로 책 자체가 선물꾸러미처럼 느껴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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