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상의 다면성을 품고

기무라 류노스케의 ≪셰익스피어 영감노트≫

by 젊은최양

광고라는 필터를 낀 채 문화와 예술을 바라보는 ≪B급 광고 인문학≫, 의료 전문인의 시선으로 영화를 내다보는 ≪오퍼레이팅 시어터≫. 빡빡한 일상과 숙제 같은 읽을거리들에 신나게 바쁘면서도 한 번씩 기운이 탁- 빠질 때 중간중간 슉슉 읽히는 쉬운 인문학 도서는 활력을 불어넣는 쉬는 시간처럼 다가옵니다. 빨리 읽히기도 해서 한 권을 빠르게 완독했다는 성취감도 맛보게 합니다. 지금까지 보았던 쉬운 인문학 도서들에는 책이 바라보는 주제와 저자의 본업 사이 간극이 다소 존재하기는 했습니다. 저자가 해당 분야의 깊은 전문가가 아니기에 오히려 설득력 있는, 일반인도 이해하기 쉬운 글을 써내려갔으리라고 생각합니다.


하지만 이번에 읽은 또 다른 "쉬운" 인문학 도서 ≪셰익스피어 영감노트≫는 조금 다릅니다. 셰익스피어 작품을 전문적으로 다루는 일본의 연출가 기무라 류노스케가 저자이기 때문입니다. 거기에 '과외수업 번역의 시간'이라는 챕터를 통해 셰익스피어의 전 작품을 혼자서 20년에 걸쳐 완역한 역자 마쓰오카 가즈코와의 대담까지 담겨 있습니다. 그 어느 때보다 책이 다루는 주제가 가리키는 방향으로 기다란 깃대를 높이 들고 앞장서는 사람들이 쓴 글이라는 뜻입니다. 그만큼 셰익스피어라는 인물과 그의 37편에 이르는 작품(=희곡)들 그 자체는 물론 현대 연극판(?)에서 직접적으로 어떻게 번역되고 연출되고 연기되는지 어렴풋 가늠할 수 있는 시간이었습니다. 문학과 예술의 근본에 호기심을 가득 품은 독자들을 위해 전문가임에도 쉬운 말로 애썼음이 느껴졌습니다.


작년에 문학을 좋아하려면, 콘텐츠를 더 깊게 탐닉하려면 셰익스피어부터 알아야겠다는 욕심에 잔뜩 읽어내려갔던 작품들이 떠올랐습니다. 이번에는 ≪셰익스피어 영감노트≫에서 말하는 셰익스피어와 셰익스피어의 작품의 특징을 기준으로, 작년에 읽어내려갔던 그리고 연극으로도 감상했던 셰익스피어 국내 번역본들 발췌를 함께 살펴보려고 합니다.




말, 말, 말


셰익스피어 비극의 주인공들은 한결같이 고귀한 인물이지만 욕망을 가지고 있습니다.

(맥베스 - 야망, 햄릿 - 우유부단, 리어왕 - 교만, 오셀로 - 질투)

극장 뒷자리에 앉으면 무대가 잘 보이지도 않던 시절, 무대장치나 연출로 시선을 끌기보다는 귀로 들으며 즐기게끔 쓰여, 대사들이 짧고도 강렬하고 호흡이 느껴지며 언어유희가 흘러넘칩니다.



아름다운 것은 추한 것, 추한 것은 아름다운 것.

- 각주: 세상의 어떤 현상이나 사물도 가변적이고 양면적이라는 의미와, 일차원적이고 이분버적인 해석을 유보하려는 입장이 이 역설에 집약된다.

열린책들의 《맥베스》



그렇게 그분들은 곱절의 공격을 다시 곱절로

적들에게 퍼부었습니다.

- 각주: 이 극에서 <double>이라는 단어는 여러 가지 형태로 변형되며 셰익스피어의 그 어떤 극에서보다 많이 쓰인다. 이 대사에서도 <double/doubly/redouble>과 같이 여러 어형으로 세 번이나 사용됨으로써 셰익스피어가 이를 예사로이 사용한 것이 아님을 보여 준다.

같은 책



이렇게 궂으면서도 아름다운 날은 처음 보는군.

- 각주: 이는 제1장에서 마녀들이 읊은 대사 <아름다운 것은 추한 것, 추한 것은 아름다운 것>에 대한 반향이라 할 수 있다. 이 말을 통해 <주문이 걸렸다>라는 마녀의 직전 대사대로 맥베스가 그들의 주문에 걸렸음을 알 수 있다.

같은 책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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알고 보면 똑같다? 그의 '2가지 구조'


한편, 셰익스피어의 희극에서는 행복과 평화 같은 온화한 것을 주제로 하여 코미디적인 대사와 보조 인물들(특히나 광대와 같은)이 마치 우리 판소리에서 추임새로 흥과 분위기를 돋우는 '고수'처럼 분위기를 띄우고, 마지막에는 여러 커플이 탄생하며 끝이 납니다.

장르는 비극과 희극, 역사극 등으로 나뉘지만 5막으로 구성된다는 것과 철저한 기승전결주의를 따른다는 셰익스피어만의 확고한 이야기 법칙이 있었습니다.



사랑은 무엇일까? 내일일 수 없는 것

오늘의 만남은 오늘의 즐거움

앞으로의 일은 알 수가 없는 것.

내일을 기다려도 무슨 보람 있으랴

자아 어서 입맞춰주오, 그리운 님,

젊음은 어이 없이 사라지는 것이니.

전예원 세계문학선 《십이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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맺음 역 하는 아가씨를 보는 게 유행은 아니지만

서두 역의 남자를 보는 것보다 더 꼴불견은 아니랍니다.

술맛이 좋으면 술집 광고가 필요 없듯이

희곡이 좋으면 맺음말이 필요 없는 게 사실이죠.

하지만 좋은 술도 광고를 하니까 좋은 희곡도 좋은 맺음말의

도움으로 더 나아지겠죠. 그럼 제 처지는 어떻죠?

좋은 맺음 역도 아니고 좋은 희곡을 대신하여

여러분의 환심을 사지도 못하다니 말입니다.

전 거지 행색을 하진 않았어요. 그래서 구걸은 어울리지

않을 겁니다. 제 방식은 여러분들에게 마술을 거는

건데 여자들부터 시작하죠. 오, 여자들에게 명하노니,

남자들에게 품은 사랑을 위하여 이 희곡을 당신들이

기쁜 만큼 좋아해 주세요. 그리고 오, 남자들에게

명하노니, 여자들에게 품은 사랑을 위하여

(선 웃음을 보니까 아무도 그들을 미워하지 않으시는

모양인데) 이 희곡이 당신들과 여자들 가운데서

기쁨을 주기 바랍니다.

민음사의 《좋으실 대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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셰익스피어의 두 얼굴

셰익스피어가 살았던 1564~1616년 유럽은 평균 수명이 30~40세 정도였던 대항해 시대입니다. 영국에서는 100년 전쯤 장미의 전쟁이 일어났고 붉은 장미인 랭커스터 가문이 승리하여 헨리 7세가 왕위에 오르고 튜터 왕조가 탄생합니다. 셰익스피어는 연극으로 일반 국민들은 물론 튜터 왕가의 사람들까지도 기쁘게 해야 했습니다.

당시 종교적으로는 프로테스탄트와 가톨릭이라는 두 기독교 그룹이 대립하고 있었습니다. '오직 성경, 오직 믿음'이란 주장을 내세운 종교개혁으로 영국 왕실도 로마 교황청과 결별하며 프로테스탄트를 국교로 채택합니다. 가톨릭교의 부모 아래에서 성장한 셰익스피어는 복잡한 가치관이 뒤엉켜 정답은 하나가 아니라는 것을 실감하며 세상의 다면성을 작품으로 보여줍니다.



마찬가지로 외양은 속과 아주 다를 수 있지.

세상은 여전히 가식에 속고 있어. 법에서도

아무리 더럽고 부패한 소송도 그럴싸한 언어로 양념을 하면

악행의 외양이 희미해지지 않는가? 종교에서도

아무리 저주받을 잘못이라도 목자가 엄숙한 얼굴로

축복해주고 성경으로 다시 증명해주면

그 흉악함은 번지르르한 장식으로 가려지는 것이 아닌가?

문학동네의 《베니스의 상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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셰익스피어의 시대를 지나 우리 자신의 시간으로


다시 말의 시간으로 돌아와봅니다. 셰익스피어 작품에서 가장 중요한 것은 그의 표현력인 듯합니다. 비슷한 표현을 변주하여 되풀이하면서, 몰아치는 말의 힘으로 감정을 끌어올립니다. 또한, 그는 쓰고, 표현하고, 연기하는 것으로 말미암아 무형물들이 탄생된다는 것을 알았던 것 같습니다. 그렇기에 어느 시대의 독자에게도, 감상자에게도 '살아 있는' 공간감을 선물합니다. 우리의 생활과 인생에 밀착시켜 읽어낼 때 그 공간 안에는 '정말 숨 쉬는' 인물들이 깨어납니다. 그들은 실제 우리의 삶 속에, 내 옆 자리에도 있을지도요.



(깨면서) 오, 헬렌, 여신, 요정이여, 완벽하고 거룩하오!

그대 눈을 내 님이여, 어디다 비할까요?

민음사의 《한여름 밤의 꿈》



시인의 두 눈이 세련된 광기로 구르면서

하늘에서 땅, 땅에서 하늘까지 쳐다보고

알려지지 않았던 형상들을 상상의 힘으로

구체화함에 따라 시인의 펜촉은

그것들을 형체 있는 것으로 바꾸면서

무형물들에게 거주지와 이름을 준다오.

(중략)또는 밤에 무언가가 두렵다고 상상하면

덤불은 얼마나 쉽사리 곰으로 보입니까!

같은 책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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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근에 연출되어 직접 관람했던 연극 《햄릿》과

조선시대를 배경으로 각색하여 눈길을 끌었던 국립극단의 열린 객석 연극 《십이야》,

그 시절 배경을 깔끔하게 살린 황정민 배우 주연의 연극 《맥베스》까지 포스터를 남겨봅니다.

참고로, 《햄릿》은 성별을 뒤바꾼 각색이었는데, 햄릿 공주가 성별만 여자지 남자 흉내를 내는 여배우 같다는 느낌은 지울 수가 없어서 아쉽긴 했습니다.

《맥베스》는 배우 라인업이 대단해서 진심으로 피케팅이었는데, 좋은 자리를 선점했음에도 현생이 너무 바빠 취소했었던... 급 연극 다시 보러 다니고 싶다는 열망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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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리고 추가로 셰익스피어 작품에 관한 관련 게시글.까지.

https://brunch.co.kr/@jeolmeun-mschoi/7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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