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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본본 Dec 30. 2023

아쉽지만 아쉽지 않은,


8년 만의 화이트 크리스마스라고 했나. 크리스마스에 대단한 계획이 있었던 것이 아니었지만 내심 굉장히 아쉬웠다. 돌이킬 수 없고, 돌아오지 않는 것들에 미련이 많은 사람은 우울할 수밖에 없다. 손에 쥘 수 없는 것만 탐내는 사람은 현재 주어진 것이 다 하찮아 보이는 법이다. 한국인은 모두 조금씩 예지력을 타고난다는 이야기를 어디선가 보았다. 왠지 떠나는 발걸음이 가볍지 않더랬지. 이번 여행은 뭔가 달랐어. 두고 떠나는 것들에 미련이 많이 남아 자꾸만 눈앞의 태양에 집중할 수가 없었다. 이렇게 근사한 눈이 한국에 내릴 줄 예상했던 건가 봐, 하며 혼자 한국인의 예지력이니 뭐네 하는 남모를 핑계를 대본다.


귀국 후 이틀을 내리 꼬박 잤다. 비행 내내 약을 먹어도 잠들 수 없었기에 근 48시간을 제대로 눈을 붙이지 못한 참이었다. 낮인지 밤인지 모르게 암막 커튼을 쳐두고 잤더니 시간이 얼마나 흘렀는지도 알 수 없었다. 대충 48시간을 못 잤으니 또 48시간을 꼬박 잤겠구나 생각했다. 한국에 도착하자마자 긴장이 풀렸는지 또 머리를 감다가 날개 죽지에 담이 걸렸다. 매번 꼬이는 부분만 걸린다. 굽은 등에 근육이 없는 탓이겠지…하며 파스 약을 잔뜩 바르고 근육 이완제를 먹었지만 통증은 그대로였다. 오히려 점점 통증 부위가 넓어진다. 의식적으로 숨을 풀어 놓으면서 온몸에 힘을 쭉 뺀다. 그래도 그때뿐이고 굳어진 승모근은 결국 병원을 한 번 또 다녀와야만 풀어질 것이다.


그렇게 침대 밖으로 나와 거실을 나갔더니 눈이 부셨다. 비단 아침이라서 뿐만은 아니었다. 창밖이 온통 하얬다. 이렇게 눈이 펑펑 내린 것을 본 지 얼마나 되었더라. 화이트 크리스마스를 보내지 못해 아쉽다 했더니 올해가 가기 전에 더 아쉽지 않을 정도로 많은 눈이 내렸다. 베란다에 나가 창문을 열고 눈 내린 아파트 단지 전경을 한참 지켜봤다. 잠도 푹 잤고, 엄마가 차려준 밥도 먹었고, 달달한 게 당기는 참이라 자주 가던 카페에 가야지 결심했다. 보통은 눈이 이렇게 오면 집에 꼼짝 않고 있기 마련이겠지만, 나는 마치 오늘을 즐기지 않으면 안 될 것 같은 마음에 조급증이 일었다. 쉽게 그칠 눈이 아니었고, 쌓인 양도 만만치 않아 녹을 틈도 없이 눈은 계속 쌓여만 갔지만 얼른 저 하얀 눈을 밟아야 될 것 같았다. 대충 옷을 껴입고 나갈 채비를 했다. 눈을 밟다 보면 입안에 또 문장이 한가득 굴러다닐 것이기에 키보드도 챙기고, 저 하얀 눈이 내리는 풍경과 어울리는 노래를 듣다 보면 책이 한 권 읽고 싶어질 테니까 못 읽은 책도 챙겼다. 누구와 약속한 시간이 정해진 것도 아닌데 서둘러 나왔다. 오늘은 제대로 즐기면 만족스럽지 않았던 여행에 골이 났던 마음도 좀 누그러질 것 같았다. 이러려고 일찍 귀국한 모양이야! 생각하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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