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가 어떤 상태인지 아는 것과 모르는 것은 눈을 뜨고 다니는 것과 감고 다니는 것의 차이라고 해야 할지도 모르겠다. 이리저리 휩쓸려 내가 어디에 발을 딛고 있는지, 어디에 부딪히지는 않을지 온 감각이 예민해지지만 도통 내가 어디에 있는지는 알 수 없는 그런 상태. 눈을 뜨고 바라보면 내가 파도 앞에 있는지, 푹신한 잔디를 앞에 두고 있는지 알고만 있다면 발을 내딛는 게 어렵지 않다.
요즘 그런 차이를 경험하고 있다. 나는 크게 달라진 것 없이 여전히 복잡하고 예민하다. 아직도 잠을 푹 잘 수 없고, 어깨가 뭉치고, 생리 때가 다가오면 호르몬의 노예가 된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나는 더 이상 막막하거나 두려워하지 않는다. 무엇인지도 모르고 두려워하던 때와는 다르다. 내가 두려워하던 것이 무엇인지 정확하게 바라보게 된 후 아니 사실은 실재하지도 않는 실체였다는 것을 알게 된 후 더 이상 상상에 잡아먹히지 않을 수 있게 되었다.
다시 말하지만 그렇다고 해서 나에게 큰 변화가 일어난 것은 아니다. 나는 오늘도 여전히 찌뿌둥하게 일어났고, 여전히 소리 지르고 싶은 충동을 느낀다. 하지만 그 안에 머물러있지 않고 한발 내디뎌 의식적으로 몸을 씻고, 머리를 반듯하게 묶고, 선크림을 꼼꼼하게 바른다. 몸이 조이지 않는 옷을 입고, 먹고 싶은 음식을 마시고, 가고 싶은 카페로 향한다. 30분 안쪽으로 해야 할 업무도 끝내고, 지난 이틀 동안 마시고 싶었던 라테를 마신다. 그리고 머릿속에 뒤엉켜있던 스케줄을 정리한다. 그렇게 몸을 움직이면서 감정이 지나가가기를 기다린다. 오늘은 그냥 좀 쳐지는 날이구나, 하고 내가 가장 편안한 자세를 취할 수 있게 자리를 정돈해 준다. 마음껏 어리광 부릴 수 있게 한다.
많은 것이 달라지기를 바랐다면 실망했을 것이다. 완벽해야만 할 것 같다는 마음속 욕심이 오히려 완벽해지기를 포기하니 충족되었다. 이상할 노릇이다. 세 번째 말하지만 나는 여전히 지난달의 나와 크게 달라진 바가 없다. 여전히 경제적으로 풍족하지 못하고, 강박적이고, 건강하지도 않다. 달라진 것이 있다면 그런 나를 받아들이게 되었다는 사실뿐이다. 그리고 이렇게 되뇐다. 경제적으로 풍족하지 못한 것의 반대는 경제적으로 풍족해지는 것이 아니다. 적당히 소득이 생기면 그것으로도 충분하다. 강박에서 벗어나는 것이 강박적이지 않다고 말할 수 없다. 적당한 강박은 일상의 루틴을 만든다. 사람이 완벽하게 건강할 수 없다. 30년을 비-건강의 상태로 살아온 사람은 적어도 ‘당장’ 모든 병을 고칠 수 없다. 건강은 누적되는 것이다. 오늘의 내가 어제의 나보다 조금 더 건강하다면 그걸로 됐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