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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이이진 May 01. 2024

세상이 쉽게 변하는 것 같다가도 아닌 듯도 해요

엔터테인먼트 산업은 여전할까

또 꽤 오래전 얘기이고 그런데 지금도 변화가 전혀 없이 여전히 그런 것 같아서 글을 씁니다만, 제가 신인 디자이너 시절에 여러 신인 디자이너들이 무대에 옷을 올리는 쇼를 한 적이 있습니다. 8명 정도가 한 무대에 각각 8벌 정도를 올리는 패션쇼였는데, 주최 측이었는지 무대 진행을 하는 팀이었는지가 전화를 해서는 제 브랜드 순서가 첫 번째라던가 두 번째라면서 빨리 와서 준비를 하라고 하더군요. 아무래도 8명이 하는 패션쇼이다 보니까 가장 먼저 하거나 가장 마지막에 하는 사람이 눈에 띄는 그런 거였던 거죠. 


여럿이 하는 건데 그래도 눈에 띄면 좋은 거니까 부랴부랴 준비를 해서 갔는데 아무리 기다려도 패션쇼 리허설을 안 하더군요. 듣고 보니 가장 처음에 하는 분이 아직 안 왔다면서 무작정 기다리라는데 제가 젊어서는 좀 싹수가 없는 사람이라 무작정 기다리라고만 하니 답답하기도 해서 이게 대체 뭔가 그랬었습니다. 그리고는 정신없게 패션쇼를 준비하고 보니 제가 유야무야 4번째로 순서가 바뀌어 있더군요. 


믿을지는 모르겠지만 저는 사실 1번째거나 2번째거나 4번째거나 상관이 없이 무작정 기다리는 말에 짜증이 났던 건데, 얼추 보면 순서가 늦어져서 짜증 내는 사람이 되겠더라고요. 그 뭔가 쉬쉬하는 어색한 분위기가 이상한 거죠. 


순서야 늦어질 수도 있고 빨라질 수도 있고 그런 거겠지만 제가 마치 순서가 늦어져서 짜증 내는 사람처럼 여겨지는 그런 뉘앙스가 확 풍기면서, 사람이 본인이 원하지 않거나 심지어 그런 생각이 없는 데도 불구하고 어떤 사람으로 만들어지는 건 진짜 순간이겠다 그런 생각을 했었습니다. 디자인에, 대학원에, 전시에, 뭐에, 매장에, 진짜 몸이 열 개라도 모자랄 정도로 일했던 당시 제 피로를 관리하지 못하고 다소 감정적이 된 제 탓도 있겠습니다만, 제가 어떤 사람으로 만들어지는 것을 당시 저는 막을 자신이 없었습니다. 매번 아니라고 내리찍듯이 대꾸하는 게 제가 할 수 있는 방어의 하나였는데, 그것도 계속 하니 지치더라고요. 


자잘 자잘한 것들인데 그냥 넘어가자니 짜증 나고, 아니라고 하면 그때마다 다퉈야 하니까, 일에 지치는 게 아니라 사람한테 너무 치이더군요. 아마 그때 저를 아는 분들 중에는 한 싸가지다 하는 분들도 있을 정도로, 이런저런 관행들, 지시 이런 것들과 자주 부딪혔습니다. 그냥 앞에서 얘기하면 되는데 뒤로 돌고 돌아서 이상한 얘기가 오곤 하니까, 황당하기도 하고 그런 거죠. 무슨 협회 활동 할 때는 같이 회식하고 그럴 때, 먹는 데다가 돈 엄청 많이 쓰니까 그냥 회의실에서 회의하고 그 돈으로 기부하자, 이런 말도 했고 그랬습니다. (물론 부드럽게 말하지는 못했습니다.) 회식도 술자리면 저는 2차는 무조건 거부했고요. 


그리고는 안타깝게 당시 저는 이런 어떤 흐름을 막아보겠다는 용기를 계속 내지 못하고 결국 제가 디자인을 떠나서 이런저런 일을 하다가 다시 디자인으로 논문을 쓰다가 어쩌다가 지금은 비영리 활동까지 흘러왔는데, 다시 그런 사람 일을 하면 휩쓸리지 않고 괜찮을까, 생각할 때가 많습니다. 휩쓸리지는 않더라도 과연 내가 생각하는 게 옳은 거고 그걸 다른 사람에게 요구할 수 있을까, 그런 생각도 많이 하고요. 


저는 성격이나 이런 거에서 남에게 잘 휩쓸리지는 않는 편이고 나름 선하고 악한 걸 두루 경험하면서 그래도 악이 뭔지는 아니까 나쁜 걸 남에게 하게 하진 않을 것 같긴 한데, 그렇다고 누구에게 강하게 뭔가를 요구하면서 끌고 나가는 것에는 약합니다. 제가 지시받는 걸 좋아하지 않는 탓에 저 또한 누군가에게 지시하는 게 아주 취약하죠. 예전에는 제가 생각하는 게 옳은가 자체에 대한 의문도 너무 컸고 그런 혼란 속에서 누군가를 따르지도 않아 내적 갈등이 심했는데, 지금은 그래도 내가 생각하는 게 옳다는 느낌은 상대적으로 더 갖게 되었고, 그래서 이제는 조금 다르게 할 수 있지 않을까 생각은 하지만, 생각만 하지 않으려고 하지만, 노력은 필요하지 생각합니다. 


힘듭니다, 역시, 자기 자신을 바꾸는 것이 세상에서 제일로다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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