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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하지 Aug 01. 2022

6. 인생을 느슨하게 살아간다는 것

넘어져도 돼.


몇 달 전 상담 기간 동안에는 법적 도움이 필요한 분들을 많이 뵈었다.


오늘 말하고 싶은 것과는 조금 다른 문제이긴 하지만, 주변에 잘 아는 법조인을 두고 있었으면 이런 어려운 분을 만났을 때 대신 조언을 구해드리는 게 조금 수월했을까. 하는 속상함을 느끼기도 했다.

무튼 각설하고.


법적 도움이 필요했던 최근에 연이어 만나 뵈었던 내담자들의 상황이 참 오랫동안 

'인생이란 무엇일까?'라는 아주 근원적인 질문을 하게끔 만들어서 이렇게 끄적끄적 기록을 남겨두게 되었다.




우리에게 인생이 열심히 살아간다는 대가로 탄탄대로 같은 삶을 보장해준다면 얼마나 좋겠냐마는

생각보다 인생에는 예기치 않은 수많은 일들이 일어나기 마련이다. 그런 일들이 누군가에게는 기대하지 않던 소중한 기회가 되기도 하지만, 누군가에게는 인생을 포기하게끔 만드는 걸림돌과 어려움으로 찾아오기도 한다.




외아들을 두고 열심히 살아왔던 부부. 

열심히 살고자 하는 아들 기죽이고 싶지 않아 평생 벌어놓은 돈을 모두 아들이 원하는 사업을 펼칠 수 있도록 도움을 줘왔다. 

잘 되겠지, 잘하겠지 믿고 지지해줬지만 수많은 압류건과, 밀린 체납금, 차량 번호판이 영치되고 누군가의 도움 없이는 재기가 어려워지고 나서야, 뭔가 잘못되어간다는 걸 깨달았고, 그때는 이미 너무 늦어버린 후였다.


급기야 그 충격에 아들이 쓰러져 어린아이 같은 모습으로 돌아가버리자 이제 부부에게는 5년여 정도 수많은 일을 겪으면서도 돈은 잃어도 가족이 있으니까, 하고 버텼던 마지막 희망의 끈이 다 끊어져버려, 더 이상 삶을 지속해야 하는 이유를 찾지 못하고 있었다.


한 시간이 넘는 상담이 진행되었다.


'그냥 죽고 싶다.'


'죽음이라는 것 자체는 두렵지 않은데, 이렇게 열심히 내가 살아왔던 세월의 마지막 말이 죽고 싶다는 한 단어로 정리된다는 이 사실이 너무 서럽고, 슬프다...'


하시면서 펑펑 우시는데 그 심정을 내가 감히 이해한다는 말을 꺼내기도 어려울 만큼 축축하고 무거운 심정이었다.


뒤돌아보지 않고 열심히 살아왔던 대가라...


온 힘을 다해 누군가를 응원하고 지지하던 일에 본인의 모든 것을 쏟아부었지만, 그 쏟아부은 대상이 무너졌을 때 세상이 무너지는 그런 상황이라고 볼 수 있었을까.


이분에게는 단순히 병원비, 간병비 부담이 문제가 아니었다. 

수차례의 상담을 통해 '그래 다시 살아가 봐야지' 하고 힘을 얻어도 현실로 나아가면 장애가 남은 아들과, 감당할 수 없는 부채만 남아, 누군가가 대신 책임져 줄 수 없는 재기하기 어려운 답답한 지옥 같은 현실이 기다리고 있다는 것이 거대한 문제였다.


내가 힘을 내시라고, 그래도 모두가 죽음을 선택하는 건 아니라고 말을 한다면 그분은 이 말이 와닿았을까. 그리고 내가 힘을 내라고 한 그 말에 어떤 책임을 질 수 있을까? 그랬기 때문에 유독 나는 상담을 진행하면서 많이 듣는 편을 택하며 침묵을 오래 지킬 수밖에 없었다.


분명 모든 일에 해결 방법은 있지만, 어떤 일을 해결하고자 하는 것에는 의지가 필요하다. 그리고 해결이 되었을 때 살아가야만 하는 이유와 희망이 있어야 삶이 앞으로 나아갈 수 있다. 하지만 이 가족들에게 어떤 것이 남아 있을까. 내가 어떻게 하면 삶의 미련을 드릴 수 있을까. 그런 복잡한 생각이 들었던 것 같다.


'이게 아니면 안 돼.' 하는 무리한 목표와, 

'너만 믿어.' 하는 과한 의지와 지지. 그런 것들이

너무나도 많은 사람들의 삶을 옥죄고 있었던 건 아닐까 싶었다.


결과적으로는 '내가 조금만 더 잘하면 우리 부모님 더 부유하게, 행복하게 살게 해 드릴 수 있는데' 했던 아들의 가상한 마음


'우리가 힘들게 벌어왔던 거 다 자식 잘되라고 했던 거지' 하면서 모든 걸 희생해서 자식을 뒷바라지했던 가늠할 수 없을 만큼 깊은 부모의 마음


그런 것들이 인생을 너무 채찍질하면서, 그 모든 기대와 희망이 허물어졌을 때 그들의 삶을 허망하게, 무의미하게 만들어버린 것 같았다.


인생을 조금만 느슨하게 살았더라면 어땠을까.


어떤 문제든 당연히 일어날 수 있는 것이었다는 걸 온전히 받아들이는 연습도 해보고,

내가 모든 걸 해결해줘야만 한다는 무리한 책임은 주변과 편히 나눠도 보고

넘어지면 잠시 쉬어도 가보고, 누군가의 도움을 받아도 보는 그런 느슨한 일들.


그렇게 조금만 주변을 둘러보면서 왔더라면 더 이상 무엇 때문에 살아야 하지 라는 허무함은 좀 덜했을까.


각자 살아온 인생의 절반 이상을 미친 듯이 달려온 수많은 사람들이 어제도, 오늘도, 내일도

어떤 충격과, 스트레스, 기대에 어긋난 결과, 실망감 등으로 삶에서 쿵하고 넘어져 우리 사회복지실을 찾아온다.


누구보다도 열심히 살아온 사람에게 삶에서의 시련은 너무나도 크고 높다. 차갑고 시리다.


톡톡 털고 일어날 수 있는 일인데도 충격이 큰 나머지 넘어진 그 자리에서 어떻게 일어나는지, 어떻게 걸었는지 아주 기본적인 것을 잊어버린 사람처럼 인생의 시계를 멈춰버리는 사람들이 많다.


너무 많은 것을 성취하려고 애쓰지 말고, 소소한 것에 감사하고 행복을 느껴보고, 어려움을 나누고 내가 풍족할 때는 도와도 주면서 조금 느슨하게 삶을 지탱해주던 벨트 끈을 조정해보는 건 어떨까.


이전에 유퀴즈라는 예능에서 인터뷰하셨던 행복베이커리 사장님이 떠올랐다.


빵을 많이 만들어서 매출을 올리고, 성공하고, 부자가 되고 그런 목표 보다도

이 근처의 아이들이 아침을 굶지 않게 본인의 시간과 재능을 나누고, 그런 아이들이 오가며 건네는 인사에 행복함을 느끼던 그 모습.


그 정도의 느슨함이 우리 각자의 인생에 조금 스며들었으면 좋겠다.


이런 고민과 생각은 잠시 글을 끄적이면서 또 끝내고,

나는 다시 이런 환자분을 찾아 무엇보다도 인생에 미련을 가질 수 있도록, 인생의 시계에 새로운 건전지를 좀 넣어드리러 가야 한다는 걸 안다.


그런 분을 도울 다른 방법을 또 찾아 헤매어 보아야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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