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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하지 Aug 02. 2022

9. 음식을 대하는 우리 부부의 자세




삶의 재미는 여러 가지에서 찾을 수 있지만 우리 부부는 평소 평일에는 각자의 시간을 보낼 수밖에 없는 환경이라 평일은 열심히 일하고, 공부하고, 서로를 만날 날을 학수고대하며 열심히 보낸 다음 주말엔 주중에 머릿속에 서로를 위해 해주고 싶었던 요리들을 같이 만들어보는 재미가 삶의 재미 중 꽤나 큰 부분을 차지한다.


그래서 우리의 일상 속 여유로운 순간들에 대해 되짚어보면 음식 이야기를 빼놓을 수 없다.


잘 완성한 음식을 음미하는 순간도 행복하지만, 사실 음식을 먹는 시간보다 준비하는 시간이 더 길어지기도 하는데, 음식 준비의 시간 그 자체의 재미를 알게 되면 그날부터 요리는 삼시 세 끼를 해결해주는 수단이 아니라, 간직할 취미가 된다. 


오늘의 휘게 이야기는 그런 음식을 대하는 우리 부부의 자세에 대한 이야기로 채워보려 한다.






처음에는 그냥 재미로 시작했던 요리였는데 재미를 담뿍 담은 요리에 맛이 더해지고, 이야기가 더해지고, 함께할 사람들이 또 생겨나고 그러면서 추억이 새롭게 덧입혀지는 과정 속에서 점점 하루를 채워주는 그 음식을 대하게 되는 우리 부부의 자세도 조금 더 진중해진 것 같다는 생각이 들었다.





재료를 다듬는 순간부터, 어떤 그릇에 어떤 커트러리를 사용해서 먹을지 어떤 음료랑 같이 먹을지, 또 음식을 바라볼 때 옆에 어떤 이쁜 꽃이 놓이면 좋을지 그런 걸 같이 고민하고 취향을 담다 보니 요리를 시작하는 순간부터 벌써 재미가 스멀스멀 올라온다.





음식이랑 찰떡같이 잘 어울리는 그릇을 골랐을 때 온전히 우리가 식사하는 시간을 귀하게 대했다는 기분이 든다.


매일 서로 다른 상황에 맞는 옷을 입고 신발을 고르듯 우리가 먹게 되는 요리도 어떤 그릇에 담느냐에 따라 담음새나, 온도, 색이 다르게 느껴질 수 있다. 즉, 음식에 따라 어울리는 그릇을 찾아주면 더욱 좋다.


그런 의미에서 아침에 옷장을 열어 옷을 고르듯, 그릇장을 열어 그릇을 고르는 시간은 우리에게는 요리의 아침을 여는, 요리의 시작이라고 느껴진다 해도 무방할 것 같다.





이 날은, 봄 내음이 나기 시작하니 여리여리한 색들이 눈에 많이 들어왔던 날이었다. 개나리 같이 이쁜 노오란 색과, 이리저리 둘러봐도 너무 이쁜 라넌큘러스가 잘 어울릴 것 같았다. 그리고 파스타에 바지락 육수가 자작하게 있었음 해서 너무 납작한 그릇보다는 오목한 파스타볼을 선택했다.






우리 집 식탁은 화산석 식탁이라 까만색에 대비되는 노오란색이 갑자기 너무 튀게 느껴질까 봐 그릇에도 까만색이 적당히 섞여있음 더 좋을 것 같았고, 테이블 매트 색이 보색을 조금 중화시켜주길 바라며 오늘의 요리를 대하는 우리 부부의 자세와 취향을 이렇게 담아내었다.






두근두근.

그릇을 다 세팅해두고, 음식이 완성되기를 기다리는 너무 즐거운 시간.


오빠가 파스타를 마무리할 동안 나는 같이 마실 음료를 만들고 있는 시간이다.

오늘은 음료조차도 노오란, 엄마표 수제 레몬에이드!





오빠도 나도 너무 좋아하는 봉골레 파스타가 완성되었다.

'예쁘게 담아야지!' 하는 마음 한 스푼,  '많이 먹어야지'하는 욕심은 스무 스푼 정도 담은 욕망의 플레이팅.





음식을 마주하기 위해 앉으면서 마지막으로 채워주는 탄산수.


보글보글 레몬을 감싸며 올라오는 탄산의 기포가 기분을 더 몽글몽글하게 만들어준다.

동시에 같이 내는 쏴아 하는 소리도, 얼른 음식 앞으로 다가가서 축제의 맛을 느껴보라고 축전을 보내오는 것만 같다.





보통 만드는 건 30분, 먹는 건 10분, 치우는 건 1시간이라는 편견 때문에 집에서 요리하는 걸 번거로워하는 분들이 많지만 요리를 만들고, 치우는 전체의 과정에 이렇게 취향을 담으면 먹는 시간도 충분히 음미를 하면서 20분, 30분 늘어나고, 늘어나는 식사 시간에는 대화와 웃음들도 더해진다.



그런 시간에 느꼈던 기분 좋음이 은은한 향수의 잔향처럼 남아, 음식을 다 먹고 치우는 시간에도 지루할 틈이 없게 한다. 정말로.



엄마와 할머니는 아무리 피곤해도 우리 자매를 위해 요리하는 시간만큼은 첫사랑을 만날 때만큼이나 상기된 모습과 행복한 표정을 늘 짓고 있었다.


맛있게 먹어줄 우리를 상상하면서 메뉴를 고르고, 식탁을 차리고, 기대에 부푼 풍부한 표정까지 곁들여 식탁에 턱을 괴고 맛있게 먹는 우리를 바라보면서 흐뭇해하던 그 모습을 보고 자란 나와, 그리고 구태여 물어보지 않아도 나와 같은 충분한 사랑을 받고 자랐을 오빠가 우연처럼 만나서, 이렇게 우리만의 식사 시간을 또 만들어가고 있다.


감회가 새롭군.





음식을 대하는 우리의 자세마저도 뿌리와 역사가 있었음을 되새겨보면서 항상 행복함의 근원엔 우리 부모님이 계셨다는 사실을 또 배우게 되는 것 같다.


앞으로도 소중한 우리 부부의 식사 시간에 그동안 받아온 사랑을 더해 우리의 취향을 나날이 담뿍 담아보아야지 다짐해보았던 어떤 하루의 식사시간.


맛있는 한 끼. 정말 잘 먹었습니다.


모두들 오늘의 저녁 식사 시간엔 각자의 취향을 담아 조금 더 느긋하고 충분하게 고된 하루를 보낸 나를 다독일 수 있는 시간을 가져보는 건 어떨까. 그게 휘게의 시간이지, 보다 더 특별할 게 있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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