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런 음악도 한번 드셔보세요 @ieummmsae
자취방 한편에 기대어 천장만 멍하니 쳐다보던 친한 형이 입을 열었다. "영화관에서는 사람들은 영화에 집중하고, 도서관에서는 책에 집중하고, 미술관에서는 미술 작품에 집중하는데, 음악에만 집중하는 곳은 왜 없는 걸까?" 하긴 그렇긴 하다. 우리는 다른 예술 작품들과 다르게 음악을 집중하여 듣고 감상하는 시간이 적다. 음악은 카페에 흘러나오고, 길거리에서 흘러나오고, 식당에서 흘러나오고, 우리가 끼고 있는 작은 이어폰 속에서도 흘러나온다. 음악은 항상 우리 곁에 있다. 하지만, 우리가 그 음악들을 '감상'하기 위해 투자하는 시간은 과연 얼마나 될까? 음악은 분위기를 살려주고, 느낌을 채워준다. 하지만 우리가 진짜 그 음악이 무슨 얘기를 하고 있는지 한 번이라도 귀 기울여 들어본 적이 있나? 대부분의 사람들이라면 거의 없을 것이다. 음악을 사랑하는 친한 형과 나는 더욱 많은 사람들이 음악을 다른 예술 작품처럼 자세히 분석하며 감상하는 재미를 알 수 있으면 하는 바람이 생겼다. 그리하여 우리의 자취방은 음악만을 위한 작은 음악 감상실이 되었다.
작은 자취방 안에서 울리는 음악은 그 어떤 음악보다 진했다. Frank Ocean - Blonde를 듣기 위하여 모인 인원은 4명, 하지만 우리 네 명이서 나누는 대화는 그 무엇보다 재미있었다. 우리가 마시는 술 보다 향기로웠으며 후덥지근한 열기는 음악에 온전히 집중하는 그 정신을 보여주려고 하듯, 방안을 꽉꽉 채웠다. 음악을 감상하고 나누는 감정과 생각은 혼자서는 절대로 보지 못할 음악의 새로운 면들을 제시해 주었으며, 지겹도록 많이 들었던 음악임에도 불구하고 새롭고 신선한 자극을 느끼게 해 주었다. 좋은 음악, 좋은 사람들과 함께 하는 시간은 딱 한 가지 아쉬움을 남겼다. "더욱 좋은 음악 감상 시설에서 들을 수 있으면 얼마나 좋을까?" 아무리 좋은 음악이라도 늦은 밤, 옆집의 눈치를 보며 싸구려 스피커로 들어야 하는 환경은 어쩔 수 없는 갈증을 불러왔던 것이다. 더 좋은 스피커로 주변 눈치 안 보며 빵빵하게 틀 수 있는 곳이라면 얼마나 좋을까.
그리하여 우리가 찾은 장소가 바로 '공주 살롱'이다. 좋은 분위기와 빵빵한 스피커, 우리 모임이 꼭 필요한 장소였다. 그렇게 우리들만의 작은 음감회 '이음세'는 자취방 안에서 울리던 작은 소리를 따라 네 벽을 넘어 멀리멀리 펴져나가기 시작하였다.
우리가 예상한 것과 달리 생각보다 많은 사람들이 음감회에 관심을 가져주었다. 회차를 거듭할수록 사람들은 점점 모였고, 우리 모임을 체계화시켜야 할 필요성을 느끼게 되었다. 그러기 위해서는 먼저 우리 모임의 이름이 필요했다. 정말 다양한 후보들이 있었던 것으로 떠오른다. 같이 낄낄대면서 이상한 이름들을 던지며 노닥거리다 우리 모두의 관심을 끈 이름이 하나 툭 튀어나왔다. '이음세'. "미친... 좋은데?" 나얼의 유튜브 '나얼의 음악 세계'를 오마쥬 하여 모임을 함께 만든 형의 이름을 넣었다.
'이지오의 음악 세계'. "미친... 진짜 느낌 있는데?" 이지오의 음악 세계도 되지만, 두 물체를 이은 모양새를 뜻하는 '이음새'와 발음이 같아서 이중 의미(double entendre)를 내포하는 이 이름을 최종적으로 채택하게 되었다.
그럼 이 모임은 무엇들을 연결하는 '이음세'가 되는 것인가? 우리는 앨범을 매개체로 아티스트와 대중들을 연결하는 '이음세'가 되고자 하는 것이다. 음악이 단순히 분위기를 극대화시키는 각성제로서의 역할이 아닌, 소설과 미술과 같은 다른 예술들처럼 경건한 자세로 감상할 수 있는 정교하며 섬세한 예술임을 느끼게 하고 싶었다. 또한 음악을 앨범 단위로 들으며 하나하나 분석해 나가고, 앨범 전체의 유기성을 파악하며 스토리를 생각해 보는 음악 감상의 또 다른 재미를 사람들에게 보여주고 싶었다. 음악 감상 그 자체로써의 재미, 그것들을 사람들이 느끼게 된다면, 아티스트가 보여주고자 하는 음악 세계에 한 발자국 가까워지지 않을까? 진정으로 아티스트와 리스너가 소통하고 하나가 되는 '이음세'가 완성되지 않을까?
마음이 맞는 사람을 만난다는 것은 얼마나 큰 행운이자 행복인가! 첫 번째로 나와 같이 음악을 진정으로 즐길 줄 아는 정말 멋진 형을 만나게 되어 음감회 모임을 만들게 되었다. 두 번째로는 우리 음감회의 방향성을 이해하고 함께 나아가고자 하는 든든한 조력자를 만나게 되었다. 이 글을 빌려 공주 살롱 사장님께 감사의 말을 전한다. '이음세'가 처음 공주살롱에서 진행된 이래 적극적으로 모임의 발전에 힘을 써주셨다. 이 모든 것이 사장님의 예술에 대해 가진 생각과 '이음세'가 추구하는 가치가 일치하였기 때문이라고 생각한다.
'이음세'가 더 많은 사람들에게 다가갈 수 있도록 먼저 제안을 한 건 공주살롱 쪽에서였다. 정말 가벼운 마음에서 시작한 이 작은 모임을 공주 교육대학교 학생들 만의 것으로 끝내는 것이 아니라 외부인들도 참여할 수 있는 모임으로 키워보는 것이 어떻겠느냐 물어보셨을 때, 오만가지 생각과 기분이 들었다. 엄청난 거대한 여정이 시작되는 것만 같았기 때문이다. 나는 그토록 꿈꾸던 저 넓은 바다로 이제 막 항해를 시작하는 초보 항해사가 되어 있었다. 설렘, 두려움, 부담감... 하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행복감이 넘쳐흘렀다. 아무리 힘들고, 실패를 하더라도 내가 진정으로 원하는 것을 할 수 있는 기회가 찾아왔다는 그 자체만으로 너무나도 행복했다. 우리가 생각하는 음악 감상의 재미를 많은 사람들께 전달할 수 있는 절호의 기회였다. 이 기회만큼은 절대로 놓치고 싶지 않았다.
공주시 전체를 대상으로 진행하는 모임이 되는 만큼 더욱더 체계화된 시스템을 구출할 필요가 있었다. 음감회가 진행되는 방식을 정리하는 것이 급선무였다. 그전까지는 음감회에 참석한 사람들이 같이 앨범을 고르고 다음 음감회 때 앨범에 대한 조사 없이 무작정 틀고 감상을 하였다. 하지만 그렇게 하니 음악을 분석하는데 한계가 있었다. 더욱 세밀하고 깊은 음악 감상을 할 수 있도록 호스트가 자신이 고른 음반에 대해 조사를 해온 뒤, 음감회에 참석한 사람들과 함께 나눌 수 있도록 진행 방식을 바꾸었다.
다음으로, 모임을 관리할 사람들이 필요하였다. 대표, 산출팀장, 총무팀장, 홍보팀장, 준비팀장 및 팀원을 정하여 관리팀을 구성하였다. 밑작업을 모두 끝낸 후 개최한 첫 번째 음감회의 음반은
검정치마 - <Team Baby>. 그리하여 공주시의 한 대학교에서 음악을 좋아하는 대학생들이 만든 작은 모임은 더 큰 세상으로 드디어 한 발짝 내딛게 되었다. 앞으로 어떤 일들이 생길지 알 수 없지만, 앞으로 '이음세'는 어디까지 나아갈 수 있을지 알 수 없지만, 음악을 좋아하는 그 마음 하나를 가지고, 이 마음을 많은 사람들과 나누기 위하여 계속 앞으로 나아갈 것임은 틀림없다. 음악으로 아티스트와 리스너를 잇고, 사람과 사람을 이으며, 음악과 사람을 잇는 것이 '이음세'의 존재 이유이기 때문이다. 말은 일시적이지만 글은 영원하다. 우리는 이 자그마한 인터넷상의 공간을 빌려, '이음세'가 나아가는 거대한 발자취를 하나하나 기록하고자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