죽음이란 걸 몰랐던 나이였다. 나는 외갓집에 갈 때마다 할머니를 찾았고, 그때마다 할아버지는 엄마를 향해 소리 쳤다. 저 아새끼 입 좀 닥치게 하라고. 엄마는 내가 얌전히 기다리고 있으면 할머니가 나를 보러 올 것이라 말한다. 그러니 조용히 있어야 된다고, 할머니를 찾으면 안 된다고. 나는 앙다문 입술을 삐쭉거리며 빨개진 눈가를 여러 번 비볐다. 그리고 밤마다 조용히 현관에 나가 할머니를 기다렸다. 새벽이 지나고 아침이 올 때쯤, 둔탁한 문이 끼익 소리를 내며 열리고, 갈라진 손가락을 당신의 입술에 붙이며 오므리던 그날들을 떠올렸다. 새벽녘 차가운 공기를 감싸 안고오던 그 따듯한 품을 상상했다.
엄마는 할머니와 달랐다. 나를 낳고 다행이었다는 말을 했다. 더 이상 애를 낳지 않아도 돼서. 스물한 살의 누나를 낳았던 엄마에게, 할머니는 다음은 아들 낳으면 되지라는 말을 했다. 출산 직후에 이리저리 몸을 비틀던 엄마에게 밤은 아주 깊었다. 엄마는 외갓집에 갈 때마다 할머니와 말다툼을 했다. 매번 싸움은 나에 대한 엄마의 한 마디로 끝났다.
아들 낳았으면 됐잖아. 엄마가 그렇게 원하던 아들 낳았으면 이제 된 거 아냐? 더 이상 나한테 뭐 바라지 마.
화장하던 날, 엄마는 거꾸로 신은 신발을 끌고 산부인과를 달려왔던 할머니 이야기를 했다. 누나가 태어난 날, 시댁 식구 모두 아이를 보러 간 와중에, 내 새끼를 외치며 떨리는 손으로 엄마의 머리를 쓸어넘기던 할머니.
엄마는 가쁜 숨을 바쁘게 토했다. 꺽꺽 소리를 냈다. 하얀 뼛가루가 민물에 흩어졌다. 잔잔히 그러나, 쉴새없이 흘렀다. 작은 동심원이 천천히 퍼지면, 또 새로운 가루들이 울림을 내었다. 이내 투명한 울림이, 조금씩, 오랫동안 흘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