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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moonsix Mar 19. 2024

Felice Toscana 4.

2023 이탈리아 여행기 17-04012023

토스카나에서의 마지막 추억

# 자연과 함께 자유로운 Cascate del mulino.

나에게 온천은 늘 널따란 대욕장에 온천물이 커다란 수전에서 콸콸 쏟아지는 뜨거운 욕탕의 열기로 각인되어 있다. 한국의 온천이라 하면 대부분 비슷한 이미지를 떠올릴 것이다. 한국에서 노천탕은 흔하지 않고, 대부분 앞서 언급한 바와 같이 실내의 광활한 대욕장으로 조성되어 있다. 이웃 나라 일본만 해도 전통 숙박시설인 료칸 등에 노천탕을 흔하게 만날 수 있고, 온천으로 유명한 여러 다른 나라에서도 노천탕은 매우 일반적이다. 이번 토스카나 여행에서 우리도 자연 그대로의 온천을 만날 수 있었는데 이곳이 바로 피렌체와 로마 사이 정중앙에 위치한 Saturnia의 "Cascate del mulino(https://maps.app.goo.gl/yaZVTq1d1uE6NMD26)"였다.


이곳은 국내 TV 프로그램에 소개된 바 있어 우리나라 사람들에게도 어느 정도 알려진 곳이기도 하다. 전에 방문했던 다른 국가에서도 유명한 온천탕을 찾아간 적이 있었지만 이처럼 완전히 노천에서 즐기는 곳은 아니었기에 상당한 기대감과 호기심을 갖고 찾아가게 되었다. 숙소인 Agrituriturismo Marinello에서 차로 1시간 30분 정도 달려 이 온천 근처 주차장에 도착할 수 있었다. 차를 몰고 달려오는 동안 만난 경치들이 너무 아름다워서 그냥 지나치기 아까웠단 게 흠이라면 흠. 뷰 맛집이라는 표현을 무한대로 써도 넘치지 않을 곳이 토스카나 아닐까. 어쨌든 차를 주차하고 10여분 정도 걸어가니 마치 계단식 논밭처럼 펼쳐져 있는 노천탕에 도착하였다.


여러 곳에서 소개한 대로 이곳은 별다른 편의시설이란 게 없다. 물론 간단한 식사가 가능한 카페와 작은 탈의실 및 샤워실이 있지만 방문객 다수가 이용하는 것 같이 보이지는 않았다. 대부분의 사람들은 노천탕 주변의 땅바닥이나 돌바닥 위에 자리를 펴고 그 자리에서 겉옷을 벗어 수영복 차림으로 변신하거나 혹은 수영복으로 갈아입기도 한다. 우리도 이미 얻은 정보를 바탕으로 겉옷 안에 수영복을 입고 갔기에 현지인들처럼 돌바닥에 작은 돗자리를 펴고 벗은 겉옷과 짐들을 얹어놓은 채 탕으로 들어갔다. 점심 전 오전 시간이었지만 적지 않은 이들이 노천 온천을 즐기러 와있었고, 사실상 동양인은 우리 둘 뿐이었다.


짙은 유황냄새와 온천에 함유되어 있는 여러 성분들의 침착물들로 덮인 노천탕의 물 온도는 그리 높지 않았으나 온천욕을 즐기기에 충분한 온도와 수량이었다. 계단식으로 이루어져 있는 노천탕이었기에 이동을 위해 낮지 않은 바위턱을 넘어가야 하는 수고로움이 있긴 하지만, 위쪽으로 갈수록 수온이 높아지고 수질도 나아진다는 것을 알고는 한 칸 한 칸씩 위쪽으로 올라가 온천을 즐겼다. 이곳에서 일주일 넘는 시간의 여독을 풀 수 있는 편안한 시간을 보내면서 이런저런 생각이 들었다.  


별 쓸모없는 생각이긴 하지만, 이런 곳이 한국에 있다면 어떤 모습이었을까. 일단, 무료로 누구나 찾아와서 즐길 수 있는 곳이 되는 건 불가능했을 것이고, 분명 각종 시설들이 마구잡이로 들어섰을 것이란 자연스러운 상상이 들었다. 이렇게 들어선 온갖 시설들은 방문객들에게 '돈을 쓰시오'라는 메시지를 마구잡이로 들이대지 않을까, 온천물이 나오는 이도저도 아닌 짬뽕 워터파크처럼 만들어지지 않을까라는 생각이 들 수밖에 없었다. 워터파크건, 편의시설로 가득 찬 거대한 찜질방 테마파크가 되건 그 자체가 나쁘다고 할 수는 없다. 이런 식으로 조성되는 공간 자체의 문제가 아니라 우리에겐 너무 이런 상업적으로 조성된 공간만 있다는 게 문제다. 조금은 불편할 수 있지만 누구나 자유롭게 언제든 와서 즐길 수 있는 개방된 자연 공간이 과연 얼마나 있는가 하는 것이다. 도시로 가면 이런 문제는 더욱 심각하다. 공원이 있지만 접근성이 떨어지고, 가까운 거리에 공공 휴식공간이 부족하기에 다들 거대한 상업공간인 쇼핑몰로 몰려 간다. 유럽의 공원에서 가장 부러운 건 대부분 도심에 위치하고 있어 접근이 용이하다는 점이다. 하물며 뉴욕 맨해튼의 센트럴파크를 비롯한 수많은 공원들도 그러하다. 상업적인 소비로 점철된 공간에서만 여가와 휴식이 보장되는 우리의 현실은 과연 이대로 괜찮은 걸까. 개운한 기분과 상쾌한 컨디션과는 별개로 이런 고민들을 머릿속에 남긴 채 온천을 떠나왔다.

내추럴 그 자체였던 사투르니아 온천. 공간도 사람들도 모두 너무 자연스러웠던.

 # 무작정 들린 식당도 맛있는 음식을 판다

온천욕을 마치고 숙소로 돌아가는 길에 늦은 점심을 먹기로 했다. 그런데, 문제는 이 날이 일요일이었다는 것. 더군다나, 사투르니아에서 숙소로 돌아가는 길엔 큰 도시나 유명 관광지가 없다. 이 말은 휴일 문을 여는 식당이 없을 가능성이 높다는 것이다. 숙소로 향하며 열심히 맵을 뒤져 식당을 찾아갔으나 영업을 하지 않거나 브레이크타임인 곳만 몇 군데 만날 수 있었다. 그냥 숙소로 빨리 돌아가 근처 마트에서 간단한 먹을거리들을 사서 먹을까란 생각도 했지만, 숙소 근처 가게들도 브레이크타임을 가질 시간대였다. 그렇게 고민을 거듭하던 찰나 도로옆 주유소에 딸린 작은 레스토랑 간판이 보이는 게 아닌가. 그렇게 우연히 발견한 식당의 출입문을 열고 들어가니 다행스럽게도 많은 이들이 식사를 하고 있었다. 누가 봐도 동네 사람들로 보이는 이들이 한가로운 휴일의 점심식사를 즐기는 자그마한 식당에 낯선 동양인 둘이 허겁지겁 들이닥치는 장면이 연출되었으니 이 모습을 누군가 영상으로 찍어놓았다면 재미난 콘텐츠가 되었을지도 모를 일이다.


우리가 급히 들린 식당은 La Botte(https://maps.app.goo.gl/F4QH1Ax4EHEjYM7E9)라는 곳으로 매우 평범한 Pizzeria 겸 Bar로 운영되고 있는 식당이었다. 빈 테이블에 앉으니 서빙하는 청년이 메뉴를 가져다주었으나 당연히 죄다 이탈리아어. 다행히 친절한 청년이 어렵게 애써서 영어로 우리와 소통하는 수고를 마다하지 않은 바람에 라비올리와 파스타를 주문할 수 있었다. 그리고, 라비올리가 나왔으나 파스타는 결국 나오지 않았다,,,,,(뭔가 잘못된 것 같았으나 이유는 알 수 없었음. 그리고 우리도 별로 컴플레인을 하고 싶은 맘이 없었음. 이 와중에 라비올리라도 먹는 게 어디냐...) 어쨌든 우여곡절 끝에 만난 라비올리를 한입 먹어보니, 아.. 본토의 맛? 이 이런 것이구나? 혹은 어느 이탈리아 가정집에서 해주는 음식을 맛본다면 이런 맛이 아닐까 하는? 그런 느낌을 맛볼 수 있었다.


사실 내가 맛본 이탈리아 요리들은 조리법이 복잡해 보이지 않았고, 양념이나 소스 또한 소금, 후추 등의 기본 조미료를 첨가하는 정도였다.(미국이나 영국을 가면 엄청 다양한 소스들을 제공한다. 이런 면이 확실히 다르다. 이탈리아에선 식당에서 토마토케첩도 거의 본 적이 없다.) 이 식당에서 우리가 맛본 라비올리도 마찬가지. 얇은 밀가루피 위에 전통 라구 소스를 베이스로 한 돼지고기 볶음을 얹어 나온 게 전부였지만, 토마토의 향과 고기 기름이 어우러진 일종의 만두소는 마치 카페 라테의 에스프레소와 우유처럼 예리함과 부드러움의 조화를 이룬 맛을 만들어주었고 이를 둘러싸는 밀가루 외피는 적당히 머금은 수분과 유분으로 인해 마치 두부 같은 식감을 가지고 고기볶음을 감싸주어 조화로움의 마지막 퍼즐을 맞춰주었다. 이렇게 설명하면 뭔가 대단한 맛인 것 같지만 사실, 서양식 만두라고 아주 간단하게 설명할 수 있는 메뉴 정도인데 그날의 상황과 식당의 분위기 등이 이런 특별한 경험과 기억을 만들어주었던 것 같다. 그렇게 우연히 만난 라비올리로 여행의 불확실성이 가져다주는 기쁨을 느끼고 다시 숙소로 돌아갔다.   

급작스레 들른 식당에서 만난 라비올리. 단순하지만 완벽한 조화를 보여준 맛.
토스카나 숙소에서의 마지막 저녁 식사. 예쁜 식기에 담긴 직접 만든 파스타, 스테이크, 샐러드와 마트에서 구입했던 로컬 와인까지. 저렴한 식재료 물가가 늘 부러웠던 기억이 있다.
최고의 숙소였던 Agriturismo Marinello. 우리가 묵었던 방의 출입문으로 오르던 계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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