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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김철원 Sep 12. 2024

팀파니를 연주하는 소녀

1.

  관악제가 끝났다. 아이들은 우수상을 탔다. 공연장 앞에서 단체 사진을 찍을 때 불어오던 여름 끝의 바람과 붉게 상기된 아이들의 얼굴을 기억한다. 거기에 서 있던 크고 높은 버드나무와 눈부시게 빛나던 햇살도 함께 기억한다. 내 마음속에 오래 간직하고 싶다.


2.

  팀파니를 연주하는 아이는 언제나 서두르지 않고 들뜨지도 않는다. 등장하는 횟수도 아주 적고, 악기 소리가 커서 다른 연주자로부터도 멀리 떨어져 있으며, 관객이 보기에도 언제나 구석에 있다. 하지만 아이는 자신의 일은 본래부터 그런 것이라고 그저 성실하고 담담하게 채를 두드릴 뿐이다. 학교 오케스트라실에서 연습을 하거나 쉴 때에도 아이는 채를 손에 들고 허공에서 빠르게 두드리는 연습을 계속한다. 아이의 두 손과 채가 거의 한 몸처럼 자연스럽다. 그 풍경을 바라보고 있으면 나는 조금 숭고해진다. 거기에는 마음을 다한다, 최선을 다한다, 열심히 한다는 말로는 설명이 되지 않는 무언가가 있다.    

 

3.

  옛 학교의 아이를 만났다. 토요일 아침의 조용한 동네 카페였다. 총학생회장이었던 아이는 학교에 대자보를 써서 붙였다고 했다. 그 이후에 많은 사람들을 만났지만 대화는 어긋나는 것 같았고 답답했다고 말했다. 방법을 다르게 했어야 했나? 너무 성급했나? 다른 아이들의 의견을 더 많이 들었어야 했나? 아이는 자책하고 있었고 아주 많은 감정을 느끼고 있었다. 눈물을 글썽였다. 아이에게는 손수건이 필요했다.

  나는 아이에게 그것이 무엇이든 자기 쪽으로 가져오는 사람들이 있다고 말해주었다. 그래서 그것은 그 사람들에게 실존이 된다. 카프카의 글쓰기는 아름다움을 위한 글쓰기가 아니라 존재를 위한 글쓰기였다. 아이에게는 대자보를 쓰는 일도 대안학교의 대안에 대해서 질문하는 것도 자연스럽고 당연한 일이었다. 그것은 불가피한 일이었다. 아이는 6년째 이 학교를 다녔다. 그동안 학교가 이야기하는 가치는 아이의 삶과 일상과 존재에 스며들었다. 아이는 그것을 자신은 학교에 적응을 잘하는 아이였다는 말로 표현했다. 사람들 앞에서 잘 울지 않는 아이였다고도 말했다.

  

  아이는 숱한 감정들을 느꼈다. 아이에게는 그것이 처리해야 일이 아니라 질문할 수밖에 없는 실존의 문제였기 때문이다. 시인 윤동주에게 빼앗긴 조국과 살아남은 자신은 실존의 문제였고 그래서 결국 감정의 문제가 되었다. 그가 그토록 부끄러워고 수치심을 느끼며 괴로워했던 까닭이 거기에 있다.    


4.

  아이와 나는 일상의 많은 이야기를 나누었다. 친구가 쓴 시집과 노래를 작곡한 친구의 이야기도 들려주었다. 음향에 관심 있던 친구는 여전한지 나는 물었고 아이는 공연 사진 한 장을 보여주었다. 우리는 시창작 수업을 함께 들었던 아이들을 호명하며 지금 우리가 각자 어떻게 살아가고 있는지 이야기를 나누었다. 아이는 자신이 대학에 가기로 했고 어떤 과를 정했는지도 말해주었다. 그동안에도 아이는 많이 울었는데 그 눈물이 아직도 기억난다.

  중학교 기술시간에 만든 라디오는 너무 조악해서 방구석에서 라디오를 들고 발돔움을 하며 천장을 향해 손을 쭉 뻗어야 소리가 났다. 그때부터 나는 무슨 일이든 발돋움을 하고 손을 힘껏 뻗는 것처럼 간절해야 한다고 생각했다.


5.

  아이와 헤어지고 나는 늦여름의 햇살 속을 걸어 집으로 돌아갔다. 입술을 조금 깨물며 바람에 흔들리는 거리의 나무를 바라보았다. 다시 시작해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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