삶의 속도와 방향을 함께 잃지 않는 일

한 달에 천만 원을 저축해도, 삶은 여전히 서툴다

by 빛날애

올해도 얼마 남지 않았다. 문득 시간을 세어 보니, 신혼 초 남편 월급의 80퍼센트를 저금하던 시절로부터 어느새 16년이 흘렀다. 회사를 그만두고, 몇 번씩 다른 길로 방향을 틀었다. 그 사이 삼 남매는 훌쩍 자라 중학생이 되었다. 아이들이 먹고 싶다는 것을 마음껏 사주지 못하던 시절이 있었다. 그때마다 부모로서 마음 한구석이 아렸지만, 집 안에는 늘 온기가 있었다. 우리는 당장의 풍요보다 언젠가 도착할 미래를 더 많이 이야기했다. 부족한 오늘을 견디며, 따뜻한 내일을 믿는 법을 배웠다. 그 믿음 하나로도 충분히 행복했던 시절이었다.


4년 전, 무인 사업을 시작했다. 지금은 스터디카페 하나와 고시원 세 곳을 운영한다. 이제는 스스로를 초보라 부르지 않아도 될 만큼 시간이 쌓였지만, 예고 없이 찾아오는 수고들은 여전히 낯설다. 경험이 늘어도 책임의 무게는 매번 새롭다. 어른이 된다는 건, 익숙해지는 일이 아니라 낯섦을 견디는 힘을 조금씩 키워 가는 일인지도 모르겠다. 3년째 우리는 한 달에 적어도 칠백만 원에서 천만 원을 모으고 있다. 일 년에 1억씩 모으겠다고 결심한 뒤부터 생활의 매듭을 다시 단단히 묶었다. 그렇다고 삶을 지나치게 조이지는 않았다. 써야 할 때는 쓰고, 멈출 때는 멈추는 법을 배웠다. 숫자는 중요하지만, 그 숫자가 삶을 밀어붙이게 두지는 않으려고 애썼다.


언제부터였을까. 돈이 목표가 아니라 도구가 되기 시작한 순간은. 예전에는 숫자가 나를 평가하는 것 같았다. 더 모아야 안심할 수 있을 것 같았고, 뒤처지지 않으려면 늘 조급해졌다. 하지만 지금은 다르다. 숫자는 내가 지키고 싶은 삶의 모양을 설명해 주는 언어가 되었다. 덜 불안해지고, 덜 흔들리는 방향으로 돈을 쓰고 모으고 싶어졌다. ‘계란을 한 바구니에 담지 말라’는 말이 있다. 자산을 한 곳에 몰아두지 말라는 오래된 투자 격언이지만, 나는 그 말을 삶의 태도로 받아들였다. 한 가지에 기대지 않고, 한 번의 선택에 인생을 맡기지 않는 것. 우리가 조금씩 다른 길을 준비해 온 이유이기도 하다.


아이들에게 많은 재산을 남겨 주고 싶은 마음보다, 돈 앞에서 흔들리지 않는 태도를 보여주고 싶다. 아끼는 법만이 아니라, 써야 할 때를 아는 법, 그리고 기다릴 줄 아는 마음까지. 삶이 늘 넉넉하지 않아도 품위는 지킬 수 있다는 것을, 말이 아니라 생활로 전하고 싶다.


나는 남편과 나를 믿는다. 우리는 경제와 노후를 바라보는 데 있어 같은 방향을 보고 있다. 열심히 산다는 말은 생각보다 조용하다. 요란한 결심이나 큰 포부보다, 매일 같은 자리에 다시 서는 일에 가깝다. 앞서서 끌지도, 뒤에서 재촉하지도 않고 묵묵히 자기 몫의 하루를 살아내는 일. 나는 그 등을 보며 삶을 배웠다. 경제 앞에서 늘 서툴렀던 나를, 남편은 앞에서 끌지 않았다. 대신 곁에서 보폭을 맞춰 주었다. 그 덕분에 나 역시 삶을 더 성실하게 바라보게 되었다.


올림픽대로를 달릴 때면 남편은 부자 동네를 가리키며 말한다. “우리 나중에 한강이 보이는 저런 집에서 살자. 예쁜이 기다려! 꼭.” 힘이 잔뜩 들어간 목소리로 웃으며 던지는 말이지만, 나는 그 말에 늘 “하하. 응” 하고 대답한다. 농담처럼 오가는 말속에, 우리는 언제나 진심을 숨기지 않는다. 살다 보면 대안 없이 부정적인 말만 건네는 사람들을 종종 만난다. “그거 안 될 텐데.” “괜히 시간 낭비 아니야?”

그 말들은 언제나 쉽다. 하지만 생각해 보면, 안 된다는 말 뒤에는 늘 아무런 대안도 따라오지 않는다. 『혹시, 돈 얘기해도 될까요?』에서 주언규 작가님이 말했듯, 대안 없는 부정은 가장 손쉬운 태도다. 우리는 불안함을 안고 출발했고, 그 불안을 데리고 여기까지 왔다. 그래서 나는 안 된다는 말보다, 오늘 할 수 있는 일을 선택하기로 했다.

돈 앞에서 여전히 불안해질 때가 있다. 지금도 모르는 것이 더 많다. 하지만 예전과 달라진 점이 있다면, 불안해지는 나 자신을 더 이상 다그치지 않는다는 것이다. 모른다는 것을 인정하고, 혼자가 아니라는 사실에 기대는 법을 배웠다. 그것만으로도 마음은 한결 단단해진다.

다음 목표를 묻는 사람들도 있다. 하지만 나는 당분간 대답하지 않으려 한다. 목표보다 중요한 건, 우리 아이들에게 부끄럽지 않게, 조금 돌아가고 늦어지더라도 지금 가고 있는 방향을 잃지 않는 일이기 때문이다. 우리는 오늘도 꿈을 저축한다. 큰 숫자보다 오래 남을 하루를 위해, 그렇게 정중동의 마음으로 조용히 피어오른다.

누군가의 평가와 상관없이, 나는 삼 남매의 엄마로서 우리의 다음 챕터를 위해 오늘도 보이지 않는 호수 밑에서 묵묵히 다리를 굴리는 사람일 뿐이다.


나 스스로가 그렇게 선택하고 있다는
사실을 인정하는 순간,
비로소 삶의 주도권이 내게 돌아온다.


매거진의 이전글부를 부르는 사람 vs 가난을 벗어나지 못하는 사람